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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질과 페니스를 통한 구분과 차별- 수술의 대상은 성별이분화 사회_ 최현숙

“질과 페니스를 통한 구분과 차별” – 수술의 대상은 성별이분화 사회

최현숙_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누구의 욕망이든 필요든 탓이든, 의료적 조처를 통해 몸의 성별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을 “성전환자”들이라고 전제하자. 법에 대해 비교적 잘 아시는 분들인 “공감”의 변호사들과 활동가들 및 (후원)회원들에게 성전환자 관련 법제도적 정책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피차에 지루하다. 혹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른 글들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제정을 위한 공동연대”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4월~8월에 진행되고 있는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를 위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를 통해 많은 성전환자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생각들을 나누고자 한다.

한 사람이 자신을 여성으로 느끼든 남성으로 느끼든, 그 사람에게 질이 있든 페니스가 있든, 그 사람의 생식기가 난자를 만들든 정자를 만들든, 그 모든 항목들이 그 둘의 어느 언저리든 중간 어디이든 혹은 어느 것도 아니든, 사회가 왜 확인 해대려 하는가?

혹은 그 항목들의 여부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엇갈려서, 페니스가 있는 사람이 자신을 여성으로 확신한다고 한들 사회와 타인들이 왜 왈가왈부 해대는가?

사회를 향해서건 당신을 향해서건 당신의 페니스를 꺼내 당신의 남성임을 확인시켜야 한다면 너무나 촌스럽지 않은가? 혹은 그 확인 수단이 근육이건 염색체건 수염이건 목의 뼈이건 어차피 유치하지 않은가? 왜 당신은 사회에 당신의 성별을 확인받아야 하는가?

한 사람의 성별을 사회가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하고 간섭하려 드는 근본적 목적은 구분을 통한 차별이다.

사회의 공동선과 크게 충돌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확신하는 대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고 혹 당사자들이 전문 진영(정신의학 성형의학 심리학 사회학 입법 사법 정부 등)에게 도움을 청하면, 전문 진영은 양심과 소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 주면 되는 것이다.

사회적 혼란? 상상력의 과잉이다.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이해 과정에서의 갈등과 병무청이 마련하는 징집의 규정과 적용의 문제만이 남을 뿐이다. 성별구분 사회 속에서 인간 실존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한 개인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가족이나 병무청이 그 정도의 분담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거나 혹은 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니 어련히 알아서 할 일이다. 극히 드물겠지만 혹 결혼했던 성전환자의 어린 자녀라 하더라도, 그 자녀의 혼란을 막기 위해 그 어머니(혹은 아버지)가 남은 인생 전체의 근본적 존재 방식을 미루기만 하거나 아예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녀의 혼돈을 가족과 사회가 함께 책임져 줄 일이다.

개개인들의 별 수 없는 고정관념의 한계 속에서 가능하면 선입견 없이 성전환자들과 기획단 사람들이 만나고 주로 성전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상황과 경험과 감정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당하는 차별과 억압을 분류하고 객관화하여 그에 대한 사회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 사람들이 요즈음 하는 일이다. 그들과 동일한 선행체험이 없으니 감히 “공감”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삶의 과정 과정에서의 그들의 혼돈과 억압과 구체적 상황과 느낌들을 최대한 상상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혹은 나 자신의 고정관념을 확인하고 본래의 나를 더 찾아가고자 어슬렁거린다.

이 실태조사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는 성전환자 성별변경 관련 법의 제정이다. 그 것은 당사자들이 확신하고 간절히 원하며 의학이 지지해준 성별로 그들의 공부(호적 등) 상의 성별을 바꾸어주어, 끊임없이 성별을 의심하고 구분하고 차별해대는 사회에서 가능하면 덜 의심받고 끼어들게 해 주는 일이다. 별로 맘에 드는 방식은 아니지만 성전환자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시급한 제도이다.

하지만 이 법 제도의 한계는 뚜렷하여, 결코 궁극적이지도 근본적이지도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오히려 2번과 1번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 놓고 늘 그것을 확인하고 분류하고 줄을 세워대야 안심이 되는 사회의 경직된 성별이분화 고정관념이다. 모든 성차별의 기반이 되는 성역할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사회는 성별변경 전후의 모든 성전환자들 뿐 아니라 비성전환자들까지도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왜곡하게 하고 있다. 소위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강제와 모방 속에서 자유로운 욕망과 삶의 방식과 상상력들은 늘 통제되고 억압되고 혹은 아예 발견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하며 들었던 단상들

성별정체성 혼돈(인간 본래의 내재된 혼돈이 아니라 사회와의 부대낌 과정에서 생산되는 혼돈)의 경험과 느낌과 생존방식의 조각들 그리고 이에 대한 성별이분화 사회의 끊임없는 의심 억압 차별 배제 사이에서, 무력한 한 개인이 겪어야 하는 자괴와 사회부적응과 빈곤의 과정들에 대한 아픔이 그들에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난 여(남)자가 아닌데…..”를 자신 속으로만 되풀이하며 자괴감을 가중시킨 기억의 현장은, 또렷한 성별 이분화의 현장이었다. 교복, 공중화장실, 공중목욕탕, 옷가게, 사랑의 성별 관계, 은행, 수표, 카드회사 등 신분확인을 요구하는 각종 텔레마켓팅, 투표, 관공서, 병원, 직장.

“사춘기 학창시절에 교복을 입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어. 교복 때문에 내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어.”

정신과 어긋난(어긋났다고 늘 지적받고 매 맞기까지 하는) 성별의 몸에 한 겹 성별포장을 덧입혀야 하는 강제된 교복은 자괴감에 빠진 한 청소년을 늘 선도부와 학생주임을 피해 새벽 등교를 하거나 결석을 하게 했고, 교복과 체육복을 싸들고 다니며 마주칠 선생에 따라 화장실에서 홀로 옷을 갈아입게 했으며, 그러다가 결국 학교에서 쫓겨났다. 누구에게서도 심지어 자신에게서도 자신을 이해받을 수 없는 채 학교에서 쫓겨난 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배제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강화된다. MtF(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자들의 대부분은 유흥업소의 직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자들의 대부분은 주민등록증이 필요 없는 막노동과 일용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생존의 밑바닥에서 오로지 성전환을 위한 의료비용과 호적정정을 위한 법률 비용을 저축해대야 했다, 사회에 덜 의심받으며 편입되기 위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다른 한 느낌은 그들을 포함해 사회 전반이 강고하게 가지고 있는 성별이분화 고정관념의 경직함과 지루함과 폭력성이다. 심지어 수술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욕망마저 그들 스스로의 진정한 욕망인지 의심스럽다. 그들의 현존하는 욕망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별이분화 사회의 폭력에 살아남느라 수술과 호적정정에 대한 욕망이 상당부분 강제 가공 강화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몸과 정신의 성별이 다른(그보다는 자신에 대한 성별 정체성이 사회의 구분과 어긋난) 그들의 존재 자체를 사회가 받아들여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수 있었다면, 구태여 한 개인이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자학?자퇴?자해?자살미수, 가족과 직장과 사회에서의 퇴출 빈곤 소외가 계속 될까? 그 모든 과정들 속에 또 홀로 감수해야 하는 성전환 수술의 위험과 부담, 호적정정을 위한 자기 증명과 증거의 과정,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남는 소위 “완전하지 않은 여(남)자”의 흔적들, 그 것을 보아내고자 하는 의심들 속에 그들은 서있다. 성(별)에 대한 개인의 욕망과 확신과 선택은 최우선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궁극적인 수술의 대상은 개인과 사회의 성별이분화 고정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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