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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2011년 어느 봄날”- 여영학변호사




 


온 세상이 봄꽃으로 화사합니다. 길목마다 눈부시게 벙글고 피어난 목련꽃 구경하느라 주말 내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쏘다녔습니다. 산수유와 매화로 시작한 꽃잔치는 개나리로, 진달래로, 살구꽃으로 쉴 새 없이 번져갑니다.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조아려야 간신히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앙증맞게 작은 꽃들도 들판과 산에, 물가에 즐비합니다. 제비꽃, 별꽃, 꽃다지, 현호색…


 


황홀한 봄 향기에 취해 있다가 문득 꿈을 깨듯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후두둑 빗방울이 듣습니다. 순식간에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듭니다.



“이 땅의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핵발전소를 짓고 관리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만든 광고에 쓰인 이 노랫말이 뜬금없이 불길하게 들립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 방사성 물질이 훨훨 날아다니다가 꽃잎 위에 빗물로 떨어지는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이 땅이 끝나는 낭떠러지를 향해 인류가 힘껏 내달리는 상상 앞에 달콤한 봄꿈은 저만치 달아나버립니다. 이 순간의 평화가 쩍쩍 금이 간 유리처럼 한없이 위태로워 보입니다.


 


“우리는 안전하다. 우리 원전은 일본보다 100배 이상 안전하다. 방사능이 문제가 아니라 유언비어가 문제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거듭거듭 뇌까리는 저 ‘전문가’와 ‘정치꾼’들의 방정맞은 입을 무슨 수로 믿을 수 있을까요?


양자역학의 창시자이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이 정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느 한 분야에 관해서 정말 많이 알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정의하겠다. ‘전문가란 해당 분야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몇 가지 커다란 오류를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이필렬, <에너지 대안을 찾아서> 중에서).



대통령이나 여당의 대표, 몇몇 장관들이 입을 빌리고 있는 전문가들, 기껏해야 원자핵공학이나 기상학의 전문가 소리를 듣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핵발전소 지역의 지진 가능성을 얼마나 알까요? 방사능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무슨 수로 장담할 수 있을까요? 국제정치학과 한반도의 정치상황에 정통한 것도 아닌 그들이 핵발전소가 전쟁과 테러에 노출될 위험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다는 걸까요?


 


더구나 돈줄이나 인맥의 사슬로 원자력산업계와 한통속이 되어 얽혀 있는 그 사람들의 섣부른 호언은 선무당의 어설픈 굿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신공항 공약처럼 지역 민심을 긁어 놓고는 적당히 정치적인 손해나 보고 물러날 수 있는 그런 문제와는 애당초 수준이 다르지요. 일본 원전사고가 한창 심각해질 무렵 일본 간 총리가 ‘동일본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기억하시나요? 어쩌면 온 국토의 붕괴와 겨레의 절멸을 가져올지도 모를 일을 놓고 저토록 무책임한 소리를 가볍게 내뱉을 수 있는지, 골목길을 뛰어다니는 천진한 아이들의 앞날이 불길하기만 합니다.


 


– 글 : 여영학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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