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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강력한 처벌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난 2월 부산에서 실종되었던 여중생 이양의 시신이 이양이 살던 집 근처 빈집 물탱크에서 발견 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후, 경악과 슬픔, 분노와 절망이 수없이 교차했다. 왜 이렇게 참혹한 범죄가 자꾸 일어나는가?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무분별한 재개발로 공동체를 파괴하고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 여기저기 빈집을 방치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시민 열 명만 모여서 촛불을 들어도 수백 명을 순식간에 출동시키던 경찰의 날렵함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막지 못했는가? 집회 참가자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잡아들이겠다고 엄포를 놓던 그 10만 경찰은 왜 보름이 넘게 용의자를 잡지 못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가는 바람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결국 용의자 김모씨가 체포되어 공중파 3사를 통해 맨얼굴이 생생히 중계되고,  전자발찌를 소급적용하여 채우겠다느니, 법정 최고형을 25년에서 50년으로 늘리겠다느니 하는 보도를 접하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신속한 사형집행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법무부 장관이 사형장 신설과 보호감호제도 부활을 공언하고 사형집행 재개의 가능성을 언급하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며 정신을 차렸다. 지난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국민의 공분이 모아지는 강력 범죄가 발생하게 되면 정부가 내 놓는 대책이라는 것은 결국 형벌을 강화하겠다는 공허한 다짐의 반복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형벌을 강화하겠다며 정부와 여당이 앞 다투어 거품을 물자, 야당도 이에 뒤질세라 합류하였다. 온 국민의 관심이 천안함 침몰의 진상과 생존자들의 구조 소식에 쏠려있을 때 국회는 형벌을 강화하는 몇 개의 법안을 신속하게 통과시켰다. 유기징역의 상한 형을 현행 15년에서 30년으로, 형의 가중을 25년에서 50년으로 상향조정했다.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했고 얼굴 등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게 했다. 현행법으로는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없는 경우에도 형 집행 종료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성폭력범죄자에게는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 되었다. 곧 보호감호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구체적 움직임이 있을 것이고 그 이후 사형집행의 재개를 여론의 눈치를 보아가며 추진할 것이다.  


 


1997년에 97.4% 였던 강력범죄 검거율은 2008년 89.2% 까지 떨어졌다. 경찰의 수도 늘어났고 최신 수사기법과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감시와 통제가 더욱 심해진 오늘날 강력범죄의 검거율이 감소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늘 불안에 떨고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불안감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국민의 분노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이 불안한 것은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을 사형집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미 구속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형수들이 분노의 대상될 수는 있겠지만, 불안함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국민이 불안해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번 사건과 같은 참혹한 범죄의 발생을 예방 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또 늘 초동수사는 미흡하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나서야 범인을 검거하는 치안의 부재 때문이다. 거기에 국민의 알권리라는 포장 뒤에 숨어 선정적이고 원칙 없는 보도로 온 나라를 뒤집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언론이 늘 한몫 거들기 때문이다.


 


전 세계 국가의 사형폐지라는 유엔의 입장과 국제사회의 흐름을 외면하고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유엔 회원국 192개국 중 25개 국가만이 사형을 집행하고 있으며 140여 개국이 사형을 법률적으로 폐지했거나 사실상 폐지했다. 대한민국도 12년이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 것을 국제사회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발표하던 날 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4회 사형반대 세계총회(4th World Congress against the Death Penalty)에 참가하던 중이었는데 100여 개국에서 참가한 1,900여명의 참가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에 하나가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는 것에 나는 매우 놀랐다. 다수의 발표자들이 “내일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것이다”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고 결과 발표 후에는 사형반대아시아태평양네트워크(Anti Death Penalty Asia Network)의 유감 표명 성명서가 모든 참가자들에게 전해졌다. 내가 발제를 한 날이 공교롭게도 헌재결정이후의 시간이어서 난 발표문을 새로 작성해야했고 발표 후에는 처음 보는 외국 인사들에게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만 했다. 특히 아직도 사형이 집행되고 있거나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은 우리 헌재의 결정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괜히 내가 열심히 활동하지 못해 헌재에서 그런 결정이 난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2010. 2. 25)은 결코 정부의 사형집행을 용인한다는 뜻도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뜻도 아니다. 재판관 9명 중 4명이 사형제도가 위헌이라 했고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들조차 사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권고한 것은 사실상 국회에서 사형제도를 입법으로써 폐지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강력한 형벌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주장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어이없는 시도이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히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아동과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청소년 시절부터 체계적인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꾸준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인권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일이 사형집행이나 보호감호제의 부활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일부 정부 인사들과 정치인들은 국민의 분노위에 올라타 인기를 얻어 보겠다거나, 공포정치로 국민이 반대하는 정부의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발판을 만들려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당장 버리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깊이 있는 연구와 겸허한 노력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글_김덕진 천주교인권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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