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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두 번째 책 선공개] 그래도 되는 OO은 없다 – ‘새우 꺾기를 당해도 싼 사람’은 누구인가 / 김지림

[공감 두 번째 책 선공개] – 그래도 되는 OO*은 없다 : 인권 최전선의 변론

‘새우 꺾기를 당해도 싼 사람’은 누구인가

화성 외국인보호소 ‘새우 꺾기’ 고문 사건

글_ 김지림

 

등 뒤로 수갑 채운 손목, 포승줄로 감아버린 발목, 그 상태로 손목과 발목이 묶여 허리가 새우등처럼 뒤로 꺾여버린 한 사람. 아니,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살핍니다.

자세히 보니 머리는 박스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고, 여러개의 케이블 타이까지 덕지덕지 매여 있습니다. 그렇게 사지가 묶인 채 꺾여버린 몸을 꿈틀대는 사람의 모습. 2021년 9월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긴 싸움의 서막을 알린 바로 그 장면입니다.

코로나19 확산을 선방하고 있다며 K-방역을 치하하던 그해, 방탄소년단의 활약으로 K-팝이 전세계를 제패한 그해, 한국 어딘가에서 기상천외한 자세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를 만난 첫날로 돌아가봅니다.

 

고문을 당했습니다, 2021년 한국에서

2020년 여름이었습니다. 첫번째 난민 신청에 실패하고 두번째 난민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의 사연을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0.4퍼센트에 불과했고, 공감도 난민 재신청 과정을 도와달라는 무수한 요청들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난민 신청서 접수 절차만이라도 함께 가달라는 간절한 이야기에 간단한 의견서를 준비한 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무라드를 만났습니다. 모국어인 아랍어 외에도 불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그와 함께 가까스로 난민 재신청 접수에 성공한 뒤 앞으로의 절차를 간략히 설명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걸려온 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맙소사,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외국인보호소였습니다. 갑자기 외국인보호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가 전화로 들려준 이야기는 더욱 황당했습니다. 극심한 치통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보내주지 않아 스스로 샴푸 두병을 마신 뒤에야 외부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보호소 직원의 욕설 등 부당한 대우에 항의할 때마다 별다른 설명 없이 독방에 구금되었으며, 독방 구금 상태에서 저항하면 여러명이 달라붙어 팔다리를 묶고 사지를 꺾은 뒤 피를 안 통하게 하는 고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여기 ‘한국’인데?

 

새우 꺾기를 당해도 사람누구인가

부끄럽게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부의 조력을 요청하던 그의 호소를 전부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동료 활동가와 변호사에게 직접 전달한 문서들을 읽을 때에도, 입소 이후 자신에게 발생한 고문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꼼꼼히 적은 자필 진술서를 읽을 때에도 그의 주장이 조금은 과장되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의 주장 중 단 일부분만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심각한 인권침해였기에 가만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갇혀 있는 피해자의 진술밖에는 없는 상황,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찾아보니 외국인보호소의 CCTV 보관기간은 통상 3개월 정도였습니다. 유일한 증거가 삭제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바로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을 했습니다. 독방 안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CCTV를 공개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CCTV에 담긴 진실

한달 뒤 법원에서 온 연락을 받고 꼬박 하루를 들여 1테라바이트가 넘는 CCTV 영상 파일을 받아와 책상에 앉았습니다.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는 상황. 영화에서도 무섭거나 잔인한 장면은 절대 보지 못하는 성격인 탓에 흐린 눈을 하고 수십개의 CCTV 영상을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수십시간에 달하는 그 긴 영상 속에는 무라드가 말한 어떠한 고문이나 인권침해 행위도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그 정도는 아니겠지 하는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무라드를 향한 배신감도 살짝 들었습니다. 이거 신청하고 받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얼만데….

‘당신이 주장한 어떤 내용도 CCTV 영상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하자 그는 극도로 분노했습니다. 보호소에서 의도적으로 다 삭제하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 장소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지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되새겨보니 그 수많은 동영상 속 등장하는 독방에는 아예 그의 모습 자체가 없었습니다. 불현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그는 다른 방에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첫번째 CCTV 신청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보내준 공식 문서에 적힌 시간과 장소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로지 무라드의 기억에 의지해 시간과 장소를 특정하고 CCTV 영상을 신청했습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받아낸 또 하나의 방대한 파일. 떨리는 손으로 확인한 파일 속, 그곳에 손과 발이 묶인 채 몸이 새우처럼 뒤로 꺾인 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한번이 아니었습니다. 10명 가까운 직원들이 달려들어 그의 몸을 제압하고 케이블 타이와 박스 테이프를 가져와 마치 물건 다루듯 그를 칭칭 감는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습니다.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던 모습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목도한 순간, 본능적으로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무라드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분노인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눈물을 훔치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거 큰 싸움이다.’

