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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용산참사역’에서 거꾸러진 인권과 정의






 

용산역은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열차가 지나가는 기차역이자, 지하철 1호선이 지나가는 전철역이다. 새로 지은 역사 안에 최신 전자제품을 파는 전자상가가 들어 있고 대형 쇼핑몰들이 이웃해 있는 용산역은 능히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만하다. 그런데 이 위용 넘치는 용산역 건너 한강로 길가에 ‘용산참사역’이 들어섰다는 소식을 혹 들었는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200-1에 있는 남일당 건물과 그 주변. 정식 명칭은 ‘국제빌딩 주변 제4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이나, 지금은 ‘용산 4구역’ 또는 아무런 수식 없이 ‘용산’으로도 통하는 그곳. 2009년 1월 20일 국가가 경찰력을 이용하여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의 철거민들을 극악무도하게 진압한 사건이 발생한 후 그곳은 이제 그저 용산역 건너편의 예사로운 동네로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당시 돌아가신 철거민 다
섯 분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지 일곱 달 째, 남일당 건물 분향소 앞에는 줄지어 꽃 화분이 놓이고 신부님들이 머물며 기도하는 평상과 천막이 들어서고, 참사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지금은 감옥에 있는 아들이 같이 꾸리던 가게에는 방송국이 차려진다. 용산의 골목에서, 화가들은 미술 전시를 하고, 그림책 작가들은 아이 책 시장을 열고, 아이들은 고누놀이를 하고, 만화가는 만화를 그리고, 가수는 노래한다. 매일같이 신부님들은 ‘생명평화미사’를 집전한다. 그리고 작가들은 팻말을 들고 섰다. ‘이곳은 용산참사역.’

용산참사의 근본 문제는 아마도 대한민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택개발사업과 강제퇴거, 그로 인한 주거권과 생존권 침해일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용산참사는 용산참사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사회권과 자유권이 처한 갖가지 현실을 드러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용산참사에 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은, 그날 진압작전을 수행한 경찰특공대 대원 한 분의 죽음에 대해서 현장에서 살아남은 철거민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로 기소한 재판(아래 ‘철거민들 형사재판’)이 유일하다. 이 글은 용산참사가 드러낸 무수한 문제들 중에서 철거민들 형사재판의 암초가 된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쟁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개정 형사소송법상 수사기록 열람·등사 제도

우선 이 쟁점을 보기 전에 2008년 개정 형사소송법의 이해가 필요하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형사사법제도의 기본 틀을 전반적으로 크게 손질하였는데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의미 있는 개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사법개혁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거치는 오랜 기간 형사소송법 개정 법률안을 마련하였고 마침내 2007년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법률안이 2007년 6월 1일 공포를 거쳐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사, 피고인(또는 변호인)이 각기 상대방이 갖고 있는 증거자료를 열람·등사하거나 교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상대방이 열람·등사를 거부하거나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에는 법원에 그 허용 여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였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3(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등의 열람·등사), 제266조의 4(법원의 열람·등사에 관한 결정), 제266조의 11(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보관
하고 있는 서류 등의 열람·등사)이 바로 그것이다. 증거개시(discovery)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공판중심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형사사법제도 개선의 하나로,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수사기록에 대한 실질적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통상 이해된다. 형사소송의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이 보관하고 있는 증거자료를 취득하여 사전에 대비하고 신속·공정한 재판과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꾀하자는 것이다.

이 규정에 의하여,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있거나, 법률상·사실상 주장과 관련된 서류나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그 서류와 물건의 열람·등사 뿐만 아니라 교부까지 신청할 수 있다. 만약 검사가 이를 거부할 때에는 피고인 쪽은 검사의 열람·등사 허용 거부가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법원에 열람·등사·교부 허용신청을 할 수 있고, 법원의 열람·등사·교부 허용결정(명령)이 있을 경우 검사에게서 서류와 물건의 열람·등사·교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법원의 이러한 허용결정에 대해서는 집행정지의 효력이 있는 즉시항고(결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상급심에서 다툼)가 허용되지 않아 적어도 법원의 결정을 즉시 정지시키는 불복은 인정되지 않는다. 법원의 허용결정은 즉시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고인 쪽은 이렇게 열람·등사한 서류를 살핀 다음, 필요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둘러싼 경과

검찰의 수사기록 3천 쪽 공개 거부로 일컬어지는 사태는 어떻게 비롯된 것일까? 단순한 공개거부인가, 명령 불이행인가, 법 위반인가, 그도 아니면 증거은닉인가. 개정 형사소송법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제도를 염두에 두면서 잠시 그 경과를 보자.

