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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활동후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산지역 간담회 후기

 

 



 


 


상상을, 현실 이곳에


 


그곳에서는…


길거리에서 팔짱 낀 남남, 여여 커플이 데이트를 하며 지나갑니다. 웨딩홀에선 더 이상 남녀만의 결혼만 이루어지지 않고 동성 간의 결혼도 법적으로 가능해집니다. 아니, 결혼식을 했냐 안했냐 자체는 무의미하지만요. 혼인 및 혈연관계로 구출된 현재의 친족 상속법은 모두 비혼가족과 가족형 공동체를 포괄하는 내용으로 개정되었습니다. 학벌서열은 사라져서 대학입시 체계와 의무교육 체계는 오늘날의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더 이상 입사원서에 성별, 출신지와 출신학교, 얼굴사진첨부 등이 허용되지 않으며, 이주노동자를 싸게 부리는 일이나 파견근로 및 비정규직 제도가 사라지고 노동유연성이란 개념이 없어져서, 현재와 같은 경제체제는 더 이상 굴러갈 수 없게 됩니다. 미디어는 시각장애, 청각장애와 기타 신체적 상태에 대한 배려 없이는 유통되기 힘듭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북한에서 건너왔다고 해서 무시와 모욕을 당하지 않습니다. 물론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미숙한 이로 무시당하지도 않고요. 노숙자는 척결 혹은 호혜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집니다.


[ 올바른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한 길라잡이, pp.4~5 ]


 


친구가 조용히 소책자를 덮으며 한숨 한 번 내쉬고는 말을 잇는다.


 


“이런 세상이…. 올 수 있는 걸까? 난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져서…. 그렇잖아, 정말 꿈같은 일이잖아. 상상만 하던….”


 


그 친구는, 혹은 당신은, 그 누군가는 상상한다. ‘꿈’같은 차별 없는 세상을. 그러나 ‘꿈’일 뿐일 것만 같은 세상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어찌 감히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 있냐고 나무란다. 피부색이 다른 그들이 어떻게 ‘우리’와 같이 살 수 있냐고. 동성애자들은 치료받아야할 ‘병든’ 사람들이 아니냐고. 그러나 상상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상상만으로 끝날 일도 아니다. 지금 여기 당신의 상상을 현실에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이 아닌 천차만별을 꿈꾼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부산에 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는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하는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실체법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2010년 12월에 발족한 연대체이다. 현재 이주/노동/장애/여성/성소수자 등 여러 영역에서 40여개의 개인 및 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캠페인 전개, 홍보영상 제작, 입법 청원 등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각 지역, 단체로부터의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주지역간담회가 개최되었고, 지난 3월 24일에는 제정연대의 박석진 활동가(인권운동사랑방), 이하연 활동가(인권운동사랑방), 타리 활동가(진보신당), 장서연 변호사(공익변호사그룹 공감)와 함께 부산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1 차별금지법의 취지와 필요성, 법안 해설


 


부산지역간담회는 부산지방변호사회 10층 회의실을 빌려 진행되었다. 부산의 따뜻한 날씨에 취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정된 시각보다 훨씬 이른 시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주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많은 지역단체, 활동가 분들이 이미 간담회를 준비하고 계셨다.


 


간담회는 2시부터 이하연 활동가의 사회와 함께 장준동 변호사(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장준동 변호사는 타인과의 차이에 무감할 때 차별이 발생하기 때문에 배려의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렇게 되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으며, 이런 상황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가 이를 위해 맡을 역할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꺼이 맡겠다는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며 간담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는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뒤이어 박석진 활동가가 차별금지법 취지와 필요성을, 장서연 변호사가 차별금지법안을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석진 활동가는 2007년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 7채 차별사유가 삭제되었던 ‘누더기 차별금지법안’의 발의로부터 시작해 현재의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서 차별금지법과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발언하였다. 한국 사회에서 눈에 드러나지 않았던 차별 사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한편, 직접차별뿐만 아니라 간접차별, 더 나아가 괴롭힘까지 차별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복합차별이라는 다소 생소했던 개념을 고민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 담아야할 내용이자 제정운동이 나아가야할 방향임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제정운동의 목적이 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차별 경험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에 있음을 강조했다. 뒤이어 장서연 변호사가 차별금지법안이 현재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괴롭힘: 차별은 단순히 어떠한 권리가 차단당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이익의 분배에서 배제된 상태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어떠한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맥락과 경험에 따라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모욕감을 느끼는 것도 차별의 주요한 내용을 구성한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차별이 아니더라도 모욕감, 수치심, 굴욕감등을 느끼고 그것이 사회적 편견에 기반하여 발생했다면 차별로 인식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복합차별: 실제로 차별은 단일한 사유로 인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적으로 차별이 발생했을 때 이를 단지 차별사유의 합으로만 파악하거나 하나의 사유로 환원시키려한다면 현실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이란 학력을 가진 장애여성이 취업과정에서 차별을 받았을 때,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법만으로는 이 여성이 가진 복합적인 차별 경험을 드러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2 차별금지법의 경험


 


차별금지법의 경험을 공유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열린 네트워크의 제청란 활동가, 부산여성회 평등의전화 고용평등상담실 박경득 소장이 각각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과 여성차별금지법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 발제했다. 이러한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경험은 앞으로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었다.


