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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평화로운 집회는 언제나 허용하라 – 이호중 교수




경찰이 집회 · 시위에 너그러웠던 적은 거의 없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3년간은 ‘기자회견’이나 소위 ‘변형된 1인 시위(두 명 이상의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동시에 1인 시위의 형태로 집회·시위를 하는 것)’ 등 평화롭게 진행되는 소규모의 집회 · 시위도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만으로 집시법위반으로 단죄하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기자회견은 시민단체들이 긴급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밝히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는데, 과거에는 집시법으로 규제하지 않았던 것을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기자회견=미신고집회=불법집회”라는 등식에 따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또한 평화롭게 진행되는 문화제나 추모제 등의 행사라도 무상급식이나 4대강저지 등의 구호나 피켓이 등장하면 정치적 집회로 간주하여, 사전신고 없이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된다. 기자회견이나 문화제 등에서 구호나 피켓이 등장하면 경찰은 미신고집회 내지 시위라고 보아 <자신해산요청→해산명령→해산명령 불응시 연행>으로 대응한다. 미신고집회의 주최자는 집시법 제22조제2항에 따라 처벌되며, 해산명령에 불응한 사람은 제24조 제5호에 의하여 처벌된다. 공식처럼 기계적인 대응이 이루어진다.



변형된 1인 시위의 경우 경찰은 해산명령절차를 밟지 않고 즉시연행에 바로 돌입하기도 한다. 1인 시위자 각자를 미신고집회의 주최자로 간주한다. 미신고집회의 주최가 곧 집시법위반의 범죄행위라고 보아 <1인시위자=미신고집회의 주최자=집시법위반의 현행범>이라는 논리로 해산명령도 없이 1인 시위자 모두를 동시다발적으로 체포해 버리는 것이다. 2009년 10월 12일 민노당서울시당과 민주노총서울본부 소속 회원 등 10여명이 광화문광장에서 ‘용산참사 해결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동시다발적으로 1인 시위를 한 것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그러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내지는 ‘집회 ․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집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한민국이 과연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인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헌법은 평화적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헌법은 허가제의 금지를 특별히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집시법은 집회의 주최자에게 사전신고의무를 부과하고, 신고 없이 집회를 주최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신고의무는 집회의 주최자가 부담하는 협력의무에 불과하여 허가제를 창설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헌법재판소는 신고제가 도로교통의 통제라든가 집회의 중복으로 인한 혼란 등을 예방하고 경찰이 사전조율을 할 수 있도록 하여 결국 공공의 안녕질서를 보호하는 외에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하며,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 행정단속의 목적을 위해 미신고집회의 주최자를 형사처벌하는 것도 위헌이 아니라는 입장이다(헌재 2009.5.28, 선고 2007헌바22 전원재판부 결정).



신고제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론은 집시법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거나 무시하는 것, 둘 중 하나일 듯하다. 집시법이 규정한 신고제가 정말 허가제가 아니고 협력의무를 규정한 것이라면, 신고의무의 이행이 집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신고한(그리고 금지통고되지 않은) 집회의 자유’로 변질되어 버리는 것이 현행 집시법의 진짜 모습이다. ‘신고 없는 집회’ 그 자체가 집시법상 범죄행위인 이상, 사전신고는 시민들이 집회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되는 셈이며, 이 때 신고는 단순한 협력의무의 차원을 벗어나 집회의 허용여부를 결정짓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신고집회에 대한 형사처벌과 해산명령은 평화적 집회 자체를 범죄행위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헌법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까짓 것 신고하고 집회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고제의 실제 기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고제의 진짜 목적이 경찰의 사전적 집회통제를 확보하고자 하는데 있음은 평범한 시민의 상식에 속한다. 신고의무가 협력의무일 뿐이라는 헌법재판소의 설명은 신고제의 실질적인 기능이 경찰의 사전적 심사를 통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가식적인 언명에 불과하다. 집시법은 미신고집회를 금지할 뿐만 아니라, 신고의무제의 연장선에서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제16조 제4항 제3호)까지 금지하고 있다. 기자회견이나 변형된 1인 시위와 같은 소규모의 평화적인 집회라도 사전에 신고하면 당연히 허용되지 않겠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설령 경찰이 금지통고하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집회의 장소나 시위경로, 표현방법 등이 신고의 범위를 일탈하는 순간 아무리 평화적인 집회라도 불법집회가 되어 버리는 것이 집시법의 현실이다.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장소라든가 표현방법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포함하고 있지만, 신고제는 집회의 자유를 경찰의 입맛에 맞게 규격화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고제는 실제로는 헌법이 금지한 허가제로 기능하고 있다.



사례 하나를 상상해 본다. 어떤 국가정책에 불만이 있는 시민 10여명이 청와대 민원실에 민원을 제기하기로 하고, 일시를 정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모인 김에 인근을 지나는 동료 시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고픈 마음이다. 짧고 임팩트 있는 문장이 아니면 길 가던 시민들이 주목하지 않을 것이기에, 피켓을 준비하고 구호도 몇 마디 외쳐본다. 그리고 청와대를 향해 인도로 걸어간다. 피켓을 들고 걸어가면서 구호를 외친다. 경찰의 논리대로 하면 미신고집회 ․ 시위 아닌가? 청와대 민원실에는 누구나 민원서류를 접수할 수 있다. 청원권으로 보장된다. 청원권을 행사하러 청와대에 걸어가는 것은 장소이전의 자유로 보장된다. 그럼에도 경찰이 막아서고 해산명령과 연행을 한다면 그 이유는 집시법상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뿐이다. ― 아, 그냥 모여서 소녀시대 노래나 흥얼거리면서 갈 걸!



시민들이여,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를 허하노라!


 


 


글_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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