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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싶었습니다_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난민지원단체 <피난처>

[만나고싶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난민지원단체 ‘피난처’

피난처. 전쟁통에나 어울릴 법한 이 말이 2007년 현재의 서울에도 존재하고 있다. 국제난민인권기독교자원활동가모임 ‘피난처’ (http://pnan.org)가 그것이다. 지난 1999년 창립되어 8년여의 기간 동안 국내외의 난민을 지원하는 데 여러모로 힘을 쏟아 왔고, 최근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수여하는 제14회 시민인권상을 수상한 ‘피난처’를 찾아가 보았다.

여느 NGO와 같이 번듯한 사무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피난처’는 일반 가정집의 한 층을 사무실로 삼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난민 지원을 위한 각종 자료들로 빼곡히 가득 차 있어,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 단체가 난민 인권 신장을 위한 수많은 의미 있는 일을 해 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러한 ‘피난처’의 활동의 중심에 서 있는 채은실 난민 담당 간사님과 난민 출신으로서 직접 피난처에서 난민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맘푸야(Mampuya, 가명) 씨로부터 ‘피난처’의 활동과 우리나라 난민 문제의 현실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난민 지원 활동들

‘피난처’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피난처’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리자, 채은실 간사님은 비교적 자세하게 단체의 활동내용들을 정리해 주셨다.

우선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서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난민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했다. 난민신청을 위한 법적절차와 서류, 제출기간 등을 알려주는 일부터 시작해서 난민신청자들의 신청서 작성과 인터뷰를 돕고 그들이 난민임을 증명하기 위한 입증활동을 지원한다고 했다. 더 나아가 난민신청이 기각될 경우 로펌 소속 또는 개별적으로 자원하는 변호사들과 연계하여 난민신청기각 취소를 위한 소송을 진행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정정훈 변호사님도 이러한 피난처의 소송 수행을 도와주고 계신다고 했다.)

이러한 법적인 지원 이외에도 ‘피난처’는 여러 가지 문화적, 심리적 지원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열국아이학교’이다. 이는 난민 자녀들을 위한 주말학교로서, 난민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지난 5월 5일부터 시작한 활동이다. 이 학교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까지 진행되며, 콩고, 나이지리아, 버마, 줌마 출신의 아이들과 또래 한국 아이들이 어울려서 미술, 음악, 체육, 과학, 영어 등을 배우고 정기적으로 야외활동을 나가기도 한다. 때마침 인터뷰 시간이 이 학교가 열리는 시간과 겹쳐 잠시 방문할 수 있었는데, 한국의 아이들과 각 나라의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채은실 간사님은 이 학교가 단지 난민 아이들의 교육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까지 함께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피난처는’ ‘열국아이학교’ 뿐만 아니라 한 달에 2~3회 이루어지는 난민가정방문을 통해 쌀, 반찬 등의 생필품과 의류, 가구 등의 재활용품을 나누어 주고 그들의 심리적인 지지대가 되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명절과 난민의 고유 명절 때에는 난민들을 초청하여 음식과 놀이를 나누는 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피난처’는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거리 캠페인을 매주 2회 정도 실시하고 있으며, 난민 문제 및 난민발생지역의 인권상황에 관한 각종 조사와 연구발표를 실시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난민의 피난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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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 피난처 홈페이지 www.pnan.org]

 

정부의 무관심과 냉대, 그리고 그보다 가혹한 제도적인 모순

그렇다면 ‘피난처’의 지원을 받는 난민들은 주로 어떤 국가 출신일까? 지원하는 난민의 출신 국가와 각 나라별 난민 문제의 특수성을 묻자 채은실 간사님은 “버마, 콩고, 네팔, 우간다, 르완다, 이디오피아, 방글라데시, … “ 라고 하며 수많은 나라들을 언급했다.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의견의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 또는 두 가지 이상의 사유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 자신의 나라를 떠난 사람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각 나라가 위치한 지역에 따라서 난민이 발생하는 사유가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가장 난민이 많은 아프리카 지역(콩고, 우간다, 르완다, 이디오피아)에서는 주로 민족간의 혹은 정치적인 내전 때문에 난민이 발생한다고 했고, 이슬람 국가들이 많은 중동 지역에서는 종교적 박해 때문에 난민이 발생한다고 했다. 아시아 지역은 비교적 난민 발생 사유가 다양한데, 미얀마에서는 군부독재에 항거하거나 국교인 불교를 거부하다가 난민이 되는 경우가 많고, 네팔에서는 마오이스트 활동 등 정치적인 내전으로 인하여 난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인 줌마족의 경우에는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 및 자치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하여 난민이 발생한다고 했다.