 


먼저 제청란 활동가는 장차법이 기존의 장애관련법들이 가진 한계를 보완하고 장애인의 삶의 전 영역과 전 생애에 걸쳐서 나타나는 차별을 종합적으로 제기하고 금지할 수 있다는 점, 장애인권운동의 결산으로서 제정운동과정에서 장애와 비장애, 당사자와 전문가의 벽을 뛰어넘은 폭넓은 연대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차별금지법 또한 폭넓게 다양한 층위에서 일어나는 차별을 담아야할 것이라는 점과 제정운동의 목표를 법의 국회 통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연대 네크워크의 구축과 공유에 두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장차법의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장차법 시행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장애차별 진정사건이 크게 늘어 장애인 차별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점을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장차법의 한계 및 보완점도 제시되었는데, 간접차별이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문화된 선언적 조항에 그치고 있다는 점, 권리구제가 까다롭고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한 제언이 이어졌는데 제한적 시정명령권을 인정하고 단체소송의 형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제안과 함께, 차별금지법 도입으로 인해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약화되지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 다음으로 박경득 소장은 그동안 성평등관련법으로 제정되었던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기본법, 남녀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특히 현재는 폐지된 남녀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발표가 이뤄졌는데 남녀차별금지법의 성과로서 입증책임을 전환하여 차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 둔 점을 꼽은 한 편 한계로서 소송지원제가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실효성이 적었다는 점,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3 사례발표


 


부산경남지역의 사회적 소수자들의 차별 사례 발표는 실제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순서였다. 먼저 어울림다문화가정센터의 김나현 님이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차별에 대해 말씀을 주셨다. 결혼이주여성은 2년간 국적을 취득할 수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체류자격으로 인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취업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현실을 실제 피해사례와 함께 이야기해주셨다. 또한 남편에 대한 정보는 일체 숨긴 해 여성을 상품처럼 사고 파는 결혼알선업체게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두 번째로 민주노총의 천연옥 님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차별에 대해 발제했는데 특히 현재 시행되고 있는 차별시정제도의 불합리성에 초점을 맞췄다. 차별시정제도는 사용자와 고용자가 같을 때, 동일한 업무에 대해서 당사자 개인만이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많은 근로자를 배제하고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보험 모집인 등 특수고용자의 노동기본권이 부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법으로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고, 이에 대해 차별금지법의 ‘근로자’에 대한 정의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드러내 주셨다. 민주노총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참여하고 있지 않았는데 고용형태에 의한 차별과 관련하여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힘이 되는 말씀이 이어졌다.


 


세 번째로 데니게라 님이 이주노동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데니게라 님은 한국에서 16년 째 거주하고 계셨는데, 그 동안 이주노동자로서 겪었던 차별 경험을 전해주셨다. 휴일에도 일할 것을 강요당하거나 폭언, 폭행을 당했던 이야기들…. 그동안 인터넷 기사나 사례집을 통해 어느 정도 들어왔던 이야기였지만 실제 차별을 겪었던 분의 입에서 발화될 때 나오는 무게는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특히 가슴이 무겁게 느껴졌던 것은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기존의 법 제도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오히려 직?간접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4 질의응답 및 토론


 


마지막으로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에 김광모 의원(진보신당)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노력에 대한 발제가 있었고 질의응답 밑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 시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및 제정운동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나왔다. 먼저 차별금지법이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보다 다양한 사례를 많이 수집해서 법안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다. 제정연대에서도 계속 고민해오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앞으로도 간담회 등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제정연대의 답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제기되었던 의견 중 하나는 차별금지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일반법이 제정됨으로써 기존에 있었던 개별사유에 대한 차별금지법이 약화되는 것은 아닌지, 차별 사유에 대한 각각의 단체들 사이에 입장 차이가 존재할 텐데 충분히 소통이 되고 그 내용이 반영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였다. 제정연대에서는 오히려 통합적인 차별금지법제정을 통해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복합차별 등을 다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부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을 공유하고 조율해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차별금지법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꾸준한 소통이 이뤄질 것이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이러한 소통이 지금까지는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이번 부산지역간담회 같은 지역단체와의 교류가 자주 마련되어야할 것으로 보였다.


 


한편 제정연대만을 중심으로 질의 및 응답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참석자 간의 의미 있는 대화도 오갔다. 장차법의 경험에 대해 발제했던 제청란 활동가에게 장차법 시행 이후 진정건수가 크게 늘었는데, 진정 이후 실제로 어떻게 구제가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질문이 있었고 이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졌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를 조사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연되어 질의응답 및 토론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못했던 점이 아쉬웠다.


 


차별이 아닌 천차만별을 꿈꾸는 당신과 함께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이하연 활동가가 차별사례 수집과 입법청원운동에 참석했던 모든 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리며 부산지역간담회는 마무리되었다. 이번 부산지역간담회를 통해 여러 다양한 지역 단체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앞으로 제정운동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 활동의 접점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차별금지법의 경험이나 차별현실에 대한 사례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값진 경험이 되었다. 한편 질의응답 및 토론시간에 제기되었던 내용을 통해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의 목적이 제정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각각의 개인/단체가 서로의 감성을 공유하고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것에도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김광모 의원의 고백 아닌 고백이 생각났다. 스스로를 늘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자료집의 차별사유들을 살펴보니 차별이 결코 우리의 삶에서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때로는 차별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때로는 차별의 가해자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차별’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색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불쌍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일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을 조금만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면 차별은 결코 그런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 그렇기에 차별이 아닌 천차만별을 꿈꾸는 당신과 함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활동은 계속된다. 쭈욱-.


 


글 : 이수정(13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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