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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생각해보는 인권] 70년대에 사는 파리의 한인식당들 – 표광민

프랑스의 한인식당을 말하다


 


지난 10월 20일,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가 체결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하지만 이 소식 앞에 조심스레 걱정부터 생긴다.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많은 한국인 학생들이 일할 곳은 아마 프랑스의 한인식당들일 텐데, 한인식당의 불법노동 실태는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온 일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교민과 한국인 유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인 «프랑스존»의 «여론과 사회»란을 통해 간혹, 그러나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개인들이 억울한 심정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왔었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면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왔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8월 2일 한 여학생이 한국식당에서 일을 그만두며 느낀 억울함을 올리면서 개선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여학생은 여러 인격적인 모독 속에서 일하면서도 제대로 임금을 주지 않았고 일을 그만둘 때에는 욕설과 폭언을 들었다고 했다.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유노모


 


이 글이 게재된 후 몇몇 한국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모임이 준비되었다. 그리고9월 14일, 총회를 열고 «유학생 노동권 찾기 모임»(유노모)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한인식당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누리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시급 8.71유로이며 아르바이트생들은 자신의 세금을 뺀 6.78 유로를 실제 임금으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인식당 업주들은 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정하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 즉, 계약서가 없다는 말이다. 계약서가 없으므로 프랑스 당국에 신고를 하지도 않게 되고 아르바이트생들은 실업수당이나 산재보험, 의료보험, 유급휴가사회보장혜택을 박탈당하는 셈이 된다.


 


노동신고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한인식당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받는 임금도 시간당 4-5유로 정도라고 한다. 한화로 따지면, 7, 8천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한국에서보다는 비싼 시급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유학생들이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장 물가가 비싼 파리이다. 최저임금이 당연히 우리나라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침묵하는 한인단체, 인권은 어디에


 


그럼에도 한인 요식업협회 등에서는 불법고용을 하고 임금착취를 하는 식당은 일부일 뿐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역시 경제가 어려운 형편이고 이럴 때일수록 한인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기적인 사람은 식당 업주들인 데도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다.


 


한인식당들이 성공하는 길은, 프랑스인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프랑스인들 속에 다가가는 방법뿐일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인식당들은 아르바이트생들을 착취해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경영방식은 70년대 한국의 공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임금착취로 악용되고 있는 한국의 비정규직 제도 역시 겹쳐진다.


 


유노모는 한인식당에서의 노동착취를 에 맞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식당 업주들이 이 문제를 오래된 관행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이들 식당 사장들이 프랑스 한인사회의 이른바 ‘유지’들인 현실에서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실질적인 영향력이 별로 없는 프랑스의 한인회에서도 도움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보단 식당 사장들과 더 가까울 대사관에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에는 냉담했다.


 


아마도 이른바 ‘한인사회’에서는 프랑스에 뿌리박고 사는 식당 사장들에 비해 잠시 머물다 떠나는 유학생들은 하찮은 존재일 것이다. 계와 친목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100여개의 파리 한인식당 사장들에 비해 유학생들 10여명 남짓이 모인 유노모가 초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노모는 계속 활동 중이다. 이 모임에서는 학생노동자에게 적용되는 프랑스의 노동법을 소개하는 책자를 발간하려 한다. 그리고 책자 발간 이후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의 권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 유학생 노동권 찾기 모임 : 활동은 http://travail.eurojinbo.net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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