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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통신] 팽목항 가는 길 –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지난 주말 진도 팽목항은 사람의 파도로 넘실거렸다. 슬픔이 거세게 출렁거렸고 위로는 통곡을 고요히 지켜봤다. 세월호 유족과 실종자 가족이 20일의 500km 도보 행진을 마치는 날이었다. 온 몸을 구호로 도배하고 발을 절룩거리는 분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골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는 고통의 무게를 나는 어림할 수조차 없었고 “(죽은 자식을)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걸었다”는 사랑의 크기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팽목항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목적을 갖고 거리를 알고 가는 길임에도 그랬다. 같은 길이라도 그게 불분명할 때는 더 멀게 느껴지는 법이다. 참사 당일, 이 길을 갔을 분들의 심경을 떠올려본다. 살아있는 아이에게 옷을 갈아입혀 데려오겠다는 목적으로 길을 나섰을 것이다. 그 목적이 시시각각 흔들릴 때 이 길은 얼마나 무섭고 길었을까? 간간히 휴게소에서 바람도 쐬고 수다도 떨면서 가는 길과는 아주 달랐을 것이다. 그런 지옥의 길을 또 걸어서 가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지금 심정은 어떤 것일까? 공감? 감정이입? 그것의 불가능성을 뼈저리게 느끼면서도 조금이나마 가깝게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이 길에 동행하고 있다.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하고 실종자를 가족품에 돌려주자,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확실히 하자, 이런 취지의 집회가 팽목항에서 열렸다. 굳이 요구하지 않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참사의 피해자들에게 응당 정부가 하고도 남았을 일들이다. 그런 당연히 할 일을 요구하기 위해, 유족들이 밥을 굶고 노숙을 하게 한 것도 모자라 수백 킬로를 걷게 만드니, 이 정부는 정말 잔인하다. “힘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픈 몸뚱아리로 걸었다”는 이들에게 ‘힘 있는’ 정부는 언제까지 빗장을 지를 것인지…. 우리가 굵은 통나무를 함께 들고 그 빗장을 뽀개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사회자가 집회를 시작하며 질문을 한다. 사회자 또한 유가족 중 한 분이다. “세월호를 인양하는데 얼마나 들까요?” 정부 관계자가 읊조렸던 액수를 속으로 헤아려보는데, 사회자가 죽비를 내리친다. “지금, 숫자를 말하시는 분들은 답이 틀린 거다. 이건 비용계산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가 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 존중의 가치, 그 가치를 되새기고 재정립하자는 게 세월호 이후의 목적이었다. 그 목적을 잊고 습관처럼 ‘가격’을 떠올리니 나는 아직 팽목항에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자를 보며, 나는 한숨짓는다. 나는 그를 알고 있다. 학창시절, 철거지역에서 아이들 공부방도 했고 공부방 재정마련을 위한 달력도 같이 팔았다. 학교 앞 그의 자취방에 몰려가 술 마시고 사고도 많이 쳤다. 참사 이후 언론에 나오는 그를 알아봤고 집회에서 여러 차례 봤지만, 한 번도 아는 척을 못했다. 이 날도 그는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말을 못 걸었다. 20여년 만에 본 동문에게 “네 딸이 그렇게 됐다며”로 말문을 터야 할 상황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지가 305일 째다.

 

  ‘실종자인 18살 딸을 장례식장으로 보내달라’고 어머니가 울부짖는다. 실종자의 오빠는 참사 이후 사람을 못 만나고 바깥에도 못나간다고 한다. “지금도 혼자 집에 있는 그 아이에게, 인생을 시작도 안한 그 아이에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란 약속을 지켜달라는 게 엄마의 소망이다. 정말 도와달라” ‘하루 알바’ 갔다 죽은 아들의 아버지는 “미안해서 걸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강조하는 “하루 알바”란 말이 가슴에 걸린다. 피해자들 중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기억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어둠이 내리고, 참여자들이 날린 풍선이 잠시 별처럼 빛났다. 세월호 인양 촉구를 염원하는 풍선들이다. 유족 중 한 분은 “세월호 인양은 양심의 인양”이라 했다. 왜 그 말에 ‘양심이 밥 먹여주냐?’는 비아냥이 환청처럼 들리는 것인지, 정부 책임자를 포함해 도처에서 날뛰는 잔인한 입술들의 성과인가 보다. 우리의 목소리를 더 많이, 더 단호하게, 더 따뜻하고 예쁘게 만들어야 이런 환청이 사라질 듯싶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만들어야 할 가치를 확인하는 4.16 인권선언을 준비하는 모임이 최근 시작됐다. 이 선언은 공감과 감정이입, 시민 각자의 정치적 책임과 공동체의 의무를 전파하는 입술이 되고 싶다.

 

  주차장엔 전국에서 사람들을 데려온 차들이 빼곡하다. 모두가 다시 먼 길을 간다. 팽목항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우리가 떠나고 나면, 그 가슴에 휑한 기운이 돌 것이다. 위로와 동행은 계속돼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팽목항을 목적지로 품고 길을 나선다. 가야하는 목적을 알기에 길의 멀고 고됨을 탓하지 않을 것이다.

 

글 _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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