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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칼럼# 성교육# 성소수자인권

성소수자 혐오적 성교육에 대한 민원을 넣자, 소장을 받았다

A는 초등학생인 자신의 아이와 저녁을 준비하며 그 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하루는 아이가 그 날 한 수업에서  “남자끼리 (성관계)하면 에이즈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는 정보 왜곡도 문제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기도 한 이야기를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됐다. 자세히 물어보니 외부 강사의 성교육 수업에서 남녀의 생물학적 성차로 성역할 구별은 당연하다는 성차별적 내용부터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를 ‘지양’하라는 ‘금욕적’ 메세지도 담겨있었던 것 같았다.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이라 판단해 먼저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업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지만 강사 C의 이름 외에는 특별히 교육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교육청에 사실조사를 요청하면서 수업 내용과 강사섭외 절차 및 기준에 대해 질의했다. 아이로부터 전해들은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수업내용이 사실이라면 재발대책과 재교육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은 것이다. 

지방교육청은 “실제 그런 성교육이 이뤄졌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조사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해당 학교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실제 수업에서 강사는 인증기관에서 자격을 취득한 적합한 강사였고, 당일 수업에서 차별적 혐오적 발언을 한 것 같지 않다”며 말을 바꿨다. A는 지역사회에서 성평등 기반의 성교육 활동가들이 속해 있는 B단체에 상황을 알리며 “적합한 자격을 가진 강사가 맞는지 강사의 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문의했다” 지역 여성운동 기관이기도 한 B단체는 사안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해당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이에 대한 재발방지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차원의 성명을 작성하여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사안에 관심을 가진 지역 언론 두세곳에서 보도를 했지만 학교나 교육청 차원의 응답이나 적절한 조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날 A는 민사소송 소장을 받았다. 성교육 강사였던 C가 A의 허위 사실 제보로 인한 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손해를 입었다 청구를 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문의를 하고 대응하던 중에, 피고소인 신분으로 경찰서 출석 요청도 받게 되었다(민원이 익명 접수 되어 상대방을 찾기  어렵자, 민사소송 절차를 이용해 민원인의 주소지 등을 확인하여 피고소인을 특정하게 된 것이다). A가 공감에 사건 지원을 신청하면서 문제가 된 그날의 성교육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됐다.

 

소위 ‘성경적’ 성교육 자료 사용하는 공교육 현장을 목격하다  

민사소장에 ‘부끄러움 없이’ 증거로 첨부된 강의 자료를 넘겨보며 마우스 굴리는 손가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A가 아이로부터 전해들은 부분을 포함해 남녀 이분법을 근거로 한 성차와 성역할의 고정불변성, 정상가족과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성병유의라는 주제를 담고 있었다.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설명하며 성별화된 직업군을 그 결과로 설명하는 내용(남녀는 뇌발달이 달라 기능도 다르다, 남자 소방관이 많은 이유는 남자가 더 육체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남녀는 염색체로 구별되므로 성별은 바꿀 수 없다 등), 임신 출산의 기능이 강조된 가족관을 소개하면서 태아 사진을 연결해 보여주는 내용(한 학생이 태아사진을 보며 그럼 이 때 (낙태)하는 것은 살인이냐는 질문에 강사가 그것도 뒤에 설명한다고 답했다는 아이의 진술이 있었다), 십대 때는 우정이 우선이고 이성교제는 나중이라는 설명에 이어 청소년 성병 감염의 문제가 심각하고 특히 HIV/AIDS 감염인이 늘고 있는데 감염인의 절대 다수는 남성이고 그 원인으로 남성 간 성행위를 꼽는 언론보도가 인용되어 있었다. 

강사 C가 속한 성교육 연구 기관은 소위 ‘성격적’ 성교육을 대표하는 조직의 협력기관 중 하나로, ‘생애주기별 성경적 성가치관 교육’ 등을 해왔다는 걸 금방 찾아볼 수 있었다. 유사 기관들의 대표격인  조직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기독교성가치관’ 과 같은 제목의 성교육강사 양성교육, 성교육강사 출강 등의 서비스를 제공을 홍보하고 있었다. 자료실에는 동성애자나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왜곡된 정보 혹은 혐오적 의견을 담은 강의안과 카드뉴스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게 두기도 했다. 

