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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노동인권# 취약 노동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현장 –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들을 위한 연대 활동 2

공감은 9월 16일 KBS 드라마 6개(국가대표 와이프, 꽃피면 달 생각하고, 신사와 아가씨, 연모, 태종 이방원, 학교 2021)를 각 제작하는 제작사들과 KBS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습니다. 공감,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를 비롯해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단체들이 고발인으로 나섰습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미교부, 법정근로시간(최대 주 52시간) 위반, 각종 법정 수당의 미지급, 휴게시간 및 법정휴가의 미보장 등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근로기준법 위반 행태는 너무나도 다양해서 오히려 현장에서 지켜지는 근로기준법 규정을 찾는 것이 어려울 지경입니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도 고발 대상이 된 KBS 드라마 제작 현장 6곳에 그치지 않습니다. MBC, SBS, TVN(CJ ENM 소속), JTBC 등 대부분의 방송사들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사업자(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 사업자)들의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이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은 대부분의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점에서 명백히 근로기준법 적용 사업장입니다. 2018년 그리고 2019년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제작 현장을 근로감독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확인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에 대해 시정조치도 하였습니다. 또한 드라마 제작 현장은 대부분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 한도가 준수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계속해서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업장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일까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의 사용자가 불분명하거나 계약서상 사용자가 실질적인 현장 지휘 권한이 없다는 점 그리고 드라마 제작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성 사업이므로 스태프들의 고용 불안정성이 높다는 점은 그 이유 중 일부입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근로감독에서,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들이 대부분 근로자라고 확인하면서도 이들의 사용자가 외주제작사 또는 팀장급 스태프라고 판단했습니다. 드라마 제작 구조를 보면, 방송사 밑에 외주제작사가 있고, 그 밑에 감독, 연출, 팀장급 스태프, 팀원급 스태프가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계약 상대방이 외주제작사라면 외주제작사, 계약 상대방이 팀장급 스태프라면 팀장급 스태프가 사용자라고 본 것입니다.

 

<드라마 제작현장 구조> 2019. 7. 17.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그리고 이러한 고용노동부의 결정은 실질적으로 스태프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주체들인 방송사와 대형 제작사들이 근로기준법상의 책임을 회피한 채 계속해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지휘‧감독 권한을 갖는 자가 사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 권한을 갖는 자가 사용자가 되어야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들이 현장에서 지켜질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현장을 통솔할 권한이 없는 자는 스태프들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소규모 외주제작사와 팀장급 스태프가 드라마 제작 현장을 통솔할 권리가 있을까요? 드라마 제작은 방송사와 제작사 또는 수개의 제작사의 노동력의 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드라마에도 수개의 제작사들이 있을 수 있고 수 개의 제작사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회사의 팀장이 소속 팀의 팀원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없듯 팀장급 스태프가 방송사와 제작사의 요구에서 벗어나는 노동조건을 팀원급 스태프에게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팀장급 스태프는 방송사와 제작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다시 팀원급 스태프를 통솔하는 근로자라고 보아야 합니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방송사와 수개의 제작사 중 발언력이 적은 소규모 제작사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스태프의 사용자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현실에서는 스태프와 계약의 대상이 된 소규모 제작사는 근로기준법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오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폐업하고 새롭게 생겨나기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방송사와 수개의 제작사들 중에서 누가 근로기준법상의 책임을 지는 사업주인지, 이들 모두가 공동사업주로 인정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장의 사용 종속 관계의 실질을 따져서 근로기준법상 책임을 지는 사업주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질을 따진다면, 현장의 최종결정권자인 방송사와 대형 제작사들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이번 고발의 대상이 된 KBS의 경우 KBS 소속 총괄 프로듀서를 통해 외주제작 드라마 현장에 대해 최종 결정권한을 행사합니다. KBS의 <방송제작 가이드라인>(2020)은 “KBS를 통해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책임은 KBS에 있다. 따라서 KBS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는 외주 제작사와 KBS의 외부 제작요원들은 KBS의 방송제작에 관한 원칙과 기준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에 따라야 한다. KBS 제작자는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책임을 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은 기간이 정해져 있는 프로젝트성 사업입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는 드라마 제작 기간 동안 고용되는 기간제 근로자입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는 하나의 드라마 제작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자신을 고용할 다음 드라마 제작 프로젝트를 찾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 스태프는 드라마 제작 프로젝트 단위로 채용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스태프가 고용여부를 좌우할 수 있는 방송사 또는 제작사의 눈 밖에 나게 되면 스태프는 다음 일자리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도 시정을 요구하기 힘듭니다.

공감을 포함한 공동행동은 드라마 제작 현장의 여러 근로기준법 위반 양태 중에서 특히 근로기준법 제17조, 사용자의 근로계약서 교부의무, 위반을 고발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에서 실시한 ‘2021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노동실태 긴급점검 조사‘에 따르면 KBS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 73명 중에서는 20.5%만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채로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은 스태프들은 도급계약, 감독급 스태프와의 계약(일명 ’턴키계약‘), 구두계약 등을 체결한 채 일하고 있습니다. 이번 고발이 이름상의 고용계약서 이상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규정들로 이루어진 고용계약서, 그리고 그를 토대로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는 현장 정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공감은 앞으로도 당연한 것이 지켜지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드라마제작현장의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위한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지상파 3사,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리고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의 4자협의체 논의의 재개와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하겠습니다.

 

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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