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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참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법 – 정당등록취소 조항 위헌소송을 제기하며

 





 


 


특정한 상품을 놓고 시장에서 여러 기업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시장점유율을 점검해서 2%가 안 되는 기업들은 퇴출을 시킨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을 갖고 이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번번이 퇴출당하고 만다. 이런 일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아마도 기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기업의 창의성도, 활력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만약 언론에 대해 이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즉 시장점유율이 2% 안 되는 언론사는 정부가 주기적으로 퇴출시킨다면? 그렇다면 언론의 다양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언론사는 탄생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새로운 담론이나 이슈가 제기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의 문제가 결정되는 ‘정치’라는 영역에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버젓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득표율이 2%에 미달하면 정당등록이 취소되도록 정당법 조항이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등록취소가 되면 4년 동안 같은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정당법 조항은 전두환 정권 당시에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초헌법적 기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구에서 만들어진 법 조항이 민주화 과정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 법 조항에 따라 4.11.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나고 난 후에 10개가 넘는 정당들의 등록이 취소되었다. 그 중에는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녹색당’도 포함되어 있었다.


 


녹색당은 올해 3월 4일 날 창당대회를 한 신생정당이다. 작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 창당한 정당이다. 핵발전의 단계적 폐지와 에너지 전환을 핵심정책으로 내걸었고, 그 외에도 농업, 지속가능성, 인권, 평화,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0.48%의 득표를 했다. 10만 3,000명이 넘는 유권자들이 신생정당인 녹색당에 투표했지만, 인지도가 낮은 신생정당이 2%의 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정당법에 따라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물론 새롭게 정당등록을 하면 된다. 당원들의 참여를 통해 운영되고, 당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정당이라면 새로 정당등록 절차를 밟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득표율이 낮다고 해서 정당등록을 취소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법 조항이다. 게다가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지 못하게 한다. 같은 이름을 계속 써야 신생정당의 인지도가 올라갈 수 있을 것인데, 그것조차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런 법 조항이 누구에게 유리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이런 조항을 통해 진입 장벽을 높게 쌓는 것은 이미 정치의 영역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불합리한 조항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녹색당은 다른 정당들과 함께 이런 정당법 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헌법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한 것에 굴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법에 따른 정당등록절차를 다시 밟고 있다. 이름은 ‘녹색당’을 그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녹색당’ 뒤에 다른 단어나 기호를 붙여야 한다. 그러나 헌법소송에서 위헌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으므로 일단 정당등록절차는 다시 밟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참 불합리한 정치제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사회적 부정의에 대항하는 정당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래서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녹색당은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 존재하는 국제적인 정당이다. 세계적인 네트워크고도 있다. 한국에서 생긴 녹색당도 세계 녹색당 네트워크(Global Greens)에 가입한 상태이다. 독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녹색당이 상당히 높은 득표율(10%가 훨씬 넘는)을 올리며 정책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독일이 한국 같은 선거제도였다면, 독일 녹색당은 출발도 어려웠을 것이다. 독일 녹색당도 처음 선거에 참여했을 당시에 얻은 득표율은 1.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의 다양성이 잘 보장되는 편인 독일에서조차도 신생정당은 2%를 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2%를 넘지 못한다고 등록취소를 당하고 이름을 계속 쓰지 못하게 됐다면? 그렇다면 아마 독일 녹색당은 지금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뿐만 아니라, 어느 세계에서나 최소한의 공정한 룰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에서는 그것에 보장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 새로운 대안은 ‘정치’라는 영역에서 시민권을 얻기조차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룰이 바뀔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불공정한 룰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시민의 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필자를 포함해서 생애 최초로 정당에 가입한 사람들이 녹색당 운동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_ 하승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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