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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일명 ‘도가니법’, 어떻게 볼 것인가 – 장애인 성폭력 처벌 조항 개정의 의미와 한계



 


 지난 10월 28일, 장애인 성폭력 처벌 조항을 고치는「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의결로 통과되었다. 영화 ‘도가니’가 불러일으킨 공분을 바탕으로 개정된 일명 ‘도가니법’이다. 광주 인화학교의 청각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 ‘도가니’는 흥행에 성공하면서, 동시에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거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분노한 여론에 떠밀리듯 정부 부처 6개는 합동으로 10월 7일 ‘장애인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대책’을 발표하였고, 국회는 27일 잠자던 법률안과 새로 제안된 법률안을 포함하여 9건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개정안을 심의하여 주요 내용을 모은 법률안을 본회의에서 의결하였다.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라는 입법과제가 남아 있지만, 적어도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입법의 문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처벌 특례법 개정으로 어느 정도 해결된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해 온 단체들 중 일부는 환영 논평을 낸 반면, 일부는 개정법으로 장애인 성폭력 처벌이 더 어려워지거나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등 개정법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에 관한 개정법의 주요 내용은 장애인 성폭력 유형의 세분화, 법정형 강화, 위계․위력에 의한 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비친고죄 전환, 13세 미만 여자 아동과 장애여성에 대한 폭행․협박에 의한 강간․준강간죄 공소시효 폐지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개정법의 내용 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친고죄가 아닌 범죄로 개정한 점이다. 개정 전 장애인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을 사용한 성폭력의 경우, 형법 제302조의 심신미약자 간음죄를 적용하였고(형법 제302조) 이는 친고죄여서 피해자의 고소가 없거나 고소가 취소되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개정법 제6조에 제5항과 제6항이 추가되어 비친고죄로 전환됨으로써 위계 또는 위력을 이용한 장애인 성폭력을 처벌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고소를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장애인 성폭력에서 사용되는 강제력은 비장애인 성폭력범죄 성립시 요구되는 폭행이나 협박이 아예 없는 경우, 폭행․협박보다 강도가 낮은 위력인 경우가 많아서 심신미약자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 성폭력을 행한 경우 처벌하는 형법 제302조가 종종 적용되어 왔다. 그럼에도 이 범죄는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거나 1년의 고소기간이 지나서 고소한 경우처럼 고소가 적법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친고죄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하면 가해자는 공소기각판결을 받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합의와 고소 취소를 종용하고 피해자는 그로 인한 2차 피해에 노출되게 되었었다. 개정법이 시행되면 적어도 장애인 성폭력에서 친고죄로 인한 처벌의 공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간 문제되었던 이른바 ‘항거불능’ 조항은 개정법에서 삭제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성폭력’ 처벌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답할 수 있겠다. 가해자가 성폭력을 행하는 데 이용한 항거불능의 원인으로 장애를 명시한 구법 제6조((‘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는 없어졌으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준강간죄를 처벌하는 개정법 제6조 제4항(‘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이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정 전의 구법 제6조에 대한 2007년 대법원의 판단, 즉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에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 뿐만 아니라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하고, 이의 판단을 위해서 피해자의 정신상의 장애의 정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 복합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던 해석론이 개정법 제6조 제4항 해석에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이 개정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모니터하는 것은 평소와 같은 우리의 과제이겠으나, 개정법이 장애인 성폭력의 처벌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형사절차상 장애인 성폭력 처벌을 어렵게 하였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범죄 구성요건의 관점에서 성폭력범죄의 체계를 전반적으로 정비하고, 형사절차상 권리의 관점에서 장애인 피해자가 형사절차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장애의 종류와 정도에 적합한 의사소통을 보조하고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도록 절차 보장 규정을 정비하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입법과제이다.


   


 


글_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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