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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표하나_“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도 평화의 나라에 살고싶소” 뚜라 버마행동대표

쉽표하나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도 평화의 나라에 살고싶소”

뚜라_버마 행동대표

내가 자신 있게 쓸 수 있다고 생각 한 버마어로 집에 보낸 편지도 제대로 못 쓴 사람인 내가, 말만하면 버벅거리고 발음도 상대가 알아들기 어려울 정도 잘 못하는 한국어를 하는 내가 글을 쓰려하니 어려움이 많네요. 지난 몇 일전에 글을 써 달라고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간단한 설문조사 같은 것이라고 알아들어서 ‘네’ 그랬었는데, 보내준 메일을 보면서 스스로 이번에도 ‘잘못 이해 했구나’하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막상 글을 써보려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가슴에 숨이 차고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글을 쓰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를 먼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저를 간단하게 소개 해보려 합니다. 저는 이주노동자로 살고 있으며,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조국인 버마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내 나이 22살, 올해로 35살이 된 저는 아직까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내 고향 버마보다 한국을 더 잘 알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을 잘 모르겠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주노동자가 아니었으면, 혹은 한국보다 가난한 동남아시아 국가 사람이 아니었으면 내 추억에 한국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였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겪어왔습니다. 안정된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직장 안에서 나를 욕할까봐, 위험한 일을 시킬까봐, 다칠까봐, 월급을 안 줄까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단속에 걸릴까봐 등 많은 걱정들을 안고 살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떠나 활동가로서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버마의 군사독재 정부를 반대하고 싸우고 있는 나를 비롯한 많은 활동가 친구들을 한국정부가 쫓아 낼까봐 하는 걱정을 비롯하여 많은 걱정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걱정쟁이는 나 혼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불안과 걱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많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한 삶이 아닌 안전한 삶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

평화 얘기가 나오니까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해서 알아보자고 해서 선생님들과 함께 온 아이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과 함께 평화에 대해서 아는 것을 한마디씩 말했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다 배고픈 것 없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을 평화라고 생각한다며 비슷하게 표현을 했습니다. 평화의 의미를 짧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나도 좀 비슷한 의미로 표현했습니다. 그 때부터 몇 일간은 평화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됐다.

버마는 오랫동안 독재 정부와 소수민족 간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여러 곳에서도 전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을 죽이는 일들을 보며 ‘전쟁이 없으면 평화가 온다’, ‘전쟁과 평화는 관련되어 있는 개념’이라고 해서 평화에 대한 특별한 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버마에서 있었을 때에는 서로 싸우지 말자, 약한 자를 보호하자, 배고픈 자에게 나눠주자, 생명을 죽이지 말자, 자비를 베풀자, 라는 가르침에 따라서 산다면 사람 사는 이 세상이 평화가 된다고 배웠습니다.

배고픈 것 없이 안전하게 살 수만 있다면 육체적인 평화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그 속에 과연 모두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나는 비교적 배고프지 않고 안전한 사회라고 볼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안전을 찾지 못했고 배도 물론 고픕니다. 아프리카보다, 동티모르보다, 버마보다,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잘 발전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도 그 나라들보다 잘 되어 있습니다. 사회 전체를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도 물론 잘 되어 있어서 미얀마와 아프리카, 동티모르보다는 비교적 평화가 있는 사회라고 말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지, 혹은 평화로운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평화가 있다”, “없다”, 다양한 답이 나올 수는 있지만 나는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이 이 사회에서 살면서 ‘평화의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고 저를 미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KTX 여 승무원 문제부터, 한-미 FTA 협정 문제, 이주노동자 활동가를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강제로 잡아서 쫓아내는 법무부를 보며 “배부른 것이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배고픈 자에게 나눠 줄 수 있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내가 강해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을 죽이고 인권침해와 심한 탄압을 하고 있는 버마에 가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재정권에 돈을 벌게 해주고 자신들도 엄청난 돈을 떼먹기 위해 모두 버마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을 무시해가며 가스개발 공사 하고, 군부가 국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필요한 무기와 만들 기술까지 지원하는 한국기업들을 보며 “자신이 배고플까봐, 불안전 할까봐 해서 내 것 만을 챙기다 보면 남의 것도 빼앗게 되고, 남의 안전도 빼앗고 생명까지 죽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가진 미국이 러시아와 인도, 파키스탄, 중국을 건드리지 못하면서, 이란과 북한을 세계의 위험한 국가로 내모는 것을 보면 “내가 먼저 평화롭게 살아야 남도 평화롭게 산다. 내 것을 챙기는 반면에 남의 것을 빼앗지 말아야 하는 것이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는 물론 세계 최고의 모든 무기를 가진 미국이 보이지 않는 빈 라덴을 겁내는 것, 위험한 기계에 다칠까봐 걱정하고 출입국 직원들이 쳐들어와서 잡힐까봐 불안한 이주노동자들을 보면 “육체적인 안전은 물론이지만 그 보다 마음의 안정이 더 중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개인부터 서로가 서로를 자비를 베푸는 것이 우리가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길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 고향 버마에서도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동시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한국에도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나는 여러분과 함께 노력하고 싶습니다. 나는 평화를 위해 적어도 “서로 싸우지 말자. 약한 자를 보호하자, 배고픈 자에게 나눠주자, 생명을 죽이지 말자, 자비를 베풀자”, 라는 어린 시절의 이 가르침들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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