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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용어# 노동자# 취약노동

풀어쓰는 노동용어 – 노동자 오분류

‘무늬만 프리랜서’ 혹은 ‘가짜 3.3’

오(誤)분류는 잘못 분류하다이다. “노동자 오분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잘못 분류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퇴직급여법, 임금채권보장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법률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잘못 판단되는 경우 부당히 근로자로서의 다양한 권리가 박탈되고 보호의 사각지대가 놓이게 된다.

최저임금보다는 낮은 급여를 받고, 아무리 오래 일해도 퇴직금을 받을 수 없으며, 임금 체불을 경험해도 안전망이 없고,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과 직장에서의 성차별을 경험하여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에 제한이 없고 주휴일과 연차휴가도 없으며 언제든지 어떤 사유로든 해고될 수 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전부 직접 부담하여야 한다. 근로자가 아니라고 분류되어 어떠한 보호도 없이 계약의 최소한의 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채 일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데도 프리랜서로 보는 경우, 근로계약을 맺어야 할 것 같은 상황에서 도급계약, 위수탁계약, 프리랜서 계약 등 낯선 이름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정해진 임금을 받는데도 1인 사장으로 둔갑하는 경우 모두 노동자 오분류의 사례다.

 

‘근로자’는 누구인가?

오분류된 노동자들은 노동법상 당연히 보장된 권리들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로자성부터 증명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9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근로기준법이 정의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다(여기서는 법원이 보조적인 기준으로 사용하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한다, ② 사용자가 정한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③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④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받는다, ⑤ 업무에 필요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지 않고 지급받는다, ⑥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신하게 할 수 없다, ⑦ 사업의 이윤 또는 손실을 부담하지 않는다, ⑧ 지급받는 보수가 근로 제공 자체를 대가로 지급된다, ⑨ 사용자와의 근로제공관계가 어느 정도 계속적이고 전속적이다. 법원의 판단은 “종합적”인 판단이라 모든 기준을 동일한 정도로 충족할 필요는 없다.

근로기준법의 정의 규정은 근로관계가 전속적이거나 계속적일 것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법원은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전속성을 평가하여 근로자의 범위를 규정보다 축소한다. 이처럼 법원의 근로기준법 근로자 해석은 비판할 점이 많다.

노동자 오분류로 열거된 기준들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면 충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노동자들조차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법의 오래된 죽음

근로자성을 증명하라는 것은 사실은 위에서 말한 9가지의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라 절대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에 비해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숨기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체결하는 계약의 이름만 근로계약에서 도급계약 또는 위탁계약 또는 프리랜서 계약으로 바꿔도 반은 간다. 거기에 플랫폼처럼 사용자의 지시를 알고리즘 뒤에 숨기거나 근로자와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거나, 고정된 사업장 없이 외근 노동을 시키면 근로자성을 숨기기 더 수월하다. 그러나 위장을 걷어 보면 알고리즘의 지시가 곧 사용자의 지휘·감독이고, 외근 장소는 사용자가 지시한 근무 장소이며 건당 수수료도 근로 제공의 대가로 지급된 임금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사용자가 노동자들을 한곳에 집합시켜 직접 지시하지 않고도 노동자들을 실시간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어 근로자성을 숨기기 쉽게 만들었다.

그래서 노동자 오분류는 사실 어떤 직종에서든 일어날 수 있지만 플랫폼노동자, 배달노동자, 헬스트레이너, 방송작가, 뮤지컬 앙상블 배우, 대리운전기사, 채권추심원의 경우와 같이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직종, 기본급 없이 건당 임금을 받는 직종, 업계 관행상 고용계약을 맺지 않던 직종 또는 외근하는 직종의 경우에 특히 문제 된다.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분류할 수만 있다면 사용자의 부담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전혀 부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임금의 하한 없이 시간의 제한 없이 일을 시킬 수 있다. 휴가도 줄 필요가 없다. 언제든 어떤 이유에서든 해고도 가능하다. 근로자의 4대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위에서 본 박탈된 권리가 사용자의 이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노골적인 압박으로 때로는 적극적인 무지로 근로자는 사업자로 둔갑된다. 마구잡이로 임금에서 3.3%의 사업소득세를 원천 징수하기도 하고, 일단 도급계약을 내밀고 서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오분류된 노동자의 규모를 측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오분류된 노동자가 주로 속할 1인 자영업자(3.3%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자영업자이지만 아무도 고용하지 않고 인적용역을 제공하고 받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대상자)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대상자는 862만 명이다. 2019년 669만 명에서 연평균 48만 명씩 매년 늘었다.

노동자를 일단 근로자가 아닌 독립사업자로 분류하는 것이 자본에 이득이니 손을 놓고 있으면 노동자 오분류는 더욱 만연할 것이다. 그러면 노동법은 살아 있지만 죽은 법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처음부터

노동자 오분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현행법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노동자들이 근로자로 분류되지 못하는 문제에 가깝다. 그래서 특정 직종 또는 특정 고용형태를 대상으로 하여 근로기준법과는 구별되는 보호를 하고자 하는 플랫폼종사자 보호법안이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법안과 같은 입법안들은 노동자 오분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이미 비전형 근로의 확대와 고용의 오분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고용관계 권고(198호)를 통해 계약형식으로 인해 노동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박탈당하는 상황을 ‘위장 고용관계’로 보고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들에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고용관계의 지표가 존재하는 경우 고용관계의 존재를 추정하는 제도의 도입을 권고했다.

유럽연합은 2024년 플랫폼 노동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Directive (EU) 2024/2831)을 채택하여 플랫폼노동자들이 근로자로서의 보호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회원국들에 플랫폼의 통제·지시가 있었다는 증거가 확인되는 경우 플랫폼노동자와 플랫폼 간의 고용관계를 추정하는 법제도를 2026년 12월까지 마련할 의무를 부여했다.

노동법이 현실적으로 작동하게끔 해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 오분류가 노동자를 제대로 분류하는 것보다 쉽고 이득인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 “민주노총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관련 법제도 개정 요구안”은 현행 근로기준법의 근로자 정의에 “자신이 직접 노동을 제공하고 사업주 또는 노동수령자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규정을 추가하는 것을 제안한다.2) 위와 같은 근로자 추정 규정이 신설되면 노동을 제공하고 사업주 또는 노동수령자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는 노동자는 일단은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로 취급되고, 위 추정을 뒤집고자 하는 사람이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근로자에게 있었던 노동법 적용에 대한 증명책임이 전환되는 것이다. 제22대 국회에는 근로자 추정 규정을 담은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다수 발의되어 있고3) 추정제도의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사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는 근로자의 범위가 넓어지면 노동자 오분류의 문제도 자연히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궁극적으로는 보호가 필요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적 보호가 확대되도록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의 범위 자체가 확대되어야 한다.

 

*이 글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발행하는 질라라비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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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희

# 취약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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