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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20주년# 국제민주연대# 바랐던_바라던_바라는

[공감20주년 X 국제민주연대] 연대단체 인터뷰 –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X 공감 강지윤

강지윤 – 이하 강) 안녕하세요. 공감 국제인권센터에서 일하는 강지윤입니다. 올해 공감 20주년을 맞아서 저희와 그동안 오랜 기간 동안 인연을 맺고 함께 활동을 했던 연대 단체 활동가분들 몇 분을 저희가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국제민주연대 나현필 사무국장님을 어렵게 모셨습니다. 국장님 반갑습니다.

나현필 – 이하 나) 반갑습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에서 올해로 18년 차 활동을 하고 있는 나현필이라고 합니다. 국제민주연대는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춰서 활동해온 단체입니다. 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는 활동, 그리고 외국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슈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연대하는 활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시하는 활동 크게 보면 이렇게 있을 것 같습니다.

강) 저희 공감 국제인권센터에서 하는 일들이랑도 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같이 일하면서 저도 배우고 있는데요. 어떻게 공감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나) 지금 저 상근 활동하기 전에 인턴 활동도 했었어요. 인턴 활동을 할 때 아름다운 재단에서 변호사님들을 단체마다 파견하는 사업이 있었어요. 그런데 황필규 변호사님이 너무 감사하게도 국제민주연대로 오신 거죠. 그때 처음 황 변호사님을 뵀었고요. 그래서 황 변호사님이 그때부터 국제민주연대 활동도 같이 많이 해주셨어요. 변호사님 하면 그때만 하더라도 진짜 먼 존재였거든요. 그런 변호사님들이 같이 적극적으로 활동 많이 해주시고 도움 많이 주시는 모습 보면서 그때도 마찬가지지만 지금까지 정말 많은 도움을 받고 또 감동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 황필규 변호사님이랑 그럼 굉장히 오랫동안 인연을 맺고 활동을 하셨는데 황 변호사님의 첫 인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나) 되게 친근하셨고요. 저를 대할 때도 변호사와 어떤 활동가의 관계가 아니라 그냥 같은 활동가 활동가로서 다가오셨던 것 같아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고 그리고 저한테도 되게 쓴 소리 많이 해주셨어요. 활동가로서의 자세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런데 그게 애정이 없으면 가능한 게 아니잖아요.

강) 그러면 황 변호사님이랑 공감이랑 또 이렇게 인연을 맺고 수많은 세월 동안 정말 다양한 활동을 같이 해오셨는데 또 생각이 나는 그런 활동들이 어떤 게 있는지요?

나) 황 변호사님이랑 주로는 해외 진출 한국 기업 대응하는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현지 조사한 기억들이 사실 많아요. 제가 국제미전대에서 처음으로 출장을 갔던 게 포스코와 가스 개발하는 사업에 피해를 입은 난민들이 인도로 넘어와서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어요. 특별구역이어서 관광객이 거기를 가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허가를 받지 않고 간 거예요. 그래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출입국 사무실로 끌려가서 특정 지역에만 머무르는 조건으로 매일 보고하는 조건으로 체류를 허가받았죠. 그래서 원래는 저희들이 이제 밀림 속을 들어갔었어야 되는데 저희는 도시에 있고 그분들이 다 저희를 만나러 도시로 오신 거예요. 근데 이제 문제는 저희가 들어갔을 정도만 비용을 잡고 갔었던 건데 그분들이 오시니까 비용이 그야급적으로 늘어나니까 급하게 한국에서 비용을 대서 했지만 출장비가 하나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됐고 일정도 빨리 끝나버렸어요.
그런데 비행기표를 바꾸려니까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 편도 없는 상황이어서 진짜 너무너무 당황했어요. 캘커타라는 도시로 다시 돌아왔는데 돌아가는 비행기편을 잡기 위해서 공항에 가서 계속 남는 표 숨죽이면서 기다리다가 겨우 돼가지고 탈출하다시피 한국으로 왔어요.
인도에 또 포스코 인도 포스코 제철소 부지를 조사해 갔었는데 그때는 당시 어필에 김종철 변호사님이랑 같이 갔어요. 그래서 안심하고 갔는데 저희가 이제 마을에 가서 조사를 하고 나오는데 또 경찰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희를 끌고 경찰서로 끌고 가서 한 거의 5시간 정도를 구금 했어요.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는 게 계속 조사하고 안 보내주고… 그러다가 결국 풀려났는데 진짜 에피소드가 많았던 것 같아요. 에피소드도 많고 또 됐던 일들이 항상 좀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도 좀 많아서 그때마다 황 변호사님이 항상 좀 고생을 하셨어요.
박영아 변호사님이랑 2017년도에 유엔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사회권 심의가 있었는데 그때 같이 제네바를 갔었거든요. 한국 기업이나 기업 경영권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 사회권 위원들한테 브리핑 하는데 박영아 변호사님까지 같이 팀에서 브리핑도 하고 UN 대응 같이 했었던 것도 참 기억에 많이 남아요.

강) 저희가 올해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같이 인권 분야 특히 국제인권이나 기업가 인권 분야에서 같이 활동하시는 분으로서 공감에 대한 바람이나 저희에게 특히 후배 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나) 정말 너무너무 많은 일들을 해왔다고 생각을 해요. 항상 본인들을 내세우기보다는 어찌 보면 피해자들 아니면 그냥 활동가들 뒤에서 서포트하고 조력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은 본인들이 하시는 일들이 참 많죠. 그런 변호사이자 활동가라는 위치이기 때문에 조금 더 더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동료 활동가로서 말씀드리면 너무 부담 안 가지셨으면 좋겠다 어떨 때는 너무 부담감과 책임감을 많이 가지시는 모습들이 좀 느껴져서 안타까움이 조금 있었을 때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의지를 하게 돼요. 법률적 지식도 지식이지만 꾸준하게 계속해서 활동해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거든요.
활동이라는 게 부침도 있고 또 활동가들도 그만두거나 다른 어떤 변화들이 있을 텐데, 상대적으로 공감 변호사님들은 꾸준하게 계속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쌓인 전문성도 전문성이지만 신뢰라는 것들이 참 우리 사회 운동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공감이 구성원들도 더 많아지셨으면 좋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금 활동하는 변호사님들이 좀 오래오래 계속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

강) 마지막으로 20주년을 맞은 공감과 앞으로 하고 싶거나 아니면 저희가 함께 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나) 저는 공감의 미래는 이렇게 젊은 변호사님들이 또 한국사회 운동에 있어서 또 그간의 공감이나 기존의 운동들이 해왔던 것들을 잘 또 계승하면서도 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들의 역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공감이 가장 중요한 거는 계속해서 유지되면서 또 젊은 변호사님들이 이 활동가들과 같이 변호사이자 활동가라는 공감의 정체성을 잘 유지해 주시는 것이 아마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이런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이 공간 변호사님들 보면서 전원 변호사 활동을 통해서 내가 이 사회에 공헌이나 기여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강)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것들을 잘 계승하고 또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서 앞으로 공감이 추후 또 20년 더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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