2009년 3월 25일, 기소된 철거민들의 변호인은 변론 준비를 위하여 검찰에 수사기록 열람·등사신청을 냈다. 바로 다음날 있었던 제2회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열람·등사를 신청한 수사기록이 공소사실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열람·등사신청을 거부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고 이어 3월 27일, 신청한 수사기록 전부에 대해서 열람·등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열람·등사 거부 또는 범위제한 통지서’를 변호인에게 전달하였다. 3월 31일, 변호인들은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법원에 ‘검사는 열람·등사를 거부한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허용하라’는 명령을 해 줄 것을 신청하였다.

2009년 4월 14일, 법원은 변호인들의 신청을 반박하는 검사의 의견까지 심리한 후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허용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이 있은 후에도 검사는 법원이 열람·등사허용명령을 내린 수사기록 중 검찰이 추가 증거로 제출한 수사기록과 검찰이 신청할 증인들의 진술이 적힌 수사서류 일부만을 변호인들에게 교부하였을 뿐 나머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계속 거부하였다.

2009년 4월 30일, 변호인들은 법원에 공판기일 변경신청을 하였다. 법원이 자신의 권능인 소송지휘권을 적정하게 행사하여, 검사가 법원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 결정을 모두 이행하고 변호인이 열람·등사한 수사기록을 검토하여 피고인들의 방어 준비를 끝낼 때까지 공판을 중지하고 그 이후로 이 사건 공판기일을 지정하여 줄 것을 신청한 것이다. 하지만 담당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공소사실에 대한 방어를 위하여 수사기록의 열람·등사가 필수불가결하고 검사의 결정 불이행이 위법함을 수차례 역설하였음에도 “형사소송법상의 불이익(이것이 어떤 불이익인지, ‘진짜’ 불이익인지는 잠시 후 따져보자)을 주는 것 이외에 달리 소송지휘권을 발동하거나 공판기일을 연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결국 피고인들은 담당 재판부가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고 보아 2009년 5월 15일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으며 이 기피신청은 최종적으로 지난 8월 6일 대법원에서 기각이 확정되었다.
이와 같은 경과를 살펴보면,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는 단순한 ‘거부’에 그치지 아니하고, 법원 명령의 불이행이면서, 형사소송법의 위반이고, 나아가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증거은닉의 여지까지 있는 위법행위라 할 수 있다.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의 헌법적 의미

검찰의 수사기록 3천 쪽 열람·등사 거부는 비단 법률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둔 개정 형사소송법이 시행되기 11년 전인 1997년, 이미 우리 헌법재판소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이 형사소송법의 차원을 넘어 최고법인 헌법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었다(헌법재판소 1997. 11. 27. 94헌마60 전원재판부 결정).

이 사건은 1994년 3월 26일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고인을 위한 변론을 준비하기 위하여 담당 검사에게 피고인의 자술서 및 피의자신문조서, 참고인들의 진술조서 등이 들어 있는 수사기록 일체를 열람·등사하겠다는 신청을 하자 검사가 거부사유를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신청을 거부하는 통지서를 보낸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일반 형사사건의 실무는 검사가 기소하면서 공소장과 함께 수사기록 일체를 법원에 함께 제출했기 때문에(현재는 그렇지 않다) 변호인은 법원에서 모든 수사기록을 복사해서 재판 준비를 할 수 있었으나, 이른바 시국공안사건에서 검사는 기소 후 즉시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고 피고인에게 복사도 해 주지 않은 채 제1회 공판기일 이후 증거제출 단계에서 비로소 법원에 제출하여 변호인이 사전에 재판 준비하는 것을 방해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변호인의 열람·등사를 거부한 검사의 행위가 헌법 12조 제4항이 보장하고 있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헌법 제27조 제1항·제3항이 보장하고 있는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보장된 피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므로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피고인의 청구를 받아들여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행위가 위헌임을 확인하였는데, 이 헌법소원심판청구의 결정문은 현재 철거민들 형사재판에서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거부하고 있는 검사들이 다시 되새겨야 할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영미법계에서 발달한) 당사자주의는 법적 평등 즉 당사자 대등을 전제로 하는데 여기서의 당사자대등은 형식적 당사사 대등이 아니라 실질적 당사자 대등, 즉 무기평등을 의미한다. … 형사소송에 있어서는 국가기관으로서 거대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피의자에 대하여 월등하게 우월한 증거수집능력과 수사기술을 갖추고 있어 소추자인 검사는 거의 모든 증거를 독점하게 되므로 증거의 공유 없이는 실질적 당사자 대등은 기대할 수 없고, 자칫 당사자주의는 헛구호에 그치게 될 위험이 있다.
… 검사는 소추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당사자로서의 지위 외에도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지위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도 지고 있으므로 진실을 발견하고 적법한 법의 운용을 위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는 상대방에게 방어의 기회를 부여하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에 대하여는 이를 상대방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주어야 한다.


