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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시설장애인에게 돈을 묻는다 – 김정하 활동가


 


 


요즘 나는 한창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 개정 문제로 바쁘다. 내가 속한 단체가 <기초법개정공동행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기초법은 우리나라 공공부조의 핵심근간이기 때문이다. 기초법 개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는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부양의무제 폐지이다. 최저생계비 현실화 논의는 안타깝게 지난 4월 국회에서 물 건너갔고, 그나마 이번 6월 국회에서는 부양의무제 논의가 남아있다. 그런데 또 하나, 우리 사회가 전혀 주목하지 않는 내용이 이번 개정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시설거주인에게 수급비를  직접 지급하라’는 내용이다. 말만 보면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하다못해 이 개정안이 올라갔을 때 보건복지위 국회의원까지 물었다. “아니 그럼, 지금까지 시설에 사는 사람들은 수급비를 직접 받지 않았단 말이야?”


 


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우리나라 바닥빈곤층은 국가로부터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등의 급여를 받는다. 이중에 현금으로 지급되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는 본인의 통장에 직접 지급된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바로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 노인, 아동 등이다. 장애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장애인이 직접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설수급자라 해서 시설 거주인들의 인구수를 계산하여 시설운영자에게 다른 운영비와 함께 통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러니 좀 똑똑한 사람이 아니면, 내가 수급자인지 아닌지 조차 모르고 살기가 일쑤이다. 뿐만 아니라 도대체 ‘수급자’의 개념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다. 2005년 장애인생활시설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본인이 수급자냐고 묻는 질문에 20.2%는 수급자인지 모른다, 34.9%는 수급자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약 56%에 해당하는 본인에게 이뤄지는 국가의 공공부조를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2010년 미신고시설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9.5%가 본인이 수급자인지 모른다, 47.8%가 수급자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면, 본인이 수급자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돈은 뭐 어떻게 되는 건가?’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건 크게 두 가지다. 시설거주인들이 ‘시설수급자’인지 아닌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시설운영비로 한꺼번에 지급되기 때문에 운영자가 알아서 운영하는 시스템이거나 2)본인에게 직접지급 방식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하더라도 시설운영자가 통장과 신분증을 일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은 전혀 모르는 경우이다. 앞이나 뒤나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는 게 힘인 법인데,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권리 주장이고 나발이고가 없다. 그저 시설에 사는 동안 먹여주니 감사하고, 살게 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본인이 수급자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하고, 왜 본인에게 직접 지급해야 하는가? 그 답을 당사자에게 듣기 위해서 지난 6월 7일 “시설장애인에게 돈을 묻는다”는 제목으로 집담회가 열렸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시설에서 짧게는 6년 길게는 25년을 넘게 살다가 이제 막 자립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S : 수급비는 나오는 줄도 몰랐고 장애수당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관리한 적은 없었어요. 해볼 수 없었지. 장애수당에서 거기서 내 전화요금 나가고 한 달에 만원씩 용돈 쓰고.. (그 계획은 누가 세우나요?) 방 선생님이….


 


E : 하여튼간 오천 원이고 만원이고 돈을 안줘, 그러니까 배는 고픈데 간식도 안주지, 다른데 가겠다 하니까 그것도 못하게 하니깐. 내가 (시설에서 나오기) 막판에도 진짜 가진 게 없어요. 뺏기니까. 누가 뭐 가지고 있잖아, 그게 맘에 들면 어떻게든 다 뺏어가. 갖지 못하게 해. 어디 가려면 가지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 이야기도 못하게 하지, 손님하고 이야기하면 지키고 있지. 그래서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는 거야. 그때 당시는 여자원장이 강의 많이 했는데, 그게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맨날 그런 내용이야. (중략) 내가 맨날 싸우다가 누가 고발한다고 하니까 며칠 있다가 통장을 주더라고. 통장을 보니까 십 원짜리 하나 없는 거야. 나중에 알았는데 매달 17만원이 들어오는데 그걸 만원 오천 원씩 빼 간 거야. 그래서 지금 내가 빈손으로 (자립을) 시작했지만.. 내가 다음에 죽었다 태어나도 진짜 그런데 안 갈 거야. 진짜. 집보다 더 심해. 아무것도 못하게 하니까.. 방에만 갇혀 있는 거지 그게 뭐냐.      


 


J : 만약에 시설에서도 지금처럼 수급비가 나왔다면, 상상만 해도 기절할 만큼 놀랍네요, 세상에 감당이 안 되는 돈이었을 것 같은데요, 이게 웬 떡이냐! (웃음) 그래도 만약 그런 돈이 나한테 들어왔었다면, 자립하는데 계획을 세우고 썼을 것 같아요. 최대한 더 짠돌이가 돼서 난 나가서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동안 시설에서 받은 장애수당 6만원은 매월 용돈으로 쓸 만한 돈이지 큰 돈은 아니잖아요? 6만원으로는 뭘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엔 어려웠지만 60만원은 전혀 다른 금액이에요.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울 수 있는 돈이니까. 음.. 이용료를 낸다고 했더라도 지금 난 15년을 살다가 자립했지만, 6년이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청약도 하고, 적금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을 지금처럼 떼어놓고 살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은 사춘기라서 아이를 만날 수도 없는데, 모진 엄마가 된거죠. 


 


G : 1달에 3만원 받고, 꼭 영수증을 제출해야 해. 나는 돈을 모으고 싶었는데 하지 말래.  니가 시설에서 계속 살 건데 돈을 모을 필요가 있냐, (같은 시설에 살았던 M : ‘니네가 모아서 뭐하게?’ 했어) 그래서 당시에는 돈이 없었어.


 


최근 복지부가 정신장애인 그룹홈의 수급비에 대한 지급방식을 일반수급(당사자 직접수급) 방식에서 시설수급(시설운영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꿔서 큰 문제가 됐다. 한 달에 최저생계비 최대 436,000원과 장애수당을 받아 이용료를 내는 방식으로 살던 장애인들에게 436,000원을 지급하지 않고 시설수급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결국 정신장애인들은 최저생계비를 직접 받기 위해 그룹홈을 나와 열악한 고시원을 떠돌거나 결국 정신병원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시설거주인에게 직접 수급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별거 아닌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이용료를 본인이 시설 측에 지급함으로서 소비자권리를 내세울 수도 있고, 시설생활이 아닌 자립을 꿈꿔 볼 수도 있고, 다른 인생의 계획들을 상상해 보고 삶을 전환해 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6월 국회에서 이 논의가 활발히 되지 못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복지부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언제 또다시 이 논의가 될지 불투명하다. 그래도 논의는 던져졌다. 이 작은 불씨를 잘 키워야 되는 몫이 남아있다. 이 칼럼을 읽는 사람들도 이 논의를 잊지 말아 주시길!


 


글_김정하 활동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사진 출처: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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