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된 그녀의 죽음에 대하여 – 여성 홈리스 故 OOO님을 위한 피해자 변호사 지원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서울역에서 만난 故 OOO님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2019년 5월부터 매주 금요일 홈리스행동 활동가들과 인권지킴이 활동을 했었다. 서울역 지역을 팀으로 나누어서 돌았는데, 내가 맡은 구역은 우체국 지하도 부근이었다. 故 OOO님은 주로 그곳에 머무셨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故 OOO님을 더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홈리스 여성이기도 했고, 낯선 나를 경계하는 다른 분들과 달리, 반갑게 응대해주시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매주 금요일에 아주 짧게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故 OOO님은 그 주에 있었던 다른 홈리스 여성의 문제를 알려주며 우리가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하고는 했었다.
故 OOO님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가 故 OOO님이 거리에서 돌아가셨는데, 유가족인 형제자매도 직계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며, 관련 기사 링크를 보내주었다.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 홈리스의 죽음 – 한겨레 2023.5.13.
단순 사망사건이 아니고, 범죄에 의한 사망사건이었다. 죄명을 확인하니 성폭력 사건이었다. 유가족인 형제자매의 위임을 받아서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로 백소윤 변호사와 함께 지원하였다. 우리가 참여했을 때는 이미 1차, 2차 공판기일이 지나고, 변론종결하기로 한 3차 공판기일이었다. 유가족도 3차 공판기일에서야 첫 방청을 할 수 있었고, 단체 활동가 및 홈리스 동료들도 피고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해자 변호인은, 가해자가 죄를 인정하고, 형사공탁금을 공탁하였고, 우발적 범행인 점을 참작해달라며 최후 변론을 하였다. 그리고 가해자는 최후 진술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짧은 한 마디를 하였다.
우리는 故 OOO님을 위한 피해자 변호사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故 OOO님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녀가 ‘연고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죽음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사건 범죄는 사회적으로 고립 단절된 여성 홈리스를 표적으로 한 성범죄였고, 가해자는 사건 당일 무려 4시간에 걸쳐 항거불능 상태에 있던 피해자를 수 백회에 걸쳐 폭행을 가하고 길거리에 방치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故 OOO님은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열흘 뒤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성범죄 양형기준은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여 사망의 결과를 발생한 경우, 양형 가중요소로 보고 징역 13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형사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엄벌을 촉구하였다. 유가족의 탄원서, 홈리스행동의 단체 의견서, 홈리스 동료들의 탄원서도 제출했다.
2023년 8월, 재판부는 가해자에게 징역 17년을 선고하며, 8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10년 신상정보공개 등을 명령했다. 검사의 징역 25년 구형에 비해 선고형이 낮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 범죄가 범행에 취약한 상대로 하여 죄질이 매우 불량하며, 피해자가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겪었을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헤아릴 수 없고, 유족들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서도,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천만 원을 형사공탁한 점 등을 양형요소로 고려하였다고 밝혔다. 유가족인 형제자매가 형사공탁금 수령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법정상속인인 딸이 있어 형제자매의 공탁금수령권한이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하였다. 故 OOO님은 가족과 연락이 끊긴지 20여년이 넘은 상황이었다. 형제자매인 유가족들도, 이 사건에 관하여 더 이상 연락을 원치 않는 피해자의 딸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로 의아한 점이 많았다. 사건 당일 故 OOO님은 누군가의 112신고로 법원에 후송되었고 열흘 이후에 사망하였지만, 경찰은 그녀가 사망하고 난 이후에야, 형사사건으로 입건해서 수사를 개시하였고, 가족들에 대한 연락도 사망한 후에 이루어졌다.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유가족은 시신인수를 포기하여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故 OOO님을 대변하기 위해서 피해자 변호사를 맡았지만, 피해자 변호사인 나도, 20년 만에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야 연락을 받은 형제자매도, 단체 활동가들도, 그녀를 대변하기에는 그녀에 대하여 아는 내용이 너무 적었다.
1심 선고 이후, 故 OOO님의 추모제가 지난 9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위무하는 위령무와 연대공연, 여성 홈리스 동료의 추모사, 단체 활동가들의 다짐이 있었다.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여성 홈리스들은 무방비로 범죄에 노출이 되어 있었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거리 노숙인에게 몇 개월간 임시로 지급되는 임시주거비 지원이나 주거급여 만으로는 고시원, 쪽방 등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곳도 여성들에게 안전한 공간은 아니다. 여성 홈리스가 머무를 수 있는 쉼터는 서울에 단 한 곳 있을 뿐이고, 생활통제가 심하다. 많은 여성 홈리스들이 겪고 있는 알코올 남용, 정신 장애, 지적 장애 등을 고려한 지원서비스는 거의 전무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여성 홈리스들의 현실은,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다. 추모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서울역의 밤공기가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