이러한 대원칙을 전제로 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수사기록에 대한 변호인의 열람·등사는 실질적 당사자 대등을 확보하고 신속·공정한 재판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이다.1)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또한 변호인을 통하여 소송관계 서류를 열람·등사하고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공격과 방어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2) 따라서 수사기록 열람·등사에 대한 지나친 제한은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

용산참사 철거민들 형사재판에서는 피고인 쪽이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 범위에 관해서 법원이 검찰 쪽의 의견을 심리한 후 결정까지 내린 것이므로, 수사기록 열람·등사 제한의 정도를 따질 필요도 없이 1997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는가

수사기록 3천 쪽 사태를 법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형사소송의 한쪽 당사자이자 ‘공익의 대표자’ 노릇을 하여야 할 검사가 자신이 내린 명령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치욕을 겪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법원은 자신이 내린 명령이 검사의 위법하고 위헌적인 행위에 의하여 조롱당하는 사태를 방치한 채,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피고인 쪽에 “검사에게 형사소송법상 불이익을 주겠으니 이제 그만 그 입 다물라”고만 되뇌고 있다. 법원은 과연 검사에게 형사소송법상 불이익을 주었는가. 법원은 과연 피고인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있는가.

먼저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 명령 불이행에 대해서 법원이 부과하겠다는 형사소송법상 불이익이 무엇인지 따져보자. 법원이 말하는 ‘형사소송법상 불이익’은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4 제5항, 즉 “검사는 제2항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에 관한 법원의 결정을 지체 없이 이행하
지 아니하는 때에는 해당 증인 및 서류 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다.”라는 조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조항을 두고 법원은 검사가 열람·등사 허용을 불이행하고 있는 수사기록에 대해서는 해당 증거를 신청할 수 없도록 하였으니 검사에게 ‘형사소송법상 불이익’을 가하였다는 것이고 법원으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주장은 형사소송법을 편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뿐이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3 제1항이 열람·등사의 대상으로 규정한 수사서류는 공소사실의 인정 또는 양형에 미칠 수 있는 다음 4종이다. ‘1호. 검사가 증거로 신청할 서류 등’, ‘2호. 검사가 증인으로 신청할 사람의 성명·사건과의 관계 등을 기재한 서면 또는 그 사람이 공판기일 전에 행한 진술을 기재한 서류 등’, ‘3호. 제1호 또는 제2호의 서면 또는 서류 등의 증명력과 관련된 서류 등’, ‘4호.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행한 법률상·사실상 주장과 관련된 서류 등(관련 형사재판확정기록, 불기소처분기록을 포함한다)’이 바로 그것이다.

1호와 2호의 수사기록에 대한 ‘해당 증거신청 금지’는 검사에게 불이익 또는 제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3호와 4호의 수사기록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로도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애초부터 증거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며, 도리어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4 제5항(해당 증거신청 금지)으로 인해 증거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의도는 완전히 실현된다. 따라서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3 제5항은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명령 불이행에 대해서 1호나 2호의 수사기록의 경우에만 불이익의 효과를 갖는 ‘반쪽짜리’ 제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쪽인 3호와 4호, 특히 4호의 수사기록 열람·등사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형사소송법에서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해서 검사의 위법행위를 방치하고 말 것인가.

이에 관해서 오래 전부터 증거개시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의 입법례를 참고할 수 있겠다. 미국은 연방 형사소송규칙 제16조에서 규칙이 정한 증거개시의무를 위반한 경우 법원이 증거개시의 이행을 명하거나, 공판기일을 연기하거나, 개시되지 않은 해당 증거의 제출을 금지하거나 그밖에 적당한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각 주의 법령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밖에 주에 따라서는 증거개시명령에 따르지 않은 당사자를 법정모독죄로 제재하거나 공소기각 재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기도 한다. 예컨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증거개시의무 위반을 이유로 공소기각의 재판을 하는 것이 연방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경우에 허용하고 있다[Cal. Penal Code §1054.5(c)].

