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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기부자편지] 사랑하는 하닯이에게 – 전경태 기부자

   하닮아. 아빠가 오늘은 하닮이에게 ‘공감’이라는 곳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려고 해.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빠가 어떻게 ‘공감’을 알게 되었는지, 아빠한테 ‘공감’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 줄게. 잘 들어봐. ^^ 아빠가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던 2006년 가을이었어. 법대 진학, 고시공부, 1차사법시험 합격.. 모든 것이 우연처럼 느껴졌던 아빠는 왜 나에게 자꾸 이런 우연이 주어지는지 궁금했어. 아빠가 해야 하는 일을 발견하도록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빠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였어.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그 인턴공고를 아빠는 기다리고 있었어..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있었거든. 아무리 기다려도 학교 홈페이지에 공고가 올라오지 않기에 공감 홈페이지를 물어물어 찾아갔지. 그런데 아뿔싸. 이미 접수기간이 끝난 거야. 전화를 걸어 한참 생떼를 쓰고 겨우 자기소개서를 보내게 되고 운좋게 2차 면접을 치렀지만, 합격자 명단에 아빠가 없는 것을 보고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했어. 아쉽지만 내 관심이 부족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됐거든. 하지만 이틀 뒤 발표된 추가합격자 네 명 중에 아빠 이름이 있었어. 우연과 운으로 점철된 아빠의 인생에 아주 결정적인 행운이었지.^^ 그렇게 아빠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게 되었단다.

  왜 천재일우의 기회냐고ς 이제부터 자세히 설명해 줄게. 아빠는 법을 공부하고 실생활에 그 법을 적용함에 있어 항상 추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어. 법을 공부해서 좋은 곳에,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리라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던 거야. 눈앞에 수건을 쓰고 거울을 보는 것처럼 그냥 뿌옇게만 보였던 거야. 아빠의 미래도. 아빠가 해야 할 일도. 법이 실현하고자 하는 이상도… 하지만, ‘공감’은 아빠의 그런 뿌연 시각을 환하게 해 주었어. 법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구나. 동성연애자라고 에이즈환자라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사람임을… 사회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걸로 보였던 이주노동자들도 외국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몸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모든 것이 불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가가 그 구성원인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몇몇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이 이러한 모든 것을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바꾸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빠는 점점 ‘공감’에 중독(ς)되어 갔어. 간사님으로부터 ‘공감에 미친 사람’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도 얻게 되었지. 하지만, 아빠는 아빠가 공감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이 아쉬웠어. 아빤 아직 실력도 부족했고, 게을렀거든.

  또 한 번의 우연으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아빠는 매우 작은 금액이긴 했지만 공감에 기부를 시작했단다.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도 흔쾌히 동참해 주었어. 그 때는 아빠와 엄마가 결혼을 하기 전이라 각자 기부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둘 중 한 명만 해도 될 걸 그랬나봐. 농담이야.
  가까스로 합격해서 시작하게 된 인턴생활이었지만 열심히도 못했고 큰 도움이 못 되었다는 생각에 아빠는 ‘공감’에 대해 많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어. 그리고 공부를 핑계로 방기해 놓은 아빠의 법조인으로서의 의무와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 번 실현해 보고 싶었어. 그래서 아빠는 공감에서 변호사실무수습을 하기 위해 다시 지원했단다. ‘공감’에서 두 종류의 인턴을 모두 체험한 최초의 인턴이 되었지.
  이 두 달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몰라. 두 달 역시 아빠가 부지런하지는 못했고(아빠는 우리 하닮이가 아빠를 닮지 않고 엄마를 닮아서 부지런했으면 좋겠어.^^), 가끔은 변호사님들, 간사님들, 인턴들께 폐를 끼치기도 했지만, 인턴으로 있을 때보다 일이 훨씬 더 재밌었거든. (물론, 아빠의 강력한 요청으로 변호사님께서 영어번역하는 업무를 안 맡기신 것도 매우 큰 이유지.^^) 아빠는 두 달 동안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불법단속과정에서 실수로 단속공무원을 다치게 한 이주노동자 아저씨와, 직장상사에 대한 비리를 고발했다가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한 아저씨를 위해서 일했는데, 그 과정들이 쉽지는 않았어. 법이란 너무 기득권을 위해서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아빠는 많이 고민했어.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 건가. 법은 또 어떠해야 하는 건가. 국가와 법은 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해 주지 않는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질서에 대항한다는 이유만으로 왜 국가와 법은 그들을 소외시키는가. 그리고 이놈의 세상은 왜 그리도 변하지 않는 것인가.
  아빠가 존경하는 정변호사님께도 이런 이야기를 여쭈어 본 적이 있었어. 아빠는 정변호사님과 함께 의정부지방법원에 자주 갔었는데, 항상 재판을 마치고 나면 전철역 앞에 있는 도너츠집에 가서 커피랑 베이글을 먹곤 했거든. 거기서 정변호사님과 함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일에 안타까워하면서 이야기 하다가 아빠가 물었어. “변호사님,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ς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다는 생각 안 드세요ς” 커피를 마시던 정변호사님께서 대답하셨어. “세상이 진짜 안 변하더라구..”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찰나 정변호사님은 아빠를 다시 놀라게 하셨어. “근데, 내가 변하더라구.. 내가..”
  하닮아.. ‘공감’이라는 곳은 이런 곳이야.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곳. 아무리 해도 해답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하는 곳. 하지만, 하닮아.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다 해도 ‘공감’을 통해 또 한 사람이 변하고 있단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고.. 그렇다면 언젠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변하지 않을까ς 그리고 그들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 않을까ς

  아빠는 ‘공감’의 구성원도 아니고, ‘공감’의 열혈기부자도 아닌, 그냥 ‘공감’을 아는 한 사람에 불과해. 하지만, 아빠가 하닮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우리 하닮이에게도 꼭 ‘공감’을 소개해주고 싶어서야. 모르는 사람들은 가망 없다고 하는 싸움이지만 결국에는 얻을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찬 채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공감’을 우리 하닮이도 알았으면 해서 말이야. 우리 하닮이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수고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꼭 가르쳐주고 싶어서 말이야.
  다음에 하닮이가 태어나고 걸어다닐 수 있을 때쯤 되면 꼭 아빠랑 같이 ‘공감’에 가 보자. 아빠가 정말 훌륭한 스승들을 많이 소개시켜 줄게. 우리 하닮이도 아빠랑 엄마랑 그리고 ‘공감’과 함께 멋진 세상을 만들어 보자. 12월 15일에 우리 처음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안녕~

※ 하닮이 : 2008년 12월 15일에 세상에 나올 예정인 제 아이의 태명으로 ‘하나님을 닮은 아이’ 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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