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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칼럼

하느님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하다 –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소장

주말이면 자전거를 탄다. 토요일과 일요일, 정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주말엔 반드시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게 철칙이 됐다. 이번 자전거는 집 앞의 중고 자전거 집에서 25만원 주고 지난여름에 샀다. 나름 메이커지만 지금은 단종 제품이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40만원을 부를 수 있다고 하니 괜찮다. 그리고 자전거 탄다고 먼저 필요한 장비부터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앞 뒤 라이트 붙이고, 조그만 백 하나 달고 달린다.

집이 부천의 끝 역곡인지라 자전거를 끌고 나가면 바로 역곡천이다. 역곡천을 달려 내려가면 목감천이다. 목감천은 광명시에서 서울로 가는 천이다. 목감천을 달려 내려가면 안양천을 만난다. 고척교 바로 앞에서 고바위 길을 만나면 한참 뒷바퀴를 저속 기어로 변속한다. 그래야 내리지 않고 넘을 수 있다. 그리고 만나는 안양천, 안양천에서 다시 페달을 밟으면 한강이다. 한강 합수부까지 다녀오면 대강 4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거리가 된다.

지난여름 속이 시끄러울 때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속이 시끄러울 때는 사람이 단순해지면 도움이 된다. 바람을 맞으며 페달을 밟는 단순한 동작으로 풍경들을 휙휙 지나친다. 그러면 속 안의 시끄러움도 사라지고 오로지 페달을 밟는 일에 집중되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그리고 일주일 다시 쌓인 스트레스가 자전거를 타게 만들었다.

겨울을 지나고 2월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한 자전거 타기는 봄부터는 이제는 거를 수 없는 일정이 되었다. 무언가 몸이 찌뿌둥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자전거를 타려고 한다. 유난히 장마가 길었던 올여름에 속 시끄러움도 길었다. 하는 일마다 암초가 나타났다. 이해 받을 줄 알았던 일들도 곧 비난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속에서 할 말은 부글부글 끓는데 밖으로 내놓고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들이 이어졌다. 장마가 길어져서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자전거를 끌고 나갈 수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장마 때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면서 보는 풍경은 달랐다. 시뻘건 물이 찰랑거리거나 간밤에 내린 비가 범람해서 길 곳곳에 뻘이 덮어버렸다. 신발만이 아니라 등짝이며, 바지에 흙탕물이 뿌려졌다. 그리고 보이는 것들은 온통 지저분한 쓰레기들이었다. 사람들이 쓰다 내버린 플라스틱 통이며, 비닐들이 길 옆 가이드라인이나 나무들에 걸려서 나풀거렸다. 심지어 어느 곳에는 타다 버렸는지 자전거가 흙더미를 뒤집어쓰고 내버려져 있었다. 물건 귀한 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소비주의 행태가 고스란히 비온 뒤 냇물 위에, 길가에 드러나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니 온갖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마저 오염되고, 오염된 바다는 생선을 오염시키고, 해초들을 오염시키고, 그리고는 다시 오염된 그것들을 먹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올해는 기후위기의 징후가 다른 해보다 짙게 인간을 위협한다. 코로나도 그렇다. 동물들의 서식지를 함부로 파괴해온 인간을 숙주 삼아서 인간을 공격하는 인수공통전염병 앞에서, 그리고 54일이나 비를 뿌린 긴긴 장마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하천에 떠내려가는 쓰레기들을 보는 것이다. 거기에 예배의 자유는 생명과도 같다며 코로나가 확산세에 있는 지금에도 대면 예배를 강행하는 기독교를 본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광신일 뿐이다. 거기에 다시 공공의료정책에 반대한다면서 집단휴진에 들어간 의사들은 위중한 환자들이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데도 의료현장으로 돌아갈 줄 모른다.

지난주 말 자전거를 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요즘 하느님은 피곤하실 것 같다고 말이다. 여기저기서 정반대의 욕망으로 하느님을 찾는 인간들이 너무 많고, 하느님 이름으로 죄를 짓는지도 모르고 죄를 쌓아가는 인간들 때문에 많이 속상할 것 같다. 자신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갖다 붙이고, 이제 용서와 화해의 말씀이 아니라 극한 혐오의 불을 질러대는 하느님팔이들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냐고 성을 부리고 싶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아직은 기다리시는 것인가. 그 속이 너무 시끄럽고 어지러울 것 같다.

그래서 하느님에게도 자전거 타기를 권하고 싶다. 속이 시끄럽고 어지러울 때일수록 단순한 일에 몰두하면 그래도 속이 시원해진다. 하느님, 나랑 한 번 자전거 타지 않을래요? 그냥 헛소리 해본다. 옆에서 딸이 한 마디 한다. “언제부터 하느님 믿었다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 여름을 지나면 한 번 인간으로서 반성할 일들 목록이나 만들어보면 좋겠다. 그래야 지구라는 행성에서 조금이라도 더 인간의 시간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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