이를 위해서 형사소송법에 관련 규정이 개정되면 보다 분명해지겠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에 열람·등사허용결정 불이행에 대한 효과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법원의 아무 조치 없음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의 각종 권한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 보장과 실체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소송법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므로 법원은 현행법으로도 가능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여 검사의 위법하고 위헌적인 수사기록 열람·등사 거부행위를 시정하여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법원이 소송지휘의 일환으로 검사에게 해당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허용할 것을 촉구하고 열람·등사허용명령이 완전히 이행될 때까지 공판기일을 지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아가 해당 수사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서 공무소 보관서류의 송부요구, 법원의 직권 압수·수색3) 등이 제시되고 있다.

 


용산참사의 진실 규명, 3천 쪽에 가로막힐 것인가

용산참사를 대하는 정부의 일관된 태도는 아룬다티 로이가 말한 ‘기다리는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는 것이다. 용산참사의 해결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대화를 거부하며, 침묵 속에 내버려 두어 사람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 말이다. 철거민들 형사재판에서 검찰과 법원
이 보이는 태도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용산참사는 단 하루만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게 되었다. 유족들이 그날 이후 하루도 상복을 벗을 수 없었듯 용산참사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용산참사는 대한민국 인권 현실의 축약판이자 ‘개발잔혹시대’ 한국 현대사의 랜드마크이다. 이제 사람들은 남일당 현장에만 ‘용산참사역’을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역사 속에도 ‘용산참사역’을 세우고 있다. 방관과 부인이 길어질수록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 것이다.

이 글을 쓸 무렵까지도 정부의 사과는 없고 용산참사는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와중에 용산 4구역의 토지소유자들과 조합은 ‘철거세입자는 소유자에게 토지를 인도하라’는 법원의 판결집행문을 들고 건물을 다시 철거하고, 조합은 언론광고까지 내가며 개발사업을 다시 추진시킬 태세이다. 여전히 검찰은 수사기록의 열람·등사를 거부하고 있으며 법원은 “더 이상 이 문제를 논하지 말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채 용산참사에서 살아남은 철거민들을 ‘단죄’하기 위한 형사재판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철거민들의 변호인은 사법정의에 어긋나는 재판에 협조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법정을 나선 상태다.

“검찰은 무엇이 두려워서/ 수사기록 숨기고/ 법원 명령을 거부하는가?// 용산철거민 살인 진압/ 수사기록 3천 쪽을 즉각 공개하라// 용산참사 진상 규명/ 공정재판 촉구”, 철거민들 형사재판이 열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한 철거민이 든 팻말에 쓰인 글귀이다. 이보다 간명하게 이 문제의 핵심을 드러낼 수 있을까? 지난 8월 20일 새로 취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은 취임 전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에 중요한 사안이면 공익의 대변자로서 검찰이 수사기록을 내주어야 한다. 공개를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다. 수사기록 3천 쪽에 가로막힌 용산참사 실체 규명의 길이 법정에서 다시 열릴 지, ‘용산참사역’에서 거꾸러진 철거민들의 형사절차상 기본권과 사법정의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렇지 않으면 법정의 길이 요원하여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볼 일이다.

 

 

<덧붙임>

1)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공정한 재판’의 의미에 관해서 “헌법은 제27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여기서의 법률에 의한 재판이라 함은 ‘형사재판에 있어서는 적어도 그 기본원리인 죄형법정주의와 절차의 적법성뿐만 아니라 절차의 적정성까지 보장되는 적법절차주의에 위반되지 않는 실체법과 절차법에 따라 규율되는 재판으로 피고인의 방어활동이 충분히 보장되고, 실질적인 당사자 대등이 이루어진 공정한 재판을 의미한다.”라고 판시하였다.

2)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변호인을 통하여 수사서류를 포함한 소송관계 서류를 열람·등사하고 이에 대한 검토결과를 토대로 공격과 방어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는 이유에 대하여 “왜냐하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피고인을 위한 변호인의 활동이 충분히 보장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변호인의 변론활동 중 수사기록에 대한 검토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는 이를 피고인의 이익으로 원용하고 불리한 증거에 대하여는 검사의 공격에 대하여 효율적인 방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접근이 거부되어서는 실질적 당사자 대등이 이루어졌다 할 수 없고,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판시하였다.

3) 이호중, ‘검사의 수사기록 열람·등사의 거부에 대한 비판 및 대응방안 -용산사건을 보면서’,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은폐, 공정한 재판 가능한가 토론회’(2009. 5. 20) 발제문 13-14쪽 ; 서보학, 형사소송법 제226조의 4 제5항의 해석에 관한 의견서 10쪽.

 

<이 글은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40호(2009년 9-10월)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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