이렇듯 전 세계 각국에서 난민이 발생하는 사유가 다양한데, 우리 정부가 과연 이러한 다양성을 고려하여 난민에 관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채은실 간사님에게 난민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 및 사회의 태도를 묻자 가장 먼저 나온 대답이 “정부와 사회는 난민 문제에 관하여 잘 알지 못한다.”였다. 일반인들은 한국 사회에 난민이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며, 정부는 각 나라의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 하다고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 부족, 그리고 그로 인한 인력 및 예산의 부족이라고 채은실 간사님은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난민들의 출신 국가의 언어를 제대로 통역할 수 있는 통역사조차 미비한 실정이어서, 난민들이 처한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위험을 제대로 포착해 내지 못 한다고 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 정부는 난민들의 출신 국가의 정부와 외교적인 마찰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2007년 6월 22일 기준으로 총 1387명이 난민 신청을 했는데, 그 중에서 난민의 지위가 인정된 사람은 고작 62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부의 무관심뿐만 아니라 난민 관련 현행 법제도 또한 여러 가지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난민 관련 문제가 ‘출입국관리법’을 통하여 규율되고 있는데, 이 법은 여러 가지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난민 신청 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체류자격만 부여할 뿐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기간동안 난민들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난민인정 심사기간을 법정하고 있지 않아 길게는 신청 후 4~5년이 지나도 심사가 완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이 일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것은 난민 신청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할 것이다. 난민 제도가 잘 짜여져 있는 캐나다에서는 체류자격 뿐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자격까지 부여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난민 신청이 기각되었을 때 그에 대한 이의신청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4에 의하면 난민 신청이 기각되었을 때에는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7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한국어에 서툰 난민들이 기각의 이유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작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이는 난민 신청 기각에 대한 불복의 기회를 사실상 봉쇄하는 것으로서 난민의 절차적 지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피난처에서는 이러한 문제 규정들을 개정하기 위하여 포럼을 개최하고 법무부에 개정요구를 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인권상 수상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

화제를 돌려서, 지난 9월 13일 제14회 서울지방변호사회 시민인권상을 수상한 소감을 물었다. 이 상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인권사상의 보급 및 계몽을 위하여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공이 큰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여 그 창립기념일에 수여하는 상으로서 1993년부터 수여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 상을 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라고 소감을 밝힌 채은실 간사님은 수상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난민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피난처’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이라고 하기에는 피난처의 활동이 난민 분야에서 이룩한 성과가 녹록지 않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심사강평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난민지원단체로 난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박해에 대한 심리적 외상 때문에 갖게 된 스트레스장애와 언제 강제송환되어 박해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난민을 부담으로 여기는 국가 및 사회의 냉대 그리고 피난지에서의 힘겨운 삶 때문에 고립되고 소외된 채 생활을 하고 있는 난민들에게 한국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물질과 사랑을 나누고, 이들 난민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 및 난민 인권상황 모니터링과 난민인권개선 캠페인, 북한자유이주민의 정착지원, 해외 북한난민의 구조 등 다양한 인권운동을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난민 신청자 자신들의 박해에 대한 주장과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자원활동 등을 통하여 난민의 인권보호와 국민들의 난민보호의식 및 난민보호제도 개선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던 점을 높게 평가하였다.’라고 선정이유를 밝히고 있다.

피난처의 이번 시민인권상 수상은 지난 8년여 간의 꾸준한 활동과 노고를 치하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공적으로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숨을 고르면서 기쁨을 만끽할 법도 한데, 피난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다. 당장 9월부터 시작된 해외 리서치 사업이 그것이다. 유럽과 동남아시아로 나누어서 진행되는 이 사업은 9월 6일부터 9월 19일까지는 유럽 각지에서 난민보호제도를 조사하고, 9월 20일부터 10월 5일까지는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난민인권현지실태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유럽에서의 조사는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난민지원 단체들을 방문하여 선진화된 난민지원제도와 난민지원실태를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피난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역할 모델을 찾고 난민지원활동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조사는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국경지역에서 난민들의 생활 상황을 조사하여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이들 국가의 난민들이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할 때 입증을 위하여 사용할 증거자료 등을 수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활동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나은 활동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오늘의 피난처를 있게 한 원동력이자 시민인권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채은실 간사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난민 문제에 대한 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서 콩코 출신 난민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맘푸야 씨와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는 경영학과 정보학을 전공한 인텔리로서 콩고민주공화국의 정보기관인 ANR 요원으로 활동하였는데, 현직 콩고 대통령이 콩고를 4분할하려고 한다는 조사보고서를 올렸다가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죄명을 쓰고 체포되었다. 투옥 직후 탈출에 성공한 그는 중국을 통하여 지난 2002년 9월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이후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하였으나 두 차례나 거부당하였다. 현재는 ‘피난처’의 도움을 얻어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피난처’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 수집과 분석을 돕고 있다.

한국으로 오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콩고분쟁 속의 내전, 인접국과의 정치적 문제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 휘말려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국가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굳이 한국을 택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고 밝힌 그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난민으로서의 삶을 고민해 볼 여유 없이 2002년 9월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를 묻자 자신에게는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다는 말을 꺼낸 그는, 콩고에 있는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자신의 세 아이들이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몇 년 전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에 고향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실수를 해서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하며 자신의 왼쪽 팔꿈치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맘푸야 씨는 그 외에도 난민인정 심사기간 동안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는 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으며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그는 난민에 대한 한국 정부(법무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큰 불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이유를 밝혔다.

“한국에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하고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간이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고, 심사 절차가 공개적이지 않기 때문에 심사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 심리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이 큽니다.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지 선정 절차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당장 내일의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불안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그는 자신의 지위가 조속히 안정되어 조국 콩고와 다른 여러 나라의 난민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맘푸야 씨의 바람이 피난처의 지원을 통하여 하루빨리 실현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난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태도 변화와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피난처’가 서 있을 것이다.

 

취재
_강수진 인턴
_서범욱 인턴


_서범욱 인턴

사진
_강수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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