교실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많은 요즘이다. 교육이 특정 관점과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점이 없는 교육은 그거대로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특정 관점을 배제하는데에 집중하다가 빈공간으로 둔 교실에 누구를 세웠는지 알길이 없다.  성교육이 성폭력예방 교육의 전부도 아닌데, 폭력예방 교육이나 콘텐츠 제작에는 많은 자원이 투여된다. 새로운 폭력의 양상 혹은 피해발생시 대처방안을 가르치는 교육 콘텐츠에 폭력‘예방’교육자료라 이름붙이는 것도 적절한지 의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묻지도 답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성교육 평가를 위한 표준강의안이나 뚜렷한 기준 없고 보수 단체의 ‘민원 공격’에 성평등 기반 책도 퇴출, 성평등 성교육도 축소 

다투(루)고 싶은 주제는 공교육 현장의 성교육 실태와 그 실패였지만, 법원에서 다툴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다. 답답한 것은 법원에 낼만한 명확한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포괄적 성교육 개념은 이 사건에서 언급될만한 주제는 아니었다(포괄적 성교육은 성교육을  단순히 성별고정관념 탈피나 기계적 평등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평등한 개인의 행동 변화와 관계 형성, 이를 위한 사회체제 개혁 및 정책적 변화를 추구하도록 하는 교육으로 이해하여 성과 관련된 정보와 문화, 성 건강, 성평등, 인권, 다양성 존중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 교육을 의미한다. 이 사안에선 포괄적 성교육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차별적 내용을 지적할만 했고, 포괄적 성교육은 찬반의 논의대상이 아니라 국제기구가 만든 성교육 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기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단어를 적극 서면에 끌어다 쓴 것은 성교육 강사(원고) C측의 대리인이었다. 민원인 A를 악의적 가해자로 만들기 위한 근거로 포괄적 성교육을 지지하는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언급한 것이다. 형사사건의 불송치 이유서에는 민원인 A에게 비방목적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어 특별히 대응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답답함의 원인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이해하거나 내가 겪는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어떤 성교육이 이뤄졌어야 한다”, 혹은 “적어도 이런 성교육은 안된다”를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 예를 들어 성차별과 성별고정관념의 문제는 정확하게 담는다는 표준교육안이나 모니터링 기준(문제를 읽어낼 수 있는 수준의 관점) 조차 찾기 어렵단 사실이었다. 성평등 도서 퇴출 사건으로 볼 수 있듯, 학교나  교육부 등 학습자들이 보다 나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할 어른들이 합리적인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는 누군가의 공격에 몸을 사리며 논란이 될만한 ‘금기어’를 늘리는 데에 집중해 온 결과는 아닌가 묻고 싶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이념 ‘편향’ 또는 ‘경도’로 공격하는 ‘조직적 민원’에 포괄적 성교육은 ‘논란’거리로 치부되기만 한 채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순결주의’나 ‘금욕주의’를 전제로 한 성교육의 문제는 십대들이 경험하고 있는 여러 상황을 다루기에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을 마주하는 일을 하는 내게 ‘여러 상황’이라는 것은 디지털 환경에서의 괴롭힘부터 성폭력 가해/피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폭력이 날마다 양태를 달리하여 발생 중이지만 피해자가 여전히 도움을 요청하며 기댈 곳은 많지 않은 상황, 거름망 한장 없이 학습되는 성적 대상화 문화로 우리는 타인을 소비하는 것에서 주체가 되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주체가 되는 상황,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해자도 피해자도(그들의 양육자들조차도) 어리둥절해 하는 상황이다. 성차별적이고 성소수자 혐오적인 강의에 대한 사실확인을 요청하는 공익적 민원에 소송으로 응대하는 상황이 벌어진 지금, 진짜 책임자는 누구일까? 

