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기부자 인터뷰] 세상이 등을 돌려도 너의 편이 되어 줄 사람 여기 있으니 – 오인옥 기부자님


 


 


– 삶을 뒤흔든 상처


 


3년 전, 수원역에서 지적 장애여성이 영아유기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5일 동안 구치소에서 수감되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ㅈ양은 지적장애 2급이었고 수사기관은 허위자백을 강요했다. ㅈ은 시키는 대로 하면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하라는 대로 했고, 결국 ㅈ은 허위로 작성한 자백 진술서를 토대로 수원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경찰은 ㅈ이 지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동석 없이 자백조서를 받아냈다. 이는 수사절차상 지적장애인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경기복지시민연대에서 ㅈ의 어머니에게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무혐의가 밝혀진 후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은 형사들이 괘씸했고, 하소연 할 곳 없어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재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변호사 비용을 감당할 형편도 아니었다.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TV에서 보면 구치소에서 나올 때 가족들이 기다리잖아요. 그래서 구치소에서 집에 연락을 해주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애가 나왔다는 것도 몰랐죠. 기자들에게 연락이 와서 그 때 알았어요. 구치소에서는 나중에 무혐의라고 통지서만 왔을 뿐이에요.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있었던 부당한 대우에 억울한 마음과 남겨진 상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이렇게 속병만 앓던 중 경기시민연대에서 어머니에게 공감을 소개시켜주었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가 이 사건을 담당했다. 공감과 소송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과 긍정적인 점에 대해 물었을 때 어머니는 말했다.


 


“아쉬웠던 점은 모르겠고, 소라미 변호사가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대해주어 고마웠어요.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고마운 생각밖에 없어요. 변호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큰소리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가끔은 동생이라 생각될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 치유되지 않는 상처, 이별



2년이 넘는 재판 끝에 2010년 9월,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모녀는 이 판결을 계기로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이 있은 후 아이를 지방에 있는 병원으로 보냈어요. 떨어져 있어 마음은 아프지만 밖에 내놓으면 더 큰 일이 생길 것만 같았어요. 이번 사건은 밝혀질 수 있는 일이라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만약 밝혀질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그 때는 방법이 없거든요.”


 


사건이 있은 후, ㅈ은 지방의 한 정신병원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야 했다. 서울에 일자리가 있는 ㅈ의 어머니는 일을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입장이라 ㅈ을 돌보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더 큰 화를 당하기 전에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음으로 이 모녀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이 부끄러웠다. 이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아팠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격양된 내 마음은 어머니의 온화한 웃음으로 인해 진정되었다.


 


– 나눔을 아는 사람


 


ㅈ의 어머니, 오인옥 기부자는 배상금의 일부를 공감에 기부하였다. 오인옥 기부자는 한 신문사의 인터뷰에서 배상금을 받으면 어떻게 쓰겠냐는 질문에 “그 돈을 어떻게 써요, 절대 못 써요. 어떻게 해서 받은 돈인데… 오로지 딸을 위해서 아끼고 아껴 죽을 때 남겨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소중한 돈의 일부를 우리에게 흔쾌히 기부한 사연이 궁금했다. 오인옥 기부자는 나눔을 아는 사람이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라미 변호사의 노력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사례를 하고 싶어 소라미 변호사에게 물으니 공감에 후원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어요. 그래도 변호사님께 직접 사례를 하고 싶다고 하니 공감은 기부금을 통해 운영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에 공감에 기부하는 것은 본인에게 주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배상금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결심했어요.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공감이 도와줄 때 보탬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오인옥 기부자가 꿈꾸는 세상에 대한 질문에 그녀는 말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먹고사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 아이가 병원에서 나오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장애아들은 누군가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지만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단지 1%가 모자랄 뿐인데, 인생의 99%를 부당하게 대우받는 것이 장애인의 그리고 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의 삶이었다.


 


“우리 아이도 그 때 그런 일만 없었으면 자립할 수 있었을 거예요. 병원에 갔다 올 때면 장애인들이 취업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알아봐 달라고 하거든요. 하지만 병원에 다녀온 아이들은 그런 시설에서 일할 수 없어요. 병력은 취업에 걸림돌이 되지요.”


 


– 기부는 기쁨이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기부에 대해 물었다.



“그냥 기부는 기쁨인거 같아요. 돈을 송금하면서 너무 기뻤어요. 이런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으니 기쁜 거겠죠.”


 


기부는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즐겁게 해준다는 오인옥 기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남을 돕는 다는 것은 도와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즐겁게 한다. 돈이 없으니, 조금만 더 돈을 벌고 기부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나, 성공한 뒤에 남을 돕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올 기쁨을 연기하는 일이다. 진정한 기부란 자신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작지만 현재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 아깝지만 아깝지 않은 것. 그것이 기부에서 오는 기쁨이 아닐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배려 없는 사고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이 모녀를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건이 있기 전, 비록 먹고 사는 일에 치이긴 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했고, 함께여서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혹시 모를 부당함에 대비해 아이는 지방의 한 병원에 있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 한 달에 두어 번 만난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름을 구분하고 이들을 배려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하여 이 모녀가 다시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글_ 이현수 (13기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