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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문을 열어라- 정정훈 공감 변호사

2007. 2. 21. 여수보호소 화재사건의 현장 공개와 보호소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오열하던 유족들의 손에 들린 피켓에는 “빨리 문을 열어라!”(快開門!)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빨리 문을 열라’는 그 고통의 절규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에도 쇠창살을 열 수 없었던 구조적 원인을 묻고, 외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닫힌 인식을 엄중하게 질책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슬픔과 분노의 힘으로 다다른 진실은 이렇게 명징한데, 장례를 치르기까지 가해자인‘우리’사회의 대응은 초라하기만 하다. 왜 문을 열지 않았는지, 그 구조적 원인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방화냐 실화인지를 질문하고, 이 사건을 통한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보다는 배상의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왔다. 형식적인 절차와 규정들에 갇혀 진실에 이르는 출구를 외면하고 있다.

2005년 10월 네덜란드의 공항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화재로 11명의 외국인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한 사건에 대하여 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 안전국(DSB)에 의한 1년의 조사 끝에 피해 규모 확대에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법무부장관, 주택부장관이 이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으며, 화재발생지에 있었던 생존자 39명에 대한 체류자격을 부여한 바 있다. 사회적 책임이 없이는 사회적 기억도 진정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출발도 있을 수 없다. 이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 ‘업무상과실치사상’이라는 형법의 적용을 넘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필수적 전제다.

사회적 책임은 ‘우리’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보호소’라는 명칭 하에 운영되는 구금시설,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10년이 넘게 존속한 현대판 노예제도, 노동관계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근로자’라면서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용허가제’. 진실한 존재를 가리는 이 모순적인 규정들에 놓인 인식의 폭력적 기초를 질문하고 대답하는 근본적인 노력이 존재하지 않는 한, ‘외국인’과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육중한 문은 열리지 않는다. ‘보호소’에 쳐져있는 쇠창살이 이러한 폭력적 인식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인간적 존엄을 침해해 온 것이었는지를 질문하지 않고 불탄 자리를 리모델링함으로써 문제를 서둘러 종결한다면 이번 화재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할 사회적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 이 사건을 통해 ‘보호소’ 바깥에 갇혀 있는 초라한 ‘우리’의 인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절규가 있는 곳에 진실이 있는 법이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듣고, 외치고 있는 소리를 ‘우리’는 아직 듣지 못하고 있다. “빨리 문을 열어라!”(快開門!).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가두고 있는 쇠창살을 걷어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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