 

외국인을 보호하지 않는 외국인보호소

이 사건을 파고들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명색이 ‘보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외국인보호소는 대체 어떤 곳이기에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불법적인 고문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만약 누군가 오늘 당장 강도상해와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당일 교도소로 직행하지는 않습니다. 의심되는 범죄 행위에 대하여 경찰, 검찰의 수사 단계를 거친 뒤 형사법원이 모든 요건을 고려하여 ‘징역 3년 6개월’처럼 명확한 기간을 정해 징역형을 선고하면 비로소 교도소에 입소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어딘가에 가둔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자유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기관이 아주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한하는 대상과 기한을 심사하는 것이죠.

그런데 외국인보호소에는 그러한 ‘절차’가 없습니다. 누가 외국인보호소에 가게 될지, 외국인보호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외국인의 출입국을 관리하는 법무부 스스로 그리고 혼자 판단합니다. 외국인보호소가 ‘외국인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교도소’가 아니라, 이론적으로는 ‘한국을 떠나야 하는 외국인들이 실제로 출국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교도소처럼 혹은 교도소보다도 열악하게 운영됩니다. 교도소와 똑같이 정해진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하루에 한번 최대 30분 혹은 1시간으로 제한된 시간 외에는 바깥 공기를 쐴 수 없으며 가족 면회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러 국적과 종교의 외국인이 있다는 이유로 육류는 1년 365일 닭고기만 제공됩니다. ‘특별계호’라는 명목으로 언제든지 독방에 구금될 수 있고 여차하면 포승줄로 손발이묶일 수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내가 대체 언제까지 구금되어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교도소가 아니기 때문에 범죄자에게도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이 바로 외국인보호소입니다.

보호소 입소부터 입소 후 생활, 퇴소까지 기본권이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모든 단계를 법무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심사해오면서 외국인보호소는 어느새 ‘새우 꺾기’와 같은 형태의 고문이 버젓이 자행되는, 그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외국인보호소에 가나요?

화성외국인보호소를 포함해 청주와 여수, 울산까지 4개의 외국인 전문보호시설이 있고, 또 각 출입국·외국인청 사무실을 보호소처럼 사용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법무부가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연간 3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외국인보호소를 거쳐 간다고 합니다. 2023년 5월 기준 3개월 이상 외국인보호소에 머무르는 장기 구금자는 그 수가 평균 100명에 달합니다.

대체 누가 외국인보호소에 가는 걸까요? 출입국과 관련된 법을 위반해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이 출국하기 전까지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냅니다. 사실 외국인보호소는 교도소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출국한다면 그날로 바로 외국인보호소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사정으로 외국인보호소에 기약 없이 갇혀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한국에서의 법률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했던 곳에서 떼인 임금을 아직 받지 못했거나 일하다 당한 부상에 대해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방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죠.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이 한해 평균 1,000억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으면서도 받지 못하는 돈을, 과연 다른 나라에 가 있는 상태에서 받을 수 있을까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돈을 받기 전까지 쉽게 출국을 결심하지 못합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국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여권 발급이 안 되는 나라의 사람이나 혹은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난민 신청자들은 한국에서 추방 명령을 받아도 안전하게 돌아갈 곳이 없기에 출국할 수 없습니다. 1퍼센트도 안 되는 난민 인정 확률을 뚫고 단번에 난민으로 인정되면 얼마나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00명 중 1명이 간신히 난민으로 인정받는 한국에서, 실패한 99명의 난민 신청자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요? 새우 꺾기 고문 피해자인 무라드 역시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위험 때문에 난민 신청을 한 상태였습니다. 첫번째 난민 신청에 실패하고 두번째 난민 신청을 한 뒤 빈털터리였던 그는 다른 나라로 갈 비행기 표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을 때까지 어떻게든 견뎌보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체류를 연장해야 하는 기한을 넘긴 상태로 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적발돼 외국인보호소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라드처럼 한국을 떠날 수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사람들은 외국인보호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최장기로 구금되었던 한 난민 신청자의 경우, 난민 심사 절차가 지연되면서 4년 8개월이나 보호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임시로 지내다 떠나는 것’을 전제로 운영되지만 어떤 이들은 필연적으로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는 곳, 그런데 오래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존재하지 않는 이곳, 외국인보호소의 인권침해적 운영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거듭되는 비극

2007년 2월 11일 새벽, 여수외국인보호소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이 외국인보호소를 집어삼키는 와중에도 담당 공무원들은 구금되어 있는 외국인들이 도주할 것을 걱정해 보호소 철창의 잠금장치를 열어주지 않았고, 결국 10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외국인에 대한 관리·감독을 우선한 결과였습니다. 보호소 운영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나 제대로 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 1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시설은 더욱 낙후되었고, 외국인보호소에 가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희미해져가던 중 새우 꺾기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실 이번 새우 꺾기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2년 전에도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똑같은 방식의 고문을 당한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진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외국인보호소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번 비극이 발생한 것이죠.

