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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권하는 책] 사람으로 살고 싶다 – 사람인 까닭에


 




1. 얼마 전에 가족들과 함께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라는 영화를 보았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네 가족은 동물원 운영이 어려워져 동물들을 배에 태워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한다. 그러나 배가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게 되고 결국 파이와 뱅골 호랑이(‘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가진)만 구명보트에서 살아남아 227일간 바다에서 지낸 이야기이다. 영상이 너무나 아름다워 기억에 오래 남은 그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의미를 던지고자 한 듯한데, 내게 전해진 의미는 인간과 호랑이로 대표되는 자연이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그래서 공존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2.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지 한참을 지났지만, 최저임금은 올해도 한 끼 밥값도 되지 않는 4,860원이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사태는 몇 년 째 해결되지 못한 채 공전되고 있고, 그러는 사이 희망을 잃어버린 해고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목숨을 끊고 있다.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소상공인들은 하루하루 버텨내기가 힘이 든다.


 




3. 이렇게 힘든 세상을 버텨내기란 쉽지 않다.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을 알지만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고통에는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그리고 내 가족만 살아남는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그렇게 고통받고 외면받는 이들과 함께하고자 지난 21년을 단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인권운동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류은숙 활동가이다. 류은숙 활동가는 『사람인 까닭에』라는 책에서 “인간사는 거대한 채무관계이고, 다른 모든 이들의 도움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인간 각자에게는 타자에 대한 부채와 책임이 있다”는 레옹 부르주아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람인 까닭에 서로 기대어 서지 않는 관계는 없고, 사람인 까닭에 고통받는 타인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하며, 그들과 함께 겪고 함께 버텨야 한다고 호소한다.


 




4. ‘사회와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이 겪은 고통과 희생에 빚을 안 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이 옥에 갇힌 일로 하늘이 무너졌던 한국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약칭 ‘민가협’)의 엄마들은 자식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당한 아르헨티나의 ‘오월 광장 어미니회’의 엄마들을 만나서 “그래도 나는 내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고 면회도 가니 감사할 뿐”이라며 “여태 당신들의 고통을 몰라서 미안하다.”며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받고 희생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빚을 지고 있다.


 




5. 단둘만 남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는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만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과 맹수의 관계이다. 그러나 딜레마는 일방이 타방을 죽이면 결국 자신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람인 까닭에) 그 사실을 깨달은 파이는 자신도 맹수인 리처드 파커도 살리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결국 자신도, 리처드 파커도 살려낸다. 냉혹한 신자유주의 사회, 그리고 돈이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도 내가 살려면 상대를 거꾸러뜨려야 한다. 그러나 상대를 거꾸러뜨리면 결국 나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6. 파이가 올라탄 구명보트에는 얼룩말과 오랑우탄, 하이에나도 있었다. 그러나 굶주린 하이에나가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이고, 이어서 뱅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죽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 아닌 인간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살리고 너도 살리는, 그처럼 함께 살리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기다림에 믿음을 주어야 한다. 정희성 시인은 <숲>이라는 시에서 메마른 땅에서 낯선 그대와 만나 제가끔 서 있어도 우리는 숲을 이루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나 역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글_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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