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경비시스템과 아파트 경비원의 일자리,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공감이 입주민들을 대리하여 소송을 시작하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입주민들이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입주자대표회장측과 싸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무인경비시스템이었습니다.
2014년 4월, 이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을 감축하며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했던 경비원들에게도 2015년부터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데, 그렇게 되면 경비원들의 임금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부담하는 관리비도 인상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경비원들이 하는 일은 경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경비원들은 쓰레기 분리수거, 청소, 주차 관리, 택배 보관 등등 입주민 편의와 아파트 관리에 관한 일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사람은 입주민입니다. 이 아파트는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을 주민투표에 부쳤습니다. 투표 결과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은 부결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새로 선출된 입주자대표회장은 2015년 3월, 무인경비시스템의 도입을 다시 한 번 주민투표에 부쳤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입주자대표회장은 2015년 8월 동대표회의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의 도입을 결정해버렸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입주민들한테 알려졌습니다. 입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입주자대표회장측은 올해 1월 주민 의견 수렴 절차라는 것을 실시했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반대 의사가 분명한 세대는 기권표로 만들거나, 안건이 무엇인지 설명도 안 한 채 찬성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경비원들의 근로계약이 끝나는 올해 2월을 앞두고 입주민들은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사실 근로계약서상으로는 경비원들은 2월말까지만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대로라면 계속해서 일을 했을 것입니다. 위탁관리업체가 바뀔 때마다 경비원들은 새로 들어오는 관리업체와 매번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습니다. 그래서 경비원들의 상당수가 이 아파트에서 10년 가까이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입주자대표회장측은 경비원 44명 모두를 해고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경비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관리업체에 지시한 것이었지만 실질은 해고였습니다.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 붙어 있는 현수막. ⓒ프레시안(여정민)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기 위해 상황을 알리는 현수막도 걸고, 입주자대표회장에 대한 해임안도 발의했습니다. 경비원들이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를 지켰습니다. 입주민들이 나서니 경비원들도 힘을 얻었습니다. 섭섭하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경비원들도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싸움을 포기한 경비원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비원이 3월에도 계속해서 경비실을 지키면서 업무를 이어나갔습니다. 많은 언론사에서 이 사안을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일반인들한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를 비롯하여 시민사회단체, 정당, 활동가 등 많은 이들이 입주민, 경비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2월 15일, 공감도 입주민들을 대리하여 동대표회의에서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소송 중에도 입주자대표회장측은 무인경비시스템 설치를 강행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처분 신청도 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가처분 결정이 무인경비시스템의 도입뿐만 아니라 경비원들의 해고도 막을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간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이 이 사안을 접하고 소송을 하면서 더욱 깊어졌습니다. 관리비 인상을 이유로 많은 아파트들이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무인경비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시장에 기존의 무인경비업체뿐만 아니라 통신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법도 무인경비업체들에게 유리하게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인경비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서 관리비가 인하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가 된 아파트의 경우에도 그러하고 그간의 연구결과자료도 경비원들이 일을 하는 것이 오히려 관리비가 적게 나간다고 합니다. 조금만 따져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습니다. 무인경비업체들은 무인경비시스템 유지비를 가져가면서 관리업무는 또 다시 관리업체에 재하청을 줍니다. 관리체계가 복잡해지면서 도중에 관리비를 챙겨 가는 업체만 하나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관리비는 줄지 않고 입주민은 예전과 같은 편의를 제공받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경비원들의 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고, 경비원들은 하청에 재하청이라는 공급체계 안에서 더 열악한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까지 감안하여 가처분 결정이 나기를 욕심내 봅니다. 상생의 의미를 법원이 이해해 주리라 기대합니다.
글 _ 윤지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