어떻게 사람을 기약 없이 가두고 또 가둔 채 고문에 가까운 인권침해가 일어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무라드의 새우 꺾기 CCTV 장면이 언론에 공개된 뒤, 과거 군사독재 정권 당시 국가기관으로부터 가혹 행위를 당했던 박래군 인권 활동가는 한 시사 프로그램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우 꺾기는 1980년대에 내가 당했던 고문”이라며, 새우 꺾기를 비롯해 독방에 집어넣고 신체적으로 징벌하는 방식의 폭력적인 대응이 외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교도소, 구치소와 같은 수용시설에서의 장비 사용에 관한 법인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을 살펴보면, 무슨 장비를 어떤 요건을 갖추어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그림 설명까지 동원해 아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새우 꺾기 같은 형식의 자세, 케이블 타이와 박스 테이프 사용 등은 이 법에 철저히 위배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외국인보호소는 ‘구금’이 아니라 ‘보호’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보니 오히려 이런 구체적인 법적 제한이 모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보호하라고 만들어진 곳에서 폭력적이고 압제적인 방식으로 장비를 사용할 것이라고는 상정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에 더해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그것도 ‘한국을 떠나기로 되어 있는 외국인’에 대한 법과 제도이기에 모두의 관심 밖에서 이다지도 허술한 채로 지속되어온 것입니다.

 

고문을 합법화하겠다는 법무부

좁디좁은 독방에서 새우 꺾기 고문을 당하는 무라드의 CCTV 영상과 사진이 공개된 뒤,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진정을 제기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영상이 가지는 힘은 컸습니다. 그간 의심만 했을 뿐 확인할 수 없었던 외국인보호소의 실상이 드러나자 전국 각지에서 함께 대응하겠다는 분들이 나서주었습니다.

우선 공감·두루와 같은 공익변호사단체, 이주민지원단체, 난민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이 대책위원회는 2021년 9월 결성되어 2024년 3월 해산하기 전까지 수십번의 회의, 법무부와의 면담, 수많은 기자회견과 토론회, 증언대회 등 행사를 기획하고, 고문 사건을 둘러싼 모든 법적 분쟁을 대리했습니다.

법무부는 사건이 공개된 후 내부 조사를 통해 일부 인권침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인 무라드를 풀어주지 않다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요청에 결국 새우 꺾기 고문이 보도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무라드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지 약 300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대책위원회가 제기한 인권침해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새우 꺾기 방식의 보호장비 사용은 그 피해자가 겪어야 할 신체적·인격적 고통을 고려했을 때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헌법에서 보호하는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생 1년 뒤,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 내에서 다시는 이런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신 결박용 침대처럼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장비 13가지를 외국인보호소에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다시는 새우 꺾기 같은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요구에 대한 답이 ‘보호소를 교도소처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정비라니요. 법무부가 자랑한 13가지의 새로운 장비 중에는 새우 꺾기 고문에 쓰인 ‘발목 보호장비’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무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새로운 고문 기구를 보았을 때, 잊고 싶었고 기억에서 지우려 했던 모든 감각과 기억이 튀어나와 나를 덮쳤다.”

– ‘외국인보호규칙 졸속개악 반대’ 기자회견

 

시민단체들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이 개정안은 무산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논란이 된 발목 보호장비, 보호의자 등을 뺀 5종의 보호장비를 새롭게 도입하는 외국인보호규칙이 기습적으로 발표되고 시행되었습니다. 그중에는 ‘하체용 벨트형포승’이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형식의 장비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법에 따르면 둘 이상의 보호장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하체용 벨트형포승과 양손수갑을 이용하면 결국 양팔과 다리를 결박하는 사실상의 사지 구속이 가능해졌습니다.

