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새로운 인권의 장이 열리다 – 제1회 로아시아 인권 컨퍼런스 참가기
인도는 네 번째다. 유엔에서 기업과 인권 관련된 논의가 한창일 때, 기업, 노조,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 자문회의에 초대받아 뉴델리를 방문했다. 미얀마에서 한국기업이 가스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면서 강제 이주된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 국경지역인 미조람주 아이졸시를 갔다. 교육과 의료, 문화적인 생활로부터 차단된 난민 아동들을 인터뷰하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있다. 한국기업이 대형 제철소 건설에 뛰어들면서 토지의 강제수용과 강제이주가 벌어지고 있던 오디샤주를 향했다. 현장에서는 몇 년째 여러 인권 침해가 지속됐지만 인도와 한국 정부가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수년간의 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가스개발은 중국국영기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제철소를 건설하려 했던 한국기업은 철수했다. 그곳에도 한국과 무관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2월 8일(금)부터 10일(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로아시아 인권 컨퍼런스를 대한변협의 지원을 받아 참석했다. 로아시아는 아시아 내 대표적인 변호사단체로 주로 로펌 변호사들이 회원으로 있고 비록 조직상 인권섹션이 있지만 인권활동을 그렇게 활발하게 하는 단체는 아닌데 첫 인권회의를 개최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제는 “국가권력, 기업과 인권: 현재의 과제”, 아시아 내 주류 변호사 사회에서 인권을 조금이라도 주류화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2월 8일(금)에는 저녁에 인도변협 부회장, 로아시아 부회장이자 로아시아 인권섹션 공동의장인 Shyam Divan님이 주관하는 리셉션이 있었다. 이 회의 참석을 적극 권유하고 지원해주신 최정환 로아시아 차기회장님과 로아시아 인권섹션 공동의장인 Yasushi Higashizawa 일본 교수님과 로아시아 인권 재단 및 연구소의 가능성, 아시아 내 변협 인권위들의 네트워킹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지내는 Mark Daly 홍콩 변호사님과 최근 홍콩 인권변호사, 변호사 공익활동의 현황과 지형을 논하고 Akiko Sato 일본변호사님과 한국과 일본의 기업과 인권 관련 이슈 및 논의 현황을 공유했다. 여러 로펌들이 공동사무국을 두고 인권활동을 펼치는 Malaysian Centre for Constitutionalism & Human Rights (MCCHR)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Edmund Bon Tai Soon 말레이시아 변호사님(전 아세안정부간인권위원회(AICHR) 말레이시아 대표(2016년-2018년))과 인권변호사 활동, 변호사들의 인권활동의 형태에 대해 논의하는 유익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무엇보다 미국 콜롬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의 Christopher E. Stone 교수님과의 만남은 뜻 깊었다. 뉴욕변호사회가 만든 국제인권변호사단체인 Vera Institute of Justice 대표(1994-2004), 하버드대 행정대학원 교수(2005-2012), Open Society Foundation 대표(2012-2017)를 역임한 분으로 포퓰리즘과 반동의 시대의 인권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2월 9일(토)에는 본격적인 회의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첫 번째 세션은 “젠더, 섹슈얼리티와 인권”이었는데 대만 변호사님의 동성혼 관련 법제와 소송 이야기, 인도 기자님의 트렌스젠더 인권옹호활동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 세션은 “신기술, 프라이버시와 집단감시: 인권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였는데 함께 온 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님이 한국에서 진행 중을 여러 기획소송을 소개했다. 일본 변호사님의 일본 내 정부 감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는데 특히 모든 무슬림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세 번째 세션은 “인권변호사: 독립과 위협”이었는데 수차례의 체포와 자격정지를 경험한 몰디브 변호사님이 자신의 국가 내 변호사들에 대한 탄압 실상을 알렸다. 공감은 최근 2년간 3명의 판사와 2명의 검사를 포함하여 34명의 법률가가 살해당한 필리핀 상황을 환기시키면서 로아시아가 나서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 세션은 “공격적 경찰권 발동과 인권”이었는데 Christopher E. Stone 교수님이 “새로운 프로페셔널리즘”이라는 제목 하에 경찰의 책임성, 정통성, 창의성, 일관성의 강조와 실현이 결국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이라는 발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쓰지 않으면서 인권이 지향하는 바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2월 10일(일) 첫 번째 세션 “디지털 시대의 언론의 자유”에서는 말레이시아와 인도 변호사님이 정부의 체계적인 언론 탄압의 방법과 이에 대항하는 활동에 대해 소개했고 두 번째 세션인 “스리랑카의 헌법 위기”에서는 최근의 스리랑카 상황에 대해 주로 스리랑카와 인도 변호사들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세션은 “기업과 인권”, “기후변화, 물 분쟁과 인권”에서는 관련 국제기준과 사례 발표가 있었다. 기업과 인권 세션에서는 최근 한국,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자국의 다국적기업의 해외사업에 대해 감시하는 NGO나 법률가들의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고 인도 법률가들과 NGO들도 이러한 흐름에 함께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질의응답 시간 없이 세션이 끝났다.
오전 마지막 세션은 “분쟁과 초국경 이주”로 공감의 발표가 있었다. 방글라데시 변호사님의 남아시아 이주의 역사, 난민과 관련된 국제기준, 최근 로힝야 상황에 대한 발표, 일본 변호사님의 일본 난민 관련 법제와 현황, 문제점에 대한 자세한 발표, 인도 유엔전문가님의 이주와 난민과 관련한 국제적인 논의 소개, Mark Daly 홍콩 변호사님의 홍콩 난민 관련 소송과 법제의 변화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공감의 발표는 한국의 난민 인권 관련 일반적인 상황과 더불어 2018년 제주 예멘난민 상황으로 촉발된 인종주의, 외국인혐오주의를 다뤘다. 제주에 도착한 500명에 불과한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가짜’ 난민이다, ‘무슬림’이 쳐들어온다, 여성과 아동의 ‘안전’의 위협받는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우리의 ‘예산’을 낭비하게 한다 등의 무차별적 공격을 소개했고,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국민이 먼저다”를 외치며 난민법 폐지 청와대 청원에 서명했음을 알렸다. 이에 대한 정부의 답은 “국민 안전이 먼저다”였다는 것, 법무부는 난민을 박기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며 예산을 따냈다는 것, 법무부가 난민 인정을 더욱 어렵게 하기 위한 난민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무엇보다 2011년부터 시작된 난민단체들의 세계 난민의 날 공동행사에 대한 소개에 참석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고, 2011년 세계 난민의 날 플레시몹 댄스에 참여했던 이들이 판사, 변호사, 유엔실무자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 것 같았다.
귀국하자마자 Edmund Bon Tai Soon 변호사님과 Christopher E. Stone 교수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공감의 발표가 인상 깊었음을 언급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제안했다. 특히 Christopher E. Stone 교수님은 본인의 구상 중인 인권단체 심포지엄에 초대를 하면서 아예 기획회의부터 같이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버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추가 업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인권의 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보며 일정을 뒤적인다.
글_황필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