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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원, 30만원, 200만원 판결의 기억들 – 하승수 변호사

공감칼럼

지난 소송의 기억들 ; 10만원, 30만원, 200만원 판결의 기억들

하승수 변호사 (법률사무소 이안)

얼마 전 우연히 몇 년이 지난 판결문들을 뒤져보다가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변호사 초년병 시절에 의욕적으로 수행했던 공익, 인권 사건들이었다.

1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사건은 요즘도 간혹 발생하는 지하철 사고 때문에 제기한 소송이었다. 지하철 2호선에서 앞서가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사고가 났는데 뒤에 따라오는 지하철 전동차를 그대로 출발시키는 바람에, 승객들이 지하철역과 역 사이에 멈춘 전동차 안에서 40여분을 갇혀 있어야 했던 사건이었다. 안내방송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아 승객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 때 갇혀 있었던 피해자들 중 19명을 모아서 소송을 진행했었다. 그런데 법원은 지하철공사의 배상책임은 인정했지만, 위자료는 겨우 피해자별로 1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이 정도의 금액으로는 지하철공사의 안전불감증에 경종을 울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지하철공사는 190만원만 부담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었다. 요즘에도 가끔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서, 그 때의 소송에 지금도 아쉬움을 느낀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제재효과를 줄 수 있는 판결만이라도 내려졌다면, 지하철 안전사고는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대법원까지 3심의 재판을 해서 30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어떤 대학생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려고 학교로 들어가려다가, 그 대학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무차별적인 불심검문에 걸린 사건이었다. 이 학생은 평소 알고 있던 법률상식으로 경찰의 학생증 제시요구를 거부했는데, 그 이유만으로 경찰에 연행되어 11시간동안 경찰서에 감금되어 있어야 했다. 이 사건에 대해 1천만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국가를 상대로 냈는데, 금액상 소액사건이었다. 그런데 1심판결은 패소였다. 소액사건이라 패소이유도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어 항소를 했더니 항소심에서는 불법연행, 감금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국가가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금액은 30만원에 불과했다. 그 이후에도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인한 인권침해 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하기야 잘못이 있어도 30만원만 배상하면 되는데, 경찰고위층에서 굳이 경찰들에게 인권교육을 철저히 시켜 인권침해를 예방할 필요성을 느낄까?

변호사로서 수행한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사건 중에서 시국사범 불법 동향파악에 관한 사건도 있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당시에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적이 있을 뿐인 어떤 시민이 그 이후 10년 가까이 경찰의 동향파악 대상이 되어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건이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정말 사실일까”라는 의문도 든 사건이었지만, 국가배상청구와 소송과정에서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위자료 청구소송과 정보공개소송을 병행해서 모두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청에서 관련기록의 일부를 폐기하는 바람에 사건의 실체는 전부 밝히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인정한 국가의 손해배상책임은 200만원이었다. 그러나 그 시민이 당한 고통에 비한다면, 200만원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사건들은 초년병 변호사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 준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진행했던 소송으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었는지, 실제적인 변화는 얼마나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한국의 법원은 아직도 인권문제나 시민안전의 문제에 대해 너무나 관대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권침해에 대해 법원이 국가 등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지만, 그 금액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국가기관이 인권침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이나 집단소송 제도의 도입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때면 가끔 예전에 수행했던 사건들을 떠올린다. 어떻게 보면 참 어처구니없다. 개인의 인권과 안전이 침해당하고 위협받았을 때에 국가기관에게 엄중한 책임을 지우고 실질적으로 행동을 수정하게 하는 정도의 판결은 불가능한 것일까? 결국 법원의 판결이 변하지 않는다면 제도가 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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