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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Thanks to 공감 – 이준범 기부자님

2003년 여름, 나흘에 걸쳐 사법시험 2차시험을 쳤다.

시험을 마치고 한편으로 앓던 이가 빠지는 듯한 후련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재미없게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살지 않아도 분명히 행복하게 사는 길이 있을 텐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사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나는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가지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희생하였던가.

그 해 여름 신림동 방에서 고민해 본 결과, 나를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게 만든 것은 공부하는 그 순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아니었다. 좋은 성적을 얻거나 합격을 했을 때의 성취감, 경쟁에서 이기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의 쾌감 같은 것들이었다. 현재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느끼게 될지도 모를 감정들을 위해서 현재의 하루하루를 희생했던 것이었다. 공부 할 당시에 느끼는 감정은 기껏해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따위였다. 시험 준비기간 동안에는 그런 불안감,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야말로 꾸역꾸역 머리속에 판례와 학설들을 집어넣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나 대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나 항상 그와 비슷한 기분으로 공부했다. 남들보다 잘하고 싶으니까, 남보다 뒤처지기 싫으니까.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나올 때 쯤에는 아무래도 성적이 잘 나왔을 때가 못 나왔을 때보다는 기분이 괜찮았으니까.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얻었던 기쁨들은 지속적인 것이었나? 그렇지 못했다. 그런 종류의 성취감이란 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일단 무엇을 성취하였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버리면 그것은 이미 자신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저 나에게는 원래 그 정도의 능력은 있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것을 목표로 세우고 그것을 향해 또 달린다. 또한 그러한 기쁨은 순수한 성질의 것도 아니다. 누군가 나의 성취를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주어야만 빛을 발하는 것이다. 나의 성취를 알고도 그다지 높이 평가해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험과 그로 인한 성취의 단순한 반복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실패를 감내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쳇바퀴 돌 듯 같은 패턴을 반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행복해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시험에 합격한다 하더라도 사법연수원에서 또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승진 경쟁을 할 것이다. 심지어 아이가 생겨도 그 아이를 통해 경쟁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공감을 만났다. 시원했다.

모두들 돈이 중요하니, 명예가 중요하니, 요즘은 이것이 뜨고 있고, 저것은 한물 갔다느니,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러저러해야하니 떠들고 있는 와중에, 공감은 그냥 ‘나는 내 길을 간다’ 라고 말하는 듯 떡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크게 다가온 것은, 공감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경쟁’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누가 알아줘야만 (또는 보수로 그만큼의 평가를 해줘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공감은 그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움직일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돈이나 지위를 위한 ‘경쟁’을 위해 일을 하게 된다면 일은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지만, ‘필요’에 의해 일을 한다면 일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 일이 수단이 되어 버리면 돈이나 지위 같은 것에 의해 그 방향이 흐려지고 왜곡되며 그 일 자체에서는 행복을 발견하기 힘들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치관에 비추어 볼 때 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것. 공부를 할 때에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유용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또는 공부 자체가 재미있으니까 공부를 하는 것.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첫걸음이 아닐까?

공감이 구하는 방향이나 성과들이 나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은 덧붙일 필요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고, 공감은 위와 같이 공부나 일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을 바꾸는데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사정상 기부도 조금밖에 못하고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공감과 좋은 인연을 맺으면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공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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