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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칼럼]처랑하고 처량하다, 나의 주민등록번호여-이은우변호사

  


13자리의 숫자.


전국민 + 둘리와 로봇 태권브이가 가지고 있는 숫자.


생년월일과 성별, 출생지로 표시되는 숫자.


 


  주민등록번호다.


 


  너는 1968년부터 12자리의 숫자로 부여되다가, 1975년부터 현재와 같은 13자리의 번호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너는 한번 부여되면 오류가 있거나, 변경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정정 받지 못한다. 2007년에 한국소비자원이 각 분야별 주요 223개 웹사이트를 조사했는데, 91.9%에 달하는 205개의 사이트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한다. 너의 가치는 얼마일까?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판매되는 너의 가격은 백 원도 채 안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되면 수 만원부터 십 수 만원까지 위자료를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강제적으로 전국민에게 부여되는 식별번호는 없다. 대신 193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사실상 국민식별번호처럼 기능하고 있는데, 2005년 기준 2억 2,700만 여명이 발급받았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사회보장번호가 애초의 발급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돼 문제다. 예컨대, 은행계좌 개설 및 신용카드를 발급 할 때, 각종 거래 시 개인 식별(identification)번호로써 사용될 때, 개인 인증(authentification)할 때 쓰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보장번호는 ‘왕국으로 들어가는 열쇠(key to the kingdom)’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자연히 신원도용범죄자(ID theft)의 표적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매년 1,000만 명 이상이 신원도용범죄의 피해를 입고, 그 피해액은 매년 수십 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떨까? 주민등록번호로 인한 신원도용범죄의 피해는 기초 조사도 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신원도용범죄도 그렇지만, 곳곳에 누적된 개인정보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다.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누적된 정보들은 여기저기 쉽게 결합될 수 있다. 기업들이 모은 정보에 주민등록번호가 있으니, 내부자나 제3자가 오용하거나 유출할 경우 그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마치 시한폭탄의 뇌관처럼 아슬아슬해 보인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각국의 노력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2006년 5월에 신원도용을 억제하기 위해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신원도용 방지를 위한 태스크 포스 위원회(President’s Identity Theft Task Force)’를 두기도 했다. 이어 2007년 4월에 31개 항목의 전략 계획을 발표했고, 2008년 12월에는 민간영역에서의 사회보장번호 사용에 대한 권고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사회보장번호 사용을 제한할 것’, ‘공연하게 표시하는 것(public display)과 인터넷으로 전송(transmission)하는 것을 제한할 것’, ‘국가적으로 사회보장번호에 대한 데이터 보호의 표준을 마련할 것’, ‘개인정보 유출이나 침해가 있을 경우의 통지(notification)를 강화하고, 소비자와 사업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각 ‘주’ 혹은 ‘연방’은  엄격하게 사회보장번호 사용을 제한하고, 사생활 보호를 위한 입법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아직도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에도 미국 111대 국회의 첫 법안은 사회보장번호를 보호하기 위한 입법이었다.




  


   摸?나라도 마찬가지다. 캐나다도 전국민 개인식별번호가 없다. 미국과 비슷하게 1964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사회보험번호(Social Insurance Number)가 있는데, 법률상으로 허용된 경우가 아니면 사회보험번호를 수집할 수 없게 강력한 보호를 하고 있다. 법률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경우는 매우 제한 적이다. 예를 들면, 캐나다 연금·노령보험·고용보험 가입 시, 소득세 과세 시, 이자가 발생하는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재향군인 혜택·학생대출·학생금융지원을 받을 때 등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도 전국민에게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국민식별번호가 없고, 의료부문에서는 의료보호카드번호(Medicare card number)가 조세와 관련해서는 납세번호(Tax File Number)가 있는데, 이들 식별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캐나다처럼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처량한 나의 주민번호여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적 추세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여 왔다.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은 ‘일일평균 이용자수가 10만 명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가 게시판을 설치·운영하려는 경우에는, 이용자가 본인임을 확인해야 하고, 그 정보는 6개월간 보관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한술 더 뜬다. 인터넷 언론사가 선거운동기간 중 당해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는 실명확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실명인증을 받은 자가 글을 게시한 경우 당해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실명인증’ 표시가 나타나도록 하고, 표시가 없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이 게시된 경우 지체 없이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본인 확인은 대개 너와 실명을 확인하여 이루어지므로, 게시판에 글 쓰려면 너를 제공해야 하고, 글을 쓴 후 네가 6개월간 보관된다는 것이다. 한편은 코미디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섬찍하다.




  


   법의 도입 취지는 무어라 말하고 있나 보자. 법률 개정문에 붙은 개정이유를 보면, ‘정보통신망의 특성상 익명성 등에 따라 발생하는 역기능 현상에 대한 예방책으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와 공공기관의 책임성을 확보·강화하기 위해 제한적인 본인확인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 제도는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다니게 하고, 신원확인을 위해서 경찰관이 주민등록증 제시 요구를 할 수 있게 했던 1970년의 주민등록법이 그대로 온라인에 적용된 것이다. 그런데 1970년의 주민등록법 개정문에 붙은 개정이유는 솔직하기라도 했다.




  


   ‘치안상 필요한 특별한 경우에는 신원이나 거주관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도록 함으로써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 색출하여 반공태세를 강화하고 행정상 주민등록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행정능률과 주민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것임.’




  


   오, 처량한 내 주민등록번호여! 각국이 사회보장번호를 사회복지영역에서 필수적인 경우에만 사용하도록 법률로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는 마당에, 너는 어찌하여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 암시장에서 수십 원짜리도 안되는 처량한 취급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해 받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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