양손수갑과 하체용 벨트형포승 위 문서는 법무부가 2022년 12월 개정한 법무부령 제1038호 외국인보호규칙 중 ‘보호장비의 종류별 사용방법’의 일부입니다. 양손수갑과 하체용 벨트형포승을 사용해 팔다리를 어떻게 결박할지 그림까지 동원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없던 일도, 해도 되는 일도 아닌

국가기관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였기 때문에 우리는 궁극적으로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해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소송의 취지와 목적, 교도소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례들에 대한 판례를 참고해 현실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예상 금액을 산정하고 무라드에게 설명하니, 그는 허탈하다는 듯이 이야기했습니다. “외국인보호소 안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나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소송에 이기더라도 내가 겪은 그 끔찍한 일들이 고작 이 정도의 금액으로 없던 일이 될까봐 걱정됩니다. 오히려 약간의 돈을 내면 누군가를 고문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결과가 된다면 저는 이 소송을 진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누구도 그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겪은 일을 계기로 크고 작은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정작 무라드의 삶은 피폐했습니다. 보호소 내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은 보호소 밖에서도 그를 괴롭혔습니다. 사건 초기 법무부가 공개한 악의적인 정보들로 인해 관련 기사의 댓글은 늘 그를 향한 인신공격으로 가득했고, 고문 사건을 비판하는 외신 보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 역시 싸늘했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고문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고통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그의 한마디에 손해배상액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습니다.

진지한 논의를 거쳐 손해배상액을 높인 뒤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정에서 쌍방이 처음 만난 날, 법무부는 ‘모든 위법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분명 법무부 스스로도 내부 조사를 통해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인권침해 사실을 확인해주었는데 이제 와서 위법 사실을 전면 부인하다니, 허탈했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무라드는 법정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고 회상했습니다.

1년 넘게 법적 공방을 지속하는 동안, 법무부는 무라드에게 생긴 모든 일들이 ‘보호소 직원들이 그의 난폭한 행동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사건’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 갔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이 정도의 재량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고문 행위, 불이익한 처분은 재량의 범위를 넘어선 명백한 인권침해이고 불법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싸움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무라드의 또렷한 기억 그리고 CCTV에 찍힌 새우 꺾기 고문 장면, 몇장의 서류 외에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반면 법무부는 독방 구금 및 보호장비 사용에 이르게 된 과정과 정황에 대해 작성한 내부 서류들, 그리고 사건 전후 무라드에게 불리한 장면만 골라 편집된 CCTV 영상 등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제출된 자료들 속에서 추가적인 불법과 인권침해의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소송 과정에서 추가로 확보된 자료들을 종합하면, 무라드가 보호소에 입소한 지 6개월 만에 무려 18번 총 63일 동안 독방에 구금되었으며 그와 관련된 서류들은 구금 기간, 구금 사유 등이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보호소 직원들은 총 3차례에 걸쳐 무라드에게 새우 꺾기 고문 행위를 하면서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발목 수갑, 케이블 타이, 박스 테이프 등 위법한 장비까지 동원했습니다. 그중 한번은 사지가 결박되어 뒤로 꺾인 상태로 무려 3시간 넘게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추가 확보한 CCTV 속에서 10명 가까운 직원이 무라드를 둘러싸고 아무렇지 않게 박스 테이프를 가져와 묶는 모습, 꺾인 자세로 꿈틀대며 화장실 쪽으로 바닥을 기어가는 그의 모습을 또다시 확인했을 때, 세상 어디에도 ‘이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9일, 1년이 넘는 법정 공방 끝에 마침내 법원은 무라드에게 발생한 국가 폭력이 위법하다는 점을 확인하며 대한민국이 그에게 1,000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한 국내 첫 판결이었습니다.

법원은 새우 꺾기 방식의 고문이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더 나아가 무라드의 사건에서 외국인보호소의 자의적인 독방 구금 기간 산정, 박스 테이프나 케이블 타이와 같이 법에 정해져 있지 않은 장비의 사용에 대해 모두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록 사건 공개 직후 법무부가 무라드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며 명예를 훼손한 점에 대해서는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쉽기도 했지만, 법원은 외국인보호소에 있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신체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2021년 새우 꺾기 CCTV 영상을 공개하면서 문제를 공론화한 지 3년이 지나서야 받아낸 승리였습니다.

2025년 4월 30일, 항소심 법원 역시 무라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재판부는 새우 꺾기 사건이 보도된 직후 자의적으로 편집된 무라드의 영상 등을 동의 없이 배포한 것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임을 인정했습니다.

 

무라드가 쏘아올린 공, 그래도 세상은 나아졌다

민사법원, 형사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청와대를 넘나들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바뀐 것이 있었습니다. 우선 관련 규정들이 바뀌었습니다. 원래의 규정에 따르면 한번에 5일, 그리고 한번 연장하여 총 10일 연속으로 독방에 사람을 가둬둘 수 있었습니다. 무라드의 사건이 공개된 후 독방 구금은 72간 내 반드시 종료하도록 관련 규정이 바뀌었습니다.

