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갑질에 제동을 걸다
3월초 직장갑질119에 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본인을 < 한국일보, 2018. 3. 3.자 “[단독] 평창올림픽 조직위 팀장에게 성희롱 당했다” > 기사에 언급된 C라고 소개했습니다. C는 동료 A와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에 전문운영인력으로 참여했다가 탐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2018. 2. 28.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만나고 싶다는 답장을 보냈고, 3월 중순 공감 사무실에서 두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A,C는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스키 전문가들입니다. 조직위가 낸 전문운영인력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동계올림픽 준비 단계와 동계올림픽 기간에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하는 동안 팀장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예컨대 팀장은 이들 중 한 명한테 ‘너는 올림픽 기간까지 내 거야’, ‘You are mine!’ 이런 카톡을 보내거나 여성 요원들의 신체를 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A,C는 2018. 2. 25.경 정선 경기장 내에 설치된 성고충상담센터를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2. 28.경 나가라고 구두 통보를 받았다는 겁니다. 성희롱이 해고 사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A,C는 패럴림픽이 끝나고 2018. 3. 31.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8. 2. 23.에 나온 패럴림픽 참여 확정 명단에도 A,C의 이름이 있었고, 2. 27.에는 패럴림픽 기간 동안 묵을 숙소까지 배정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A,C는 구두 통보 바로 다음 날 원래 묵던 방에서 짐을 싸서 나와야 했습니다. 법적으로 해고 통보는 서면으로 해야 하고, 통보 한 후 한 달 뒤에 효력이 생기는데 A,C에게는 이런 해고 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조직위원회의 잘못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조직위는 예상 밖의 답변을 했습니다. 즉 조직위는 A,C가 자원봉사자이고, 따라서 조직위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A,C와 같은 전문운영인력과는 달리 자원봉사자 홈페이지에 난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통해 선발된, 실제 자원봉사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는 전문운영인력 역시도 자원봉사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국위 선양과 세계 스포츠에 기여하기 위한 자원봉사 차원이었다, 이런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과 달리 A,C를 비롯한 전문운영인력들은 팀장/부팀장/팀원으로 구분되었고, 각 10만원/7만원/5만원의 일당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일당제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원봉사로 하기에는 전문운영인력의 일이 워낙 고되기 때문입니다. 전문운영인력은 스키장 조성 당시부터 통상 새벽 5~6시 (경우에 따라서 새벽 4시)에 단체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교대 근무 없이 하루 평균 9~10시간 일을 했다고 합니다. 또 대회 기간 중에도 대회 시작 전부터 일을 시작해서 대회 종료 후 정리 작업, 예컨대 삽 같은 도구들로 눈 바닥을 긁고 삽질을 하는 등 고된 정비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영하 20도의 경기장에서 새벽부터 칼바람 맞으며 일하고 오면 녹초가 되었고, 그래서 아예 저녁밥도 거르고 잠을 택할 때도 많았답니다. 참고로 원래 전문운영인력도 무보수였는데 몇 년 전 IOC에서 전문운영인력의 처우를 위해 수당을 지급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조직위가 전문운영인력을 ‘유급 자원봉사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업무협약서와 서약서가 있습니다. 업무협약서와 서약서는 A,C가 본 적도, 서명한 적도 없는 서류들이었습니다. A,C는 답변서를 통해 두 서류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직위는, 다른 전문운영인력들은 서명을 했다며 이들 서류를 증거로 제출했는데 그 내용이 가관입니다. 이를테면 업무협약서에는 “업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책임, 손실 또는 손해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조직위’를 상대로 어떠한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점에 동의한다.”, “전문협력요원은 계약상의 책임과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들을 포기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서약서에는 “조직위가 지시하는 대회 경기운영계획을 충실 수행할 것이다.”, “조직위 허가 없이 대회참여 기간 등을 변경하지 않는다.”, “불성실, 협약 위반, 신분 이탈로 지원업무를 중지하게 될 경우에는 자진 복귀하고, 지급한 비용 전액을 반환한다.”, “기밀을 유출할 경우 어떠한 경우라도 엄중한 처벌을 받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공감은 A,C를 대리하여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진행했고 지난 주 수요일에 심문기일에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부당해고 인정 결정을 받았습니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는, A,C를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조직위가 고용한 근로자이며, 조직위는 A,C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정했습니다. 국위 선양이나 세계 스포츠 정신에의 기여를 빌미로 한 조직위의 갑질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광주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가 있다고 합니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명시한 업무협약서, 서약서가 또 다시 사용될까 걱정이 됩니다.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_윤지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