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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일본 오카야마 지방, 30년차 노변호사의 고민_소라미 변호사

공감칼럼

일본 오카야마 지방, 30년차 노변호사의 고민

소라미_공감 변호사

  올해 3월, ‘공감’ 사무실에 멀리 일본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오카야마 퍼블릭 법률사무소 소장인 미즈타니 켄 변호사님이 방문 일행의 대장격이었다. 미즈타니 변호사님의 새하얀 머리와 환한 미소로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사무실에 잠시 봄기운이 돌았다. 74년도에 오카야마 지역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는 미즈타니 변호사님은 (74년이라면 내가 태어난 해이다.^^;;) 일본 만화 어디에선가 튀어 나온듯한 동그란 얼굴에 반짝이는 두 눈을 가진 귀여운 인상이었다. ‘오카야마’는 오사카에서 한시간정도 거리에 위치하는 인구 60만의 중소도시라고 한다. 남쪽으로는 바닷가를 접하고 있어 수산업이, 북쪽으로는 농업이, 중부에는 공업이 함께 발달된 복합형 도시라고 한다.

  미즈타니 변호사님과 함께 재일한국인인 민단 오카야마 지부 부단장님도 공감 사무실을 방문했다. 두 분의 인연은 수십 년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미즈타니 변호사님이 오카야마 지역의 재일한국인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 힘써 주셨기 때문이란다. 일본사회에서 재일 한국인의 위치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외국인 노동자의 위치와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흠, 그의 활동 이력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다는 예상이 든다. 한 시간 가까이 공감 소개를 마치고 나자 미즈타니 변호사님은 “정말 전액 무료로 법률지원을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재정을 마련하는지”, “활동 중 소송이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 되는지”, 질문을 쏟아내셨다. “전액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하고 있고, 재정은 100% 기부금으로 운영되며, 비영리 운영이 가능한 것은 ‘아름다운재단’이라는 비영리 순수 민간 모금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개인에 대한 법률 구조보다는 소수자·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인권단체·시민단체에 대한 법률 지원을 통해 더욱 파급력 있는 활동을 펼치고자 한다”는 대답을 하자 미즈타니 변호사님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본에는 ‘공감’같은 변호사 조직이 없다, ‘아름다운재단’과 같은 비영리 민간 모금단체가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다”며 놀라워하셨다. 3년차 변호사로 한국에서 막내 변호사급인 공감이 일본의 30년차 고수 변호사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었다는 사실에 흐뭇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러 지난 8월경 오카야마에서 공감으로 초대장이 날라 왔다. 오카야마 퍼블릭 법률사무소 2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여는데 1부 순서에서 한국의 공익법 활동과 공감의 활동을 소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공감도 국제적 네트워킹을 만들어가는구나’라는 뿌듯함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주최 측의 ‘여성’ 변호사 참여 요청과 동료들의 강권으로(^^;;) 내가 발제자로 오카야마 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되었다. 1부 순서 발제를 무사히 마치고, 2부 심포지엄이 진행되는 동안 방청석에 앉아 일본 공익 변호사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의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과소지역’(인구 2만 명 이하) 시민들에게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access권)을 높일 수 있을지, 도시형 공익 법률 사무소와 과소형 공익 법률사무소간 네트워크를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해야 많은 변호사들이 과소지역 파견을 자원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서였다. 심포지엄 진행 내내 잘 이해되지 않는 용어가 거듭 사용되었다. 바로 ‘히마와리 기금’이였다. 아마도 과소지역에 변호사가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금인 듯 했으나,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심포지엄이 끝나자마자 미즈타니 변호사님을 붙들고 질문을 퍼부어 그제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일본의 공익변호사들에게 크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았다.

  ‘히마와리’는 우리말로 ‘해바라기’라는 뜻으로 일본 전국 변호사회의 상징물로서 일본 변호사회 배지(badge)가 해바라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약 7년 전에 일본변호사회에서 조성한 ‘히마와리’기금은 인구 2만 명이 되지 않는 과소지역에 변호사를 파견하기 위해 조성된 기금이라고 한다. 매달 전국의 변호사들로부터 1800엔씩 걷어 모아진 돈으로 ‘과소’ 지역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500만 엔을 초기 사무실 설립 자금으로 무상 제공하고, 이후 연 수익금이 1,200만 엔이 되지 않을 때에는 부족액을 ‘히마와리 기금’에서 지원해서 최소 수익을 보장해주는 제도였다. 현재 이 기금으로 과소지역에 파견되어 변호사 활동을 하는 이가 총 64명이라고 한다. 이와 비교하였을 때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인구 2만 명을 기준으로 그 이하이면 ‘면’, 그 이상이면 ‘군’, 인구 5만 이상이면 ‘시’로 승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구 2만의 일본의 ‘과소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군’ 또는 ‘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우리나라의 군·면에서 개업했다는 변호사를 본적이 없다. 인구 2만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101개 ‘시군법원’ 소재지 중(2004년 기준 101개) 변호사 없는 곳이 81곳이라니1) 우리사회의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 수 있다.

  히로시마 지역의 과소지역에서 공익 법률사무소를 운영한다는 한 젊은 변호사는 공익 법률사무실을 찾는 가장 많은 이는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빌린 후 터무니없이 과다한 이자율과 폭력적인 변제 독촉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히로시마에서 지금 2년째 공익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자신이 일을 시작한 뒤로 그 지역의 자살률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모두들 그의 만담과 같은 말투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지만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이다. 법률 서비스 접근권이 한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의 공익변호사들은 어떻게 하면 재정 문제 고민 없이 맘껏 공익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한국의 공감을 참고하여. 한국의 공익 변호사인 나는 우리나라 법률 서비스 접근권의 실태가 어떠한지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일본 변호사회의 ‘히마와리 기금’을 참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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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바른 로스쿨법 제정을 위한 시민·인권·노동·법학계 비상대책위원회의 2006. 6. 22.자 보도자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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