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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코뮨주의 선언 – 정정훈 변호사

[읽으면서 생각하기]

흐름으로서의 대중과 촛불

<코뮨주의 선언> (고병권,이진경 외 지음, 2007, 교양인)

정정훈 변호사

1.

   ‘그들의 말이 옳은 것 같았다. 그러나 임금님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행차를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그러자 시종들은 있지도 않은 옷자락을 받쳐 들고서 더욱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안데르센의 ‘임금님의 새 옷’ 중에서)

2007년 출판 당시 읽었던 책『코뮨주의 선언』을 이번 촛불집회를 보면서 다시 떠올리고 꺼내어 읽었다.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진은영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임금님의 벌거벗은 행차가 계속되는 것으로 동화의 끝을 맺는다. 그러나 진은영은 동화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 생각을 이어간다. 구경꾼들은 흩어지지 않을 것이고, 행차가 계속되는 한 따라가며 웅성거리고 웃고 떠들 것이라고, 엄숙한 국가적 퍼레이드의 시간이 가장 행렬을 구경하는 유쾌한 시간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2.

진은영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통해 ‘기쁜 감응의 활성화’와 유머의 시간을 만든 어린아이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술렁임이 일고 웃음이 사람들 속으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벌거벗은 임금님’ 이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에서, `우정과 기쁨의 정치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코뮨주의 선언』의 문제의식은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들은 코뮨주의가 대중들의 운동에 관한 사유임을 밝히고, 대중을 대상화된 실체가 아니라 ‘흐름’으로 파악한다. ‘흐름’으로서 존재하는 결정불가능한 대중, 우발적인 ‘사건’을 계기로 대중의 잠재성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성의 계몽적 사용이 아니라 정서적인 감응능력이라는 것, ‘전위’는 대중을 기다리며 지도하는 자가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 내는 ‘촉발’이고 아방가르드라는 점, 체제를 유지하게 하는 냉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쁨을 생산하는 활동을 직접 개시하여야 한다는 점 등.

그리고 『코뮨주의 선언』의 문제의식은 촛불집회의 새로운 특징들과도  만난다. 10대 소녀들의 등장으로 인한 촉발, 즐거움이 감염되는 축제로서의 저항, 지도를 거부하는 자발적인 움직임 등.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이 새로운 현상들에 대하여 『코뮨주의 선언』은 이미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3.

『코뮨주의 선언』의 전위와 대중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집단지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에는 문제제기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중을 ‘흐름’으로서 파악하고, 전위를 ‘소수적 흐름’을 창조하는 촉발의 자리에 위치 짓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회운동과 정당 정치의 역할과 위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휘자가 존재하지 않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름다운 연주라는 공통 목적이 존재할 경우,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는 대립적이지 않다. 궁극적으로 모두가 연주자인 동시에 지휘자인 유동적인 배치를 구성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배치 속에도 지휘자의 기능과 역할은 존재한다.

문제는 지휘자와 연주자간의 관계를 위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레닌은 지휘자를 ‘전위’에 배치했고, 싸르트르는 지휘자를 ‘중간’(계급)에 고정시켰다. 반면에 그람시는 연주자들 사이에 지휘자를 유기적으로 위치시키면서도 그 기능적인 차이를 무화하지 않는다. 단 고정된 위계를 설정하지 않기 위한 계속되는 긴장을 필요로 할 뿐이다. 연주의 과정에서 지휘자는 지휘봉을 든 연주자일 뿐이다. 지휘자와 연주자, (유기적) 지식인과 대중은 서로를 구성하고 완성한다.

4.

이 책 『코뮨주의 선언』은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제안들로 넘쳐난다. 대중에 대한 새로운 사유, 휴머니즘에 대한 근본적 비판, 적대의 정치가 아닌 우정의 정치에 대한 제안 등. 내가 서 있는 생각의 자리를 점검하게 하는 질문들을 솟아오르게 한다.

술렁임과 웃음이 전염되는 행복한 장면이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의 결말은 아니다. 위선의 행진을 위한 폭력의 동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정과 기쁨의 정치학’은 그 이야기를 계속하여야 한다. 아무도 실패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만 실패할 것”이라는 저자들의 선언처럼 실패하더라도 성공하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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