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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인권# 취약 노동

세종호텔 정리해고의 진짜 이유

명동에는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종호텔이 있습니다. 세종호텔의 한식당 ‘은하수’는 한국 최초의 한식 뷔페 레스토랑으로서 한때는 조리사만 20명이 넘을 정도로 잘 나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 세종호텔은 식당 영업을 종료하고, 해당 직원들을 정리해고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가 그 이유입니다만 사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2020년, 2021년 매출이 급감하고 영업 손실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2019년까지는 계속 영업 흑자였기 떄문입니다. 지난 2년 영업 손실 상황에서도 현금 흐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올해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고 호텔업계에도 다시 훈풍이 불 것이 예상되는 만큼 영업 비용을 늘려 매출 확대에 대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정리해고라니, 먹을 곳이 없는 호텔은 앙꼬 없는 찐빵인데 식음료 사업부 폐지 및 해당 인력의 정리해고라니. 사실 세종호텔의 인건비는 다른 호텔보다 극히 낮아서 인건비는 구조조정의 대상도 아닌데 말이지요.

그러면 세종호텔은 왜 이런 비상식적인 결정을 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세종호텔 배후 세력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의 학교법인인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입니다. 즉 대양학원이 세종호텔의 1인 주주입니다. 그리고 대양학원은 오랫동안 재단 비리와 내홍을 겪은 곳입니다. 그 핵심에 주명건 전 대양학원의 이사장이자 세종호텔의 회장이 있습니다. 주명건은 대양학원의 설립자인 고 주영하의 장남입니다. 주명건은 과거 대양학원의 이사장직을 맡아 비리를 저질러서 2004년 교육부로부터 이사장직을 박탈 당한 사람입니다. 주명건이 아무런 지급 근거 없이 4년 간 대양학원으로부터 4억여 원, 세종호텔로부터 12억여 원을 보수로 받은 사실이 종합감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주명건은 학교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좌지우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9년 취임했던 박우희 전 총장은 “모든 교직원이 외부 명령(주명건)에 의해 움직였다”며 대학의 행정이 자신의 결제 없이 시행됐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주명건은 학교뿐만 아니라 세종호텔에서도 회장으로 군림했습니다. 주명건이 세종호텔의 회장이 된 2009년부터 세종호텔에 어용노조가 생기고 임금체계가 바뀌었으며 징계와 해고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세종호텔의 민주노조는 주명건에게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사측노조의 출현으로 조합원수 계속 감소하였고 끝까지 조합원으로 남은 사람들이 이번 정리해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측이 단지 노조가 미워서 정리해고를 단행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리해고가 마무리되면 식당 운영을 재개하되 대신 그 자리에 주명건이 지배하는 용역업체 소속 직원들로 채울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에이치알이라는 인력공급업체가 있는데, 주명건 부부가 약 80% 지분을 가진 세종에스엠에스가 이 회사의 대주주입니다. 그러니까 세종호텔 정리해고는 주명건이 사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너무 복잡하죠? 솔직히 교육을 목표로 하는 학교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지분구조로 얽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비단 대양학원뿐만 아닙니다. 언젠가부터 학교가 수익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이제는 사학재벌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회사, 손자회사를 두고 영리사업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스타시티’라는 복합쇼핑몰과 ‘더클래식500’이라는 호텔 및 실버타운이 있는데 이곳의 주인도 건국대학교법인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음을 택한 골프장 캐디의 유족을 대리하여 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상대가 바로 건국대학교이기도 합니다. 건국대학교가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명지학원이 사실상 파산 결정을 받기도 했지요. 명지학원의 설립자 유상근의 장남인 명지대 유영구 전 이사장이 명지건설 부도 당시 학교 돈 1700억원을 명지건설에 부당지원했고, 용인에 실버타운과 골프장을 지으면서 발생한 손해배상금을 갚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해 명지대학을 비롯한 명지재단 소속 학교들의 폐교가 거론되는 상황입니다. 덕성학원도 포항 영일만 일대에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고, 연세대학교도 안산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 실버타운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교는 왜 이렇게 많은 수익사업을 벌이는 걸까요? 학령인구의 감소로 등록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의 재정적 어려움을 타개하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목적이 그러하다면 딱 그에 맞는 수준에서 수익사업을 벌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기업인지 학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사업의 규모가 큽니다. 그리고 대부분 설립자 일가가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설립자 일가는 학교법인을 설립하면서 기부한 재산을 근거로 학교법인의 실세 역할을 하고 더 나아가 설립자 일가의 재산 증식을 위해 학교 운영과 수익사업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러봅니다. ‘사학자본’, 그런데 사학자본의 행태는 재벌과 흡사합니다.

첫째, 재벌과 사학자본 모두 소수의 특정 개인과 그 가족에게 너무 많은 부와 생산수단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둘째, 재벌과 사학자본은 개인과 그 가족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어발식 확장과 기업결합을 통한 집중 방식을 동시에 활용합니다. 셋째, 강한 기업결합으로 인한 줄도산의 가능성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재벌은 전문경영인을 두는 방식으로 위험을 줄이지만, 사학자본은 설립자 일가가 여전히 경영상 판단을 하고 이들의 결정에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됩니다. 넷째, 지배 카르텔의 형성입니다. 재벌은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정치권력의 비호와 특혜 속에서 불법을 동원해서까지 이윤을 추구합니다. 그리고는 돈과 권력을 동시에 장악한 사회계층으로서 사회 모든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사학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의 설립자라는 명예와 권력을 활용하여 엘리트 계층, 정치권까지 깊은 연을 맺습니다. 다섯째, 재벌과 사학자본 모두 비리의 온상입니다. 집중된 권력, 복잡한 기업 결합, 지배 카르텔의 형성이 서로 얽히고 설켜 특정 개인과 그 가족은 사적 이익을 도모하며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교묘히 빠져 나갑니다. 여섯째, 재벌과 사학자본 밑에서 고통 받는 것은 결국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윤의 극대화, 건전하지 못한 경영, 사적 이익 도모와 온갖 비리 속에서 책임을 져야 할 개인과 그 가족은 빠져나가고 결국 가장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 ‘세종호텔 정리 해고 사태! 과연 정당한가’ 토론회 자료집]

이런 이유로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회사뿐만 아니라 주명건을 상대로도 싸우고 있습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공감도 참여하면서 저 역시 주명건을 상대로 한 기자회견과 사학자본의 실체를 드러내는 토론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싸워야 할 상대가 많아서 배로 더 힘든 싸움입니다. 그래도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은 꿋꿋이,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래서 노동자들이 다시 호텔에서 일하기를 바랍니다.

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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