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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노동인권# 취약 노동

기쁘지만 씁쓸한 결말 – 핸드폰 위탁 판매 노동자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마무리하며

공감의 활동소식들을 오래 읽으셨던 분이라면 핸드폰 위탁 판매 노동자의 사건에 대해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2020년 9월 윤지영 변호사가 “사회 초년생, 핸드폰 판매 노동자를 위한 법적 조력”이라는 제목의 활동소식을 쓴 적이 있습니다.

공감이 지원한 이 사건의 당사자 A씨가 핸드폰 판매 일을 시작한 것은 2017년 2월입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던 A씨는 친구의 소개를 받아 KT로부터 위탁을 받아 핸드폰 및 통신서비스 판매 업무를 하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기본급 120만 원에 판매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준다는 말을 믿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핸드폰 개통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기본급은커녕 급여가 0원이었고 심지어 벌금까지 내야 했습니다. 그 결과 A씨는 다섯 달 동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주6일을 일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급여가 없는 기간 동안 생계를 위하여 회사로부터 생활비를 가불을 하였습니다. 회사는 가불금 및 실적 미달성에 따른 벌금, 그리고 고객의 민원으로 인해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일방적으로 정한 금액까지 1,900여만 원을 A씨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A씨가 위 금액에 대하여 차용증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을 것을 강요하였습니다. A씨는 1,900여만 원을 다 갚은 2019년 8월이 되어서야 겨우 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퇴사 이후에도 A씨가 개통한 건에 대하여 민원이 들어오는 대로 A씨에게 민원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회사가 대신 민원을 처리하는 경우 그 처리 비용을 A씨에게 청구하였습니다. 회사가 멋대로 짐 지운 채무를 겨우 다 갚고 회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던 A씨는 퇴사 이후에도 회사에게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에 공감은 퇴사 이후 회사가 청구하였던 금액에 대하여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당사자 분을 지원했었습니다.

얼마 전 이 사건은 법원으로부터 받은 화해권고결정이 확정되면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소송 상대방이었던 통신업체에서 A씨는 채무가 없으며 앞으로도 A씨에게 그 어떠한 채권청구도 하지 않기로 하는 화해 요청서를 재판부에 전달하였습니다. 재판부는 상대방의 화해 요청서를 그대로 인용하여 화해 권고 결정을 하였고, 양측 당사자인, A씨와 상대방인 통신업체에서 화해 권고 결정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해당 권고 결정은 2022년 1월 7일 확정되었습니다.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은 확정 판결의 효력이 있으므로, 화해권고결정의 내용대로 상대방이었던 통신업체는 더 이상 A씨에게 어떠한 채권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상의 전부 승소 결과, 아니 앞으로도 어떠한 채권채무의 존재도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공감이 법원에 주장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A씨가 회사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셈이니 정말이지 다행스럽고 기쁜 일입니다.

소송을 함께했던 저로서도 기뻐야 할 텐데 어쩐지, 이 사건은 기쁨보다는 아쉬움과 분노가 남았습니다.

먼저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KT가 통신업체에게 떠넘겼던 민원 처리 책임을, 통신업체가 다시 판매사에게 떠넘기면서 발생하였습니다. 거대 통신사 – 통신사대리점 – 위탁 판매사 개인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거대 통신사와 비교하여 불리한 위치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이 다시 자신과 비교하여 불리한 위치에 있는 대리점의 판매사에게 민원 처리 책임을 지운 것입니다. 영업을 하다보면 민원은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적 규율체계가 복잡하여 통신사들이 말하는 ‘불완전판매’로 인한 위험도 영업에 수반되는 위험입니다. 그러나 유통과정에서 이득을 얻는 자는 영업에 당연히 수반되는 위험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그 방식으로 자신과 비교하여 불리한 지위에 있는 자에게 그 위험을 지도록 계약을 맺습니다. 거대 통신사들은 얻는 이득에 비해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통신사 대리점은 거대 통신사가 떠넘긴 책임을 다시 판매사에게 전가합니다. 이득을 얻는 자와 책임을 지는 자가 괴리된 하도급 구조의 문제점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번 화해권고결정은 안타깝게도 그 구조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사건은 유사한 사례들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데, A씨가 작성한 계약서에 대한 판단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웠습니다. 확정된 화해권고결정은 쉽게 말하면 법원이 제시한 합의안에 대하여 당사자들이 동의한, 소송 당사자들끼리의 합의내용에 불과합니다. 확정판결의 효력을 가져서 양측 당사자가 합의 내용과 다른 것을 이후에도 주장하지 못한다는 효과는 있지만 그것 자체로는 법원이 어떤 법적인 판단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즉 A씨가 작성한 부당한 계약서에 대해서도 법원은 어떤 법적인 판단을 한 것이 아닙니다. A씨가 작성한 계약서는 미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계약서였습니다. 다른 위탁판매사 분들도 유사한 계약서들을 작성하면서 일하고 계실 것입니다. 기한에 상관없이 그리고 과실여부 상관없이 민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 계약서 조항 자체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았다면 유사한 사례를 마주하면 그 판단이 도움이 될 텐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어딘가 많이 본 듯한 사건이라 화가 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조차 보장받기 어려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그리고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취약함에 대하여 보호받지 못한 사회초년생에 관한 사건이었습니다.

공감에서 지원한 A씨 사건의 경우 통신업체가 꽤나 규모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판매사들도 여럿이었습니다. 덕분에 약관 규제에 관한 법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그리고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판결을 받지 못해서, 이러한 내용들은 저희의 주장으로만 남았습니다.

그 회사가 그만한 규모가 아니었다면? 그 회사가 고용하는 사람의 수가 적어 개인별로 별개의 계약서를 만들었다면? 그래서 도무지 그 계약서를 약관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면? 그 때는 무엇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아찔합니다.

사회 초년생은 취약합니다. 기준이 없고 갈 곳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다른 곳들도 다 그렇게 일한다고, 다 그런 식으로 계약한다고 말하면,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어른에게는 아주 낮은 계단이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높게 느껴지듯 사회초년생은 작은 난관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소득은 적고 신용은 상대적으로 낮아 본인의 생계부담, 본인을 비롯한 가족의 병원비 등 단 한 번의 위기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에 이르기도 하며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한 빚을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을 파고들어 사회 초년생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감은 부당한 통신업계의 관행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가 남겨놓은 거대한 블랙홀을 비추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강은희

# 취약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