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자유를 찾아 선을 넘는 사람들, 선을 넘으면 권리를 박탈당하는 사람들

부조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2014영화 <노예 12>이 한국에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실존 인물이 쓴 자전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1840년대 미국에서 노예제가 완전히 폐지되기 전에, 노예제가 남아있는 노예주와 노예제가 금지되어 있는 자유주로 나뉘었는데, 자유주인 뉴욕에서 자유인으로 태어나 살고 있던 솔로몬 노섭이 인신매매범들에게 납치되어 노예주로 넘겨져 12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탈출하는 내용이다.

 

  “나는 자유인이다. 너희는 나를 가둘 하등의 권리가 없다.”

  그러나 노예주에서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하루아침에 자유인에서 노예가 되어 있던 솔로몬 노섭. 그의 상황은 처절하게 절망적이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솔로몬 노섭과 노예주에서 노예로 태어난 흑인들은 다른가. 그들의 상황에 다르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면 왜 그럴까. 왜 감독은 노예제도의 야만성을 폭로할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도 자유인이 노예가 된 이야기에 집중했을까.

 

  아마도, 자유를 이미 누려 본 사람에게, 그리고 법적으로도 자격이 있는사람에게 그 권리를 박탈하는 상황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150여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도 처음부터 노예로 태어난 사람보다는 자유인으로 태어났다가 납치되어 노예가 되고, 불굴의 의지로 다시 자유인이 된 사람에게 더 감정이입하기 쉽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주인공 보다 노예주에서 태어난 노예들’, 주인공의 탈출 이후에도 거기 남겨진 사람들이 계속 생각이 났다. 선 하나만 넘으면 누군가는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노예로 태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노예제도의 야만성과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소재였다고 생각한다.

 

자유를 찾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 그들에게 다시 돌아가 숨죽이고 살라고 한다면

    이 영화를 보는 당시에 떠오른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동성애를 처벌하는 자국을 떠나 한국으로 와서 난민신청을 한 성소수자 난민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난민신청자들에게 관대하지 않다. ‘본국에서 성정체성을 숨기거나 신중하게 처신함으로써 박해를 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난민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한국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던 난민신청자에게, 본국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숨기고 신중하게 살라는 말은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한국에 오면 남남이 되는 동성 커플들, ‘의 잣대로 회피한 국가인권위원회

    최근에 다시 이 영화가 떠오른 것은,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면 남남이 되는 동성커플들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독일문화원의 혼인평등 포럼에서 만난 한 커플은, 독일에서 동반자등록법에 따라 법적으로 동반자로 살고 있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법적으로 남남이 되었다. 그들은 최근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큰 양국의 인식·제도 차 앞에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은 이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결혼한 한국인영국인 동성부부가 한국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부부는 한국에서 배우자 사증(비자)을 거절당했고, 내국인의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평등권 침해로 진정을 했으나,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2.27. 이 사건에 대하여 “각하” 결정을 하였다. 해당 사건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법원의 해석이 바뀌어야 하고, 법·제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법과 제도로 인한 인권침해 사안에도 개입해 왔고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의의다. 현행 법률이나 법원의 해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방향을 권고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에서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주의 경계선으로 극명하게 나뉘는 한 인간의 상황에 대해서 돌아본다. 노예제도의 부조리와 야만성에 대하여. 문제는 그 경계선이 아니었다. 인간의 등급을 매긴 제도와 법 자체가 문제였다.

   

_ 장서연 변호사

 

장서연

# 빈곤과 복지# 성소수자 인권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