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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익법 교육·중개

[월례포럼] 4대강 사업의 법적 쟁점 <슬픔은 흘러야 한다>

 




                                                         


 2011년 1월 6일 목요일 오후 4시 삼청동 정독도서관 세미나실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법적 쟁점에 관한 월례포럼’이 있었습니다. 낙동강 사건을 직접 진행하셨던 환경 법률센터의 정남순 변호사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듣는 자리인지라 12월 월례포럼 준비 팀이었던 저 또한 무척 기대되고 설렜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셔서 역시 4대강사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윤진언니의 고운 오프닝멘트를 시작으로, 4대강 사업의 법적 쟁점에 대한 정 변호사님의 강연은 시작되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강연에 앞서 보여주신 4대강사업 시행 전후의 낙동강모습 비교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모든 공사가 그 과정에서의 모습이야 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토록 아름답던 낙동강을 저렇게 파헤칠 명분 정도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목적은 홍수예방과 용수확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으로는 사실상 홍수예방과 용수확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보 건설과 준설로 인한 침수피해와 수질악화가 심히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 측은 수 조원에 이르는 사업을 시행하기에 앞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는커녕 최소한의 법적 절차 또한 준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정남순 변호사님의 지적이었습니다.



물론 국민이 뽑은 국회와 대통령을 통해 실시되는 어떠한 국책사업에 대해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사법부가 나서서 함부로 취소명령을 내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이 목적의 정당성이나 수단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음으로써 명백히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다면 그러한 위법까지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묵인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4대강 사업은 현재 하천법, 국가재정법, 건설기술관리법, 환경영향평가법, 수자원공사법 위반 등의 혐의를 안고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는 위선적인 이름의 불도저아래 온 강산을 헤집어 놓고 있습니다.



정부의 위선적인 태도는 변호사님께서 짚어주신 개별 쟁점들에서도 속속들이 나타났습니다. 낙동강 334km 중 20km 제외한 나머지 전 구간에서 2m 이상의 여유고 있고, 사실상 홍수는 하류인 본류보다는 상류인 지류에서 주로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홍수예방을 위해 낙동강 본류를 개발하겠다고 하고 있는 점이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국가재정법상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보와 준설에 대해 하지 않은 점, 골프장 하나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도 15개월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4대강사업 전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3개월 만에 졸속으로 이루어진 점, 문화재보호법상의 문화재지표조사 또한 담당공무원 1인당 하루에 6만 4천평 정도를 돌아보며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 등 숱한 의문점을 남기고도 낙동강 사업은 지난 12월 10일 법원으로부터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변호사님께서 이 판결문의 사실인정부분은 그대로 두고 판단 부분만을 정반대로 바꾸어 작성한 문서를 보여주신 것이었는데, 전혀 어색함 없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판결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례로 새만금 사건에서는 같은 사실판단을 두고 전혀 상반된 판단을 하급심과 상급심에서 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법적 판단이란, 법령과 판례를 그대로 적용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내려지는 것처럼 보여도 가치판단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일 수는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 변호사님께서도 강연 말미에 유능한 법률가란, 판례 하나 법리 하나 더 아는 것보다는 개별 사안에서 마음을 다해 고민할 줄 아는 사람, 법적인 논리에 갇혀 실망스러운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어떤 것이 옳은 가치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위 선고를 받아들고 변호사님께서는 이처럼 명백한 위법사항들이 도사리고 있는 사안에서조차 승소하기 어렵다면, 앞으로 계속해나갈 많은 환경 관련 사건들을 과연 어떻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면서도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월례포럼 준비팀과 함께 읽었던 정 변호사님께서 쓰신 수백, 수천 페이지의 애정 어린 준비서면들과, 법적 지식이 없어 강연 중간중간 나오던 법적 개념이 생소했을 여러 청중들까지도 두 시간이 넘도록 모두 숨을 죽이고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던 정 변호사님의 열정 어린 강연에서 저는 감히 또 한 번 희망을 보았습니다. 실정법의 틀 안에서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법학도로서 답답한 심정이 든 적도 있었지만, 법으로 할 수 없는 일보다 그래도 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공감에 계신 여러 변호사님들과 실장님들, 인턴 동기들로부터 배우며 매일매일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박노해 씨의 사진전 도록에 실린 「라 광야의 아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슬픔의 힘’을 믿는다./기쁨은 나눠 갖기 어렵지만 슬픔은 함께 나눌 수 있다…나는 인간의 깊은 곳에 흐르는 슬픔의 공유 능력,/저마다의 가슴에 간직한 그 선함을 믿는다./슬픔은 흘러야 한다./ 나의 슬픔이 너에게로/ 국경 너머의 슬픔이 나에게로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 그리하여 함께 하는 그 ‘ 슬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소생시키고/ 다시 희망 쪽으로 걸어가야 한다.” 고.





슬픔은 흘러야 합니다. 때론 어처구니없는 판결에 힘이 빠질 때도 생기고, 때론 국민의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으려는 정부에 화가 날 때도 있을지라도, 잘못된 판결이라면 바뀔 때까지 매일 새로운 법리를 가지고 부딪쳐도 보고, 눈과 귀를 막은 정부라면 볼 때까지 들을 때까지 이야기해주면서 “강물처럼 흘러 함께 하는 그 ‘슬픔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소생시키고 다시 희망 쪽으로 걸어”가면 되는 거겠지요. 지난 1월 6일 정독도서관의 한 세미나실에서 공감의 2011년 첫 월례포럼을 마치고 마흔 명 남짓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찍은 단체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그 걸음이 결코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_ 12기 인턴 구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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