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비자 문제에 대처하는 일본의 자세 – 일본 인신매매 현지조사를 다녀와서
미 국무부는 매년 전 세계 국가의 인신매매 정책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하는 연례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4년 연례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예술흥행(E-6-2) 비자를 가지고 입국한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성적 착취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받았다.
예술흥행( E-6-2) 비자로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여성 대부분은 필리핀인이다. 가수로 일하는 줄 알고 한국행을 결심했으나, 100% 유흥접객원으로 일한다. 심지어 성매매까지 강요당한다. E-6-2 비자가 외국인 ‘유흥접객원’의 수입 통로로 유용된 지 십수 년째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하고자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인권단체들이 모여 ‘E-6-2 정책대안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기존 연구조사 및 현장의 사례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던 중, 과거 일본이 한국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것을 확인했다. 법조공익모임 나우의 지원으로 9/14~17, 3박 4일간 6명의 현장 활동가들이 일본을 방문했다.
흥행비자로 일본행을 택한 대부분의 필리핀 여성은 ‘필리핀 퍼브’라는 유흥업소에서 접객원으로 일했다. 일본 NGO 휴라이츠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후지모토 노부키는 당시 일본의 풍경에 대해 일본 전국에 필리핀 퍼브가 없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논 한가운데에도 필리핀 퍼브가 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 휴라이츠 오사카의 연구 활동가 후지모토 노부키와 면담
미 국무부는 일본 정부에 흥행비자 사증 외국인 여성들의 인신매매 피해를 문제 삼아 2003년에는 최하 등급인 3등급을, 2004년에는 2등급을 부여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인신매매에 대응하기 위한 대대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04년 12월에는 인신매매 종합 대책인 ‘Action Plan to Combat Trafficking in Persons’을 발표했다. 그 일환으로 흥행비자 발급 심사 요건을 강화했다. 일본에 입국하고자 하는 외국인 연예인의 자격을 강화했고, 초청하고자 하는 기획사와 업소에 대한 규제도 강화되었다. 초청 목적인 공연이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심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2004년 81,281명, 2005년 85,479명이었던 흥행비자 소지 필리핀 여성의 숫자가 2006년 8,806명으로 급감해 2008년 이후 2,000~3,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비자심사 강화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도 현지조사팀의 주된 관심사였다. 일본 현지에서 만난 NGO 모두 한목소리로 위장결혼의 증가를 우려했다. 흥행비자를 발급받기 어려워지자 위장결혼을 통해 체류자격을 얻으려 하는 사례가 증가했고, 불법적인 통로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필리핀 여성들은 더욱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간 국제결혼을 한 건수가 2000년에는 7,519건이었던 것이 2005년에는 10,452명, 2006년 12,150명으로 급증했다고 했다.
△ 인신매매피해자 지원 Light House 방문
새로운 인신매매 피해로 JFC(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 문제가 떠오르고 있었다. 2014년 기후 지역에서는 60여명의 JFC와 필리핀인 친모가 인신매매 피해자로 발견되었다. 브로커들이 필리핀 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일본인 아빠를 찾아주겠다고 유인해서 일본에 입국시킨 후 성착취·노동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일본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전 일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현재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구조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흥행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일본 NGO들은 기간연수제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착취 인신매매, 포르노그래피 영상물에 출연하는 내국인 여성·청소녀들의 성착취 문제, 국제결혼으로 귀화한 여성들의 인신매매 피해에 좀 더 주목하고 있었다. 일정 마지막 날에 방문한 아시안 여성들을 위한 쉼터 ‘Help’의 히로코 우에다 대표는 한국의 E-6-2 비자가 유흥접객원의 유입통로로 유용되고 있다면 일단 비자 심사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비자 심사 강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조언했다.
△ 아시안 여성의 쉼터 ‘Help’ 방문
일본의 경험을 참고로 해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어떠한 정책을 요구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질문은 유흥접객원을 유입하는 탈법적인 통로로 이용되는 예술흥행비자를 현행대로 유지할 것인지이다.
글 _ 소라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