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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없어야 하는 것과 있어야 하는 것 – 성·인종 차별적 조례 폐지 촉구 TF 활동보고

차별적 조례 존속의 사회적 해악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공감은 국제결혼 중개수수료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소위 ‘국제결혼지원’ 조례)이 성차별적일 뿐 아니라 출신국과 인종에 따른 차별적 인식을 반영한 정책이며, 결혼이주여성 뿐 아니라 선주민 여성에 대한 성차별에도 해당하고 실제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 위기라는 문제의 해법으로서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해왔다. 관련 해서 이주여성을 대상화하는 결혼중개업 현수막 광고 적발, 온라인 상 국제결혼 홍보영상의 인권침해 요소 모니터링,  지난 해 문경시의 베트남유학생 상대 농촌 총각 만남 주선 홍보시책에 대한 인권위 진정까지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결혼이주여성 혹은 이주배경 여성을 향한 사회적 시선, 공공정책이 불평등이나 선입견을 해결하기에 적절한 방향으로 변화했는지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 젓게 된다.

결혼이주여성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정책이 바로 인구증가 시책의 하나인 ‘국제결혼지원 조례’다. 결혼지원이니 정착과정이나 국내에서 가정을 형성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을 지원하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성사과정에 드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는 취지로 마련되었고 실제 국제결혼중개업체를 통한 신부 선택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이들에게 지원되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의 공공정책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결과를 통해 이와 같은 정책이 성역할, 성별고정관념을 고착화하고 이주여성을 대상화 한다는 비판을 받고 개선 권고를 받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25개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사한 내용의 조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성 인종 차별적 조례의 실태를 파악하고, 운용 주체인 지방자치 단체에 최근 지원 사례와 조례 개정 또는 폐지 계획 등을 물었지만 응답한 곳은 3곳 뿐이었다.      

관련 기사 : 일다 / 국제결혼 지원조례는제도화된 차별이제는 폐기해야

차별적 취지는 그대로인 개정의 문제  

어느 지자체에서는 성인지적 관점에 맞게 “성차별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문제”를 이유로 폐지를 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지자체에서는 “농촌 총각이라는 용어가 중립적이지 않아 농업인으로 개정”한다는 개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또 다문화 가정 정책이 있어 “중복수혜의 우려가 있어 폐지”한다는 조례 폐지안도 있었다. 

농업종사자로 형식적 수혜자를 양성인것처럼 만든다고 해도, 지원 대상은 외국인 여성과 혼인한 한국인 남성에 한하고 나이 제한(40세 이상)이 있는 경우도 여전했다.  지원금 신청서식에는 한국인 배우자(남)의 직업 및 소득과 외국인 신부(여)의 국적을 기재하도록 표시하고 인우보증서 형식의 제3자의 보증을 받도록 하기도 했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지원 조례나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 등으로 인해 이주민들이 받는 혜택 ‘이중 수혜’가 불공정하다는 잘못된 인식은 이주민, 이주여성이 한국사회가 부분적으로 조건부로 어떤 역할을 해낼 때라야 주어지는 그것, 언제는 그 역할을 거부하거나 벗어났을 때 빼앗을 수도 있는 그것을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차별적 조례가 취지는 그대로인 채 형식적 개정으로 평등을 이뤘다고 낙관해선 안되는 이유다.  

 

차별적 조례의 확산과 정당화 

국제결혼지원 조례와 같은 차별적 조례는 요모조모 차별적이다. 결혼을 통한 정상가족 구성이 모든 세대를 아울러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지역에 거주하며 혼기를 놓친 나이많은 농어업 종사 남성들을 위한 외국인신부 맞선 비용을 국가재정으로 지불한다는 정책은 결혼을 통해 구성된 가족만 유일한 생애주기로 여기는 사고, 출산과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의 가치절하나 가족 내 성역할 고정관념과 여성에 대한 비난, 지방의 경제 문화적 낙후와 인구 감소 문제(수도권 중심의 도시 개발 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 여러 사회 문제를 다른 사람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여러 사회 문제의 본질적 원인을 해결하려면 차별적 조례가 차별적인 이유에 대해 짚고, 전면적 폐지로 공동체가 차별에 대해 용이하지 않을 것을 공표하는 것이다. 조례의 제개정 단계에서 성인지적 관점에 따라 또 인종 및 출신국가 차별 요소가 없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 요구된다.  

사실 국제결혼지원 조례가 이주여성에 대한 ‘혜택’이라는 착시 혹은 다문화 가정의 수가 많아져 ‘사회적 문제’라는 착오는 차별적 이주정책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국제결혼지원조례의 심각한 문제는 이주여성을 문제해결의 수단이나 대상으로 여긴다는 데에 있다. 결혼이주여성의 혼인 성사 전후 여전히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한국인 배우자와의 불평등한 관계, 매매혼적 성격의 결혼중개업에 대한 통제 미비로 인해 처하는 취약한 지위는 이런 차별적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이혼에서 더 중한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한국체류가 어려워지게 되는 현실,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장기적 안정적 체류가 필수인데도 단기 체류 허가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은 배우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혼인관계를 해소하지도 못하고, 적절한 시기에 피해신고를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최근 처럼 피해자지원 예산을 함부로 줄이는 정책이 문제의식없이 통과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대전시는 결혼정착금을 지원하는 정책 예고를 통해 지원 대상을 40세 이하, 초혼 남녀, 내국인에 한정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결혼을 통한 출산과 양육(사회적 재생산)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 모두를 지원하지는 않는다. 역시 요모조모 차별적이다. 

결국 차별적 공공정책은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 특히 사회통념에 따른 정상 범주 내에서 구상되어 문제다. 이주여성 정책은 노동자, 유학생 관련된 내용에 비해 다문화가정 정책에 편중되어 있다. 이주노동자 부부, 유학생 부부, 난민 가족은 다문화가정 지원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차별 정책은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되고 다시 선입견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차별적 조례의 존재는 다른 차별적 정책들의 합리적 근거이자 정당화 논리로  작동한다. 차별적 법령, 정책으로 확산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인권 조례와 충돌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기어이 통과되었다. 인권 조례 폐지의 사회적 해악은  ‘나의 권리’를 알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왜 차별인가 만큼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평등해지는 가라는 문제다. 평등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동일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록 그 권리의 실현 구현 구제에는 장벽이 있더라도 말이다. 인권조례는 그것으로도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동체가 적어도 이것은 이들의 권리, 이들로부터 이것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의 의무라는 것에 대한 공적 표명이다. 차별적 조례의 존재는 이런 공적 표명과 모순된다. 

사실 상위법인 헌법 상 보장되어야 하는 평등권에 반한다는 점에서 법령 체계상 무효라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지역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정치체를 통해 구체적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조례라는 자치법규의 성격을 볼 때 인권조례의 폐지와 차별적 조례의 존치가 끼칠 부정적 영향은 간과하기 어렵다. 갈 수록 극심해지는 혐오세력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 오히려 유의미한 공적 표명을 철회해 버렸다는 사실을 목격한  누군가는 상처 받고, 포기하고, 숨죽였을 수 있다. 국제결혼제도, 지원 공공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 형이다. 조례로 인권이나 평등이 ‘완성’되었다 믿은 적은 없으니 차별도 완성된 적 없다, 그러니 현상황에 낙담만 할 일은 아니라는 응원아닌 응원으로 서로를 토닥이며 없어야 하는 것과 있어야 하는 것을 밝히고 지키기 위한 장기전을 채비 한다. 

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