또 새우 꺾기 고문 사건이 보도된 뒤 ‘보호소’의 운영이 사실상 ‘구금시설’과 같다는 비판이 지속되자, 법무부는 외국인보호소를 점진적으로 인권 친화적 보호시설로 바꿔나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복도와 생활공간이 쇠창살로 구분되어 교도소나 다름없던 기존의 시설에서 쇠창살을 없애고, 주 2회 단 30분씩만 사용할 수 있던 운동장을 상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인터넷 사용도 특정 공간 안에서는 상시화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비록 고문 사건이 발생한 화성외국인보호소,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지내는 보호소에서만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보호소’라는 본래의 목적에 비추어볼 때 부족함이 많았지만 과거에 비해 아주 조금은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외국인의 출입국과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정하고 있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었습니다. 이 법 조항에 따르면 무라드와 같이 대한민국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외국인은 무기한으로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였습니다. 또 외국인에 대한 보호를 시작하고 지속하고 연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제3의 독립기관이나 사법기관이 관여하지 않아 인권침해가 발생해도 개선하기 어려웠습니다.

2022년 10월 13일,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가치에 위반되는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공개적으로 심리를 했습니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하는 기한 없는 구금, 별도의 관리·감독기구 없는 외국인보호소의 독자적인 운영 전반에 대한 질문 속에서, 한 재판관이 새우 꺾기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했고 법무부 측은 ‘잘못된 행동이었다’라고 시인했습니다.

재판관 / 소위 ‘새우 꺾기’라는 방식으로 과잉 진압했다는 설명이 있었어요. 이 방식이 보호소 내에서 합법적인 규정에 의한 조치였습니까?

법무부 / 그것은 규정에 없는 조치였습니다. (…) 발목에 찰 수갑이 없다보니까 포승을 사용했다가 그렇게 묶었던 것은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번에 그에 대한 반성을 계기로 외국인보호규칙을 변경하면서 일부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밧줄형 포승은 아예 사용조차 못하도록 폐지하였고요.

공개 변론일로부터 약 5개월 후, 헌법재판소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이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과잉금지 원칙과 적법절차 원칙을 위반하여 외국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우리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사건 하나하나를 넘어 제도 자체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결정에 처음으로 모두가 웃으면서 기자회견을 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습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연대

외국인보호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의 영어 이름은 ‘Ministry of Justice’입니다. 무려 ‘정의正義부’라는 뜻을 담고 있지요. 무라드는 사건 초기부터 우리나라 법무부에 ‘Ministry of Injustice, 부정의不正義부’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방법도 없고 대변해줄 조력자를 구하기도 힘든,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한 외국인에게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부처’에서 국가 차원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폭력을 저질렀으니까요.

무라드의 용감한 문제 제기로 세상에 드러난 이 사건은 공감에 입사한 뒤 맡았던 어떤 사건과도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고, 복잡했고, 또 길었습니다.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비롯해 그를 둘러싼 각종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고 법무부가 약속했던 외국인보호소의 운영 개선도 요원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이 힘든 싸움을 헤쳐올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었습니다. 3년간 외국인보호소 안에 갇혀 있던 피해당사자가 밖으로 나와 활동가로서 동료가 되는 모습, 기자회견·증언대회·연대의 밤 등 기발한 방식으로 운동을 지치지 않고 이어와준 동료 시민과 활동가 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건 초기부터 연대하여 가장 가까이서 함께했고 지금까지도 무라드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시울을 적시는 동료들 덕분에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싸움을 계속해나갈 힘을 얻습니다.

무라드가 외국인보호소에 갇혀 있던 시기, 그는 미리 써둔 편지나 진술서를 활동가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외부와 소통했습니다. 그의 글 마지막에 항상 등장한 짧은 구호가 있습니다. 그가 외국인보호소 밖으로 나와 우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발언을 할 때 우리는 모두 함께 그 구호를 외쳤습니다. 무라드가 자신의 피해에 상응하는 배상과 진실된 사과를 받는 날, 그가 쏘아올린 공 덕분에 보호소에 기약 없이 갇힌 사람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 날, 법무부가 ‘부정의부’의 오명을 벗고 가장 취약한 처지의 외국인에게도 그 이름에 걸맞은 정의로운 법 집행을 하는 날을 기다리며 그 구호를 크게 외쳐봅니다.

“FREEDOM & JUSTICE(자유와 정의)!

 

* 정식 출간 후 OO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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