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자원활동가의 활동]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관람 후기 _ 이수민, 정유경 (41기 장애팀 자원활동가)
기울인 몸들. 기울어진 몸들. 너와 나의 몸. 너와 나의 몸.
본 전시의 제목은 어감상 조금 더 수동적으로 들리는 ‘기울어지다’가 아닌 ‘기울이다’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몸’을 어떠한 상태로 만든 원인보다는 어떻게 적극적으로 ‘몸’을 ‘기울’여 서로 만나도록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생각되었다. 기울인 형태가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는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기울임이라는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우리는 고민하고, 서로를 돌보고, 연대할 수 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몸’이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몸, 소외되고 진단되는 몸, 관찰의 대상이 되는 몸, 연민의 대상이 되는 몸… 전시는 이러한 몸들을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묻는다. 이러한 몸들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취약함’과 ‘연루됨’이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이라는 구분을 전제하며, 특정한 몸만을 ‘표준’으로 삼고 다른 몸은 치료되거나 배려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기울인 몸들》은 이러한 이분법을 해체하고, 모든 몸이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며, 누구나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취약성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전시 전반에 걸쳐 드러낸다.
장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 전시는 ‘의료 모델’이 아닌 ‘사회 모델’의 관점에 입각해 있다. 의료 모델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으로 간주하고 이를 치료하거나 보완하는 데 집중한다면, 사회 모델은 장애를 환경적·사회적 장벽의 산물로 본다. 전시는 후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몸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와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각화하고 있다. 예컨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을 시각적으로 구성한 《블록 파티》는 배리어프리 환경이 단지 ‘배려’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공의 구조임을 제안한다.
또한, 장애가 있는 몸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작업들도 돋보였다. 김 크리스틴 선의 《일상의 수어》는 수어 사용자이자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는 구조를 통해 수어의 주체성과 비장애 중심 언어 환경의 불완전성을 환기한다. 여기서 ‘소통’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감각과 언어 체계를 존중하며 함께 의미를 구성해가는 실천임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돌봄 노동의 가시화다. 사회는 종종 돌봄을 가족의 의무나 여성의 역할로 당연시하지만, 돌봄은 필연적으로 사회 전체가 연루된 공공의 과제다. 알레시아 네오의 영상작품 《땅과 하늘 사이》는 정신질환 가족을 돌보는 이의 고통과 헌신, 보람과 행복을 드러냄으로써,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조명한다. 천경우 작가의 《의지하거나 의지되거나》는 노년 여성들의 상호 지지와 의존을 사진과 퍼포먼스로 구성함으로써, 노인도 능동적인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세상의 많은 정체성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하는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돌봄노동자와 돌봄대상자, 환자와 비환자, 노인과 청년이라는 구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든 ‘다른 몸’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전환 가능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연대와 환대의 공간이 형성된다. 이 전시는 그 가능성을 몸으로, 공간으로, 작품으로 말하고 있었다.
《기울인 몸들》은 ‘기울인 몸’ 자체를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기울인 몸’이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타인의 세계에 다가가고,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적극적인 주체임을 드러낸다. 결국 우리 모두는 ‘기울인 몸들’이 되어야 한다. ‘정상’이라는 허상을 유지하는 대신, 서로의 취약함을 인지하고, 그 취약함을 향해 기꺼이 몸을 기울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출발점 아닐까.
글 : 이수민 (공감 41기 자원활동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관람 후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는 ‘다양한 몸’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단순히 차이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존재 방식 자체를 존중하는 시선에서 시작한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무엇이 ‘정상’인지 구분하고 선을 긋는 사회 속에서, 기울어진 몸, 불편한 몸, 낯선 몸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과연 어떤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는 전시였습니다. 전시에서는 장애뿐 아니라, 노인, 여성, 이주민 등 다양한 정체성과 조건 속에 놓인 몸들을 다루며, 서로 기대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이 전시를 통해 저는 몸이 단지 기능하거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 ‘기댈 수 있는 존재’,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몸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기울일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때 서로의 기울기를 이해하고, 맞닿고, 기대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전시는 그런 질문들을 조용히 건네며, ‘취약함’이란 부끄러움이 아니라 모두가 당연히 공유하는 것이며 서로에게 닿기 위한 열린 자세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전시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부터 ‘접근성’을 고려하려는 노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실제로 만져보며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전시장 바닥에는 점자블록이 깔려 있었으며, 공간 구조를 알려주는 촉지도도 함께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어떤 몸’이든 편안하게 들어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미술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몸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도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담긴 전시였습니다. 몸의 언어로 시작해, 서로를 향한 시선과 연결로 마무리되는 이 전시를 끝으로 자원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어 더욱 뜻깊었습니다.
글 : 정유경 (공감 41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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