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포럼] 최현숙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성정치
처음 알았다. 성소수자에 해당하는 이들-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을 묶어 ‘LGBT’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만큼 무지한 상태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다루기로 한 10월 월례포럼 준비팀의 첫 기획회의에 참석했다. 다만 필자가 성소수자들에 대해 갖고 있는 분명한 인상이 하나 있었다. 재작년 2월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와 같은 퀴어 영화들이 한꺼번에 개봉하여 화제가 되었을 때 남성 동성애자 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개최한 좌담회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사고와 표현 방식에서 느꼈던 것 – ‘사람들이 참 스위-트하다.’
어렵잖게 의견이 모아졌다. 진보신당 종로구 후보로 18대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했던 최현숙 씨를 모시고 강연을 듣기로 했다. 진보신당을 통해 무작정 전화를 드렸는데도 취지를 듣고 흔쾌히 강연 요청을 수락하셨다. 포럼을 열기에 앞서 사전 조율할 것들을 챙기기 위해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갖기로 했다. 최현숙 씨는 만날 장소로 대학로를 택했다. 혜화역 2번 출구 앞에서 뵙기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그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정치인이라는 것을 의식할 수 없었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에서 컵라면과 해물떡볶이, 피자를 시켜 함께 들 때는 동호회 모임 같은 분위기였다. 소탈한 분이었다.
아름다운재단 본관 2층에 있는 회의실을 빌렸다. 야트막한 가회동 언덕에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최현숙 씨는 강연 시작 20분 전에 도착했다. 자리가 차길 기다려, 시작 시각은 예정보다 15분쯤 늦었다. 그사이 간식이 도착하고, 청중석 한가운데 앉아 있던 최현숙 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꽃이 피었다. 스무 명가량의 청중은 대부분 ‘공감’의 인턴들이었고, ‘공감’ 구성원 중에는 장서연 변호사가 참석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강연을 시작하며 최현숙 씨가 지적했듯 여성 참석자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그녀는 이것이,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들의 인권 감수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강연은 크게 총선 출마 스토리와 성정치 현안, 이렇게 두 부분이었다. 선거운동 과정은 즐거운 것이었다고 했다. 들어 보니, 확성기와 목청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라 종로구만의 특색 있는 번화가 곳곳에서 작은 축제를 여는 식이었다. 다만 총선 출마에 앞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과정, 그리고 과연 우리가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를 배출할 만큼 사회적 여건이 성숙했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은 진지한 것이었다. 제도권 정치 영역 안에 당당히 입장한 그녀에게 감동한, ‘숨어 있던 지지자들’의 응원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또한 성소수자 내부에서의 암묵적 경계를 흐트러뜨린 것 역시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회고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번번이 결정적으로 반대편의 입장에 선 개신교 보수단체들에 대해선 “… 답이 없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득표율 1.56%라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만큼, 다음 단계의 정치 활동을 준비하며 당분간 저변을 넓히는 작업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질문과 답변을 포함해 세 시간 가까이 계속된 포럼은 밤 아홉 시가 되어 막을 내렸다. 포럼에 참석하지 못한 ‘공감’ 구성원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던 안국역 근처의 호프에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처음 최현숙 씨에게 전화를 드렸을 때, 메일 주소를 불러 주며 이렇게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b-e-b-r-e-a-k-i-n-g 이에요. 뭐든지 답답한 것들을 다 깨부수겠다는 의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