 

성폭력 범죄 예방, 법정형 강화 이전에 성평등 기반한 성교육 필요한데  오히려 시장화 문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우르르 쏟아지는 학내 징계 강화나 법정형 상향 정책은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의 원인에 대한 진정한 성찰의 결과는 아니어서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방,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일의 원인, 지켜져야 할 권리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포함한 성교육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지, 왜 반복된다고 생각하는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서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자극적 사건보도 뒤에 이 일이 일어나게 한 공동체가 책임지는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학교폭력위원회 조사 절차나 법적 절차는 부적절하기도 하고 뒤늦은 감도 있고,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이유에는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다(사실 그건 위원회나 법원의 역할도 아니다). 

양육자들은 사비를 들여서라도 성교육을 하고자 해 성교육 과외 ‘시장’이 돈이 된다는 뉴스에 학폭위 대응이나 성폭력범죄 변론으로 법조‘시장’ 성장에 대한 뉴스를 엮어 읽는다. 대안인지, 내용은 적절한지 의문이지만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교육’을 자부담이라니, 접근성에서 차별을 두어 문제이기도 하다. 성병, 피임, 임신 등 정확한 성과 관련한 의료 정보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에 더불어어 자기 뿐 아니라 타인의 권리 존중에 대해 배울 기회가 양육자의 의지와 돈으로 제한되는 조건에서 공동체가 건강할리 없다. 정보 습득을 넘어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성과 관련된 문제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할 성교육이 정체성을 잃은 결과를 우리는 매일 밤 뉴스로 확인한다.

 

무엇으로부터 교실을 지킬 것인가? 누구를 지켜야 하는가?  

다시 사건으로 돌아오자. 형사 사건이 민사 사건에 영향을 미칠 사건이라 형사 고소에 적극 대응해야했다. 사건의 법적 쟁점은 여느 명예훼손이나 영업방해 건과 다르지 않게 허위에 대한 인식여부, 비방목적과 같은 고의와 이를 평가하기 위한 정황에 대한 사실확인이었다. 사건의 결과는 경찰의 혐의 없음 불송치, 상대방이 이의신청하여 재수사가 이뤄졌으나 모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민사소송에서는 A에 대해 양육자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하는 인신공격성 비방을 담은  서면이 제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형사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이 나고 나서야 이내 C측이 소송을 취하했다. 거의 2년가까이 송사에 휘말린 A에게도 긴 시간이었다. 그 수업을 들었던 아이를 포함해 그 학급의 아이들은 십대 중반을 넘는 중학생이 됐다. 오늘 성교육을 들은 십대도 금방 이십대가 된다. 나이가 든다고, 공교육 과정을 거친다고 갑자기 성적 자기결정권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그 결과다.  

그 수업이 진행되게 된 계기에 대한 담임교사의 진술(원고 C측의 증거)을 참고하면, 학급의 아이들이 동성 간 스킨십을 목격했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담임이 급히 ‘(부)적절한’ 강사를 섭외했던 배경을 알 수 있었다. 이 사실관계로 추측컨대 그렇다면 그 날 그 수업에는 성소수자 학생이 앉아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이가 자신을 성소수자로 스스로를 이해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이가 그 수업을 들으며 무섭진 않았을지 자신이 뭔가 잘못했단 생각에 두렵진 않았을지 이내 무언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포기하거나 단념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최근 서울시에서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에 ‘성소수자’관련 용어 삭제 지시가 있어 문제가 되었다. 성차별로 상처 받은 이가 됐건, 성폭력 피해자가 됐건, 성소수자가 됐건, 누구도 제대로 지킬 생각이 없는 어른들의 교실에서. 오늘도 어떤 이가 이해되지 않는 성차별적 성소주자 혐오적 수업을 ‘교육’이랍시고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그이를 지켜줄 민원인, 그이의  상처를 같이 걱정하고 함께 다독일 민원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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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윤

# 여성인권# 성소수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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