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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서로 짓밟지 않는 학교를 만들자 가르친 교사를 징계하는 교육당국


 


 ‘서로 짓밟지 않는 학교’.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안내를 해 준 교사의 평소 생각이었다.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 한마디를 가르치려한 것이 이다지도 큰 죄인가? 서울교육청은 지난 10월 치른 일제고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교사 7명을 교단에서 쫓아냈다. 차마 어린 학생들에게 더 이상의 성적 압박을 줄 수가 없어서, 일부만 치러도 되는 시험을 전국 모든 학생이 똑같은 날, 똑같은 문제를 풀어서 전국 순위를 매기려들기에 비교육적 횡포를 거부한 것이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지난 해 서울은 24시간 학원 운영 꼼수를 펴다가 ‘공부하다 죽은 학생은 못 봤다’는 서울시의원의 수준 이하 발언이 온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고 시민사회의 신속한 대응으로 학원 교습시간 연장을 막아냈다. 이 때 청소년들은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우리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며 생존권 투쟁에 나섰고 결국 촛불의 주인공들이 되었다. 그렇다. 지금도 청소년들은 하루하루가 버겁다. 고등학생은 1년에 18회 정도, 1달 1회 이상의 시험에 시달리고 여기에다가 학원시험에 일제고사, 급기야 최근 발표한 자율형 사립고 설립으로 고등학교 4곳 중 하나는 선발경쟁을 통과해야 하는 시험에 쩔어나고 있다.







 시험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 해 봄 학교자율화라는 타율복종 강압 조치 이후 중고등학교에서는 생활규정을 위반했다하면 봐줄 것 없이 ‘권고 전학’을 날리고 있다. 여름 논에서 피 뽑듯이 예전 같으면 용서하고 훈육으로 가르쳤을 규율 위반 학생들을 쭉정이 솎듯이 뽑아버리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이제는 정말 ‘인권’을 꺼내서는 안 될 지경이다. 여기다가 전국 1등에서 전국 꼴찌까지 성적조차 공개되는 일제고사가 부활된 것이다. 시험이 교육적 의미가 있고 별도의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굳이 일제고사의 성격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 단위 획일적 시험이 초래할 창의적 사고력 말살, 의미 없는 문제풀이 선수 양산, 그리고 이에 기생하는 사교육 시장… 학교급별 교육목표가 있고 이에 맞춘 교육과정이 있으나 이조차 엉망으로 만드는 이런 비교육적인 시험임을 너무나 잘 알기에 교사들은 양심을 걸고 반대했다. 이미 국민들 70%이상이 사교육 부담 증가, 입시강요라는 이유로 일제고사를 반대한 것만 보아도 교사들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의 실천이었다고 봐야 한다. 차라리 시험을 치를 그 시간에 일제고사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부모의 동의를 받아 체험학습을 다녀올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었다.







 교사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공무원의 복종의무를 지키지 않아 해임한다는 권력의 논리는 옳든 그르든 잠자코 국가권력의 시녀로 살 것을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일 아닌가? 미국 등 이와 유사한 시험을 치르는 국가들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시험응시 여부 선택권을 보장한다는데 그런 나라는 복종의무가 없어서 선택권을 주는가? 무조건 미국식이면 덮어놓고 따라가는 정부가 어찌해서 국민의 권리는 무시하고 넘어가는지, 대통령이 임명할 만큼 전문성을 보장해줘야 할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어떤 근거로 송두리째 밟아버리는지 21세기 시민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교사에게는 학문적 교과 교습이 기본의무이지만 이는 학원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와 교사는 이를 넘어 사람과 사회운영의 기본원리, 민주주의 원리, 노동과 사람들간의 연대, 그리고 도덕적 품위를 가르칠 의무가 있고 이를 가르치라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 이는 국가 권력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교육의 원천이다.







 얼마 전에는 나도 시험을 반대했다며 중학교 교사가 일간지에 글을 기고했다. 이 글로 인해 아이들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양심고백을 한 그 글을 읽으면서 너무나 먹먹했다. 운동장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뒹굴고 싸우고 밥 먹고 또 하루를 살아가던 학급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하는 것을, 교문 밖에서 징계 철회 요구 1인 시위를 하면서 한없이 바라보던 교사의 사진도 가슴을 울리고 있다.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 싶을까. 아이들은 또 교문 밖에 서 계신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그리울까… 벌건 대낮에 이런 생이별을 저지르는 만행이 이명박 정부의 철학인가. 공정택 교육감의 교육다양화 정책이란 말인가?







 일제고사는 학교 서열화와 국민 등급 매기기 시작에 불과하다. 노골적으로 평준화를 깨자고 내놓은 자사고 설립, 국제중학교 설립, 그리고 일제고사 학년 확대와 횟수 증대… 이 모든 것은 대학입시의 자율화로 이어질 것이며 고교등급제 확대를 위한 제물인 셈이다. 부모 능력 없으면 아무리 창의성 있고 품행이 좋아도 성적이 좋아도 더 이상 능력개발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계급분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차라리 성 추행을 하지’라는 어느 일간지 만평처럼 성추행을 해도, 뇌물을 받거나 공여해도, 학교급식업자와 골프외유를 해도, 학교 공금으로 개인 자산을 불려도, 반 쯤 실성할 만큼 체벌을 해도 모두 경징계로 살아남는 마당에 그들이 주장하는 선택권을 주었는데 파면, 해임이라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명박과 초딩의 싸움이다.







 이번 일제고사 반대와 교사 징계는 이 땅에 양심세력은 모조리 탄압하고 국민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겠다는 정치야욕이다. 이런 이명박 정부가 어느 새 1년이 되어가고 올해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실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영복 선생님 말씀처럼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것이다. 부당징계를 당장 철회하고 교사들을 아이들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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