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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여전히’없다- 김덕진

공감칼럼

인권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여전히” 없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남성 교도관에 의해 서울구치소에서 성추행을 당한 뒤 자살을 기도해 혼수상태에 빠졌던 여성 수용자가 마침내 숨지고 말았다. 언론을 통해 다 알려진 사실이기에 사건의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권침해자’에서 ‘인권옹호자’로 나서겠다는 국가공권력의 안일한 ‘인권정책’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짚어봐야 한다.

과거 전국 수십 개의 보안분실과 수천 명의 보안수사대로 국민들을 억압했고, 백골단으로 대표되는 강경 진압과 남영동 대공분실로 대변되는 고문과 조작으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던 경찰이 “인권경찰”이 되겠다며, 비전 선포식을 한 것이 2005년 10월초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달인 11월 중순 농민집회 도중 경찰의 방패에 맞아 두 명의 농민이 숨지는 가슴아픈 일이 벌어졌다.

국방부는 2005년 수 차례 사병들의 인권과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특히 2005년 8월 “군 의무발전계획”이라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하며, 사병들의 건강을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 후로 두 달여 후 노충국씨와 김웅민씨가 군복무 중 발병한 암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한번 받지 못한 채 사망했고, 진료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수십 건의 유사사례가 고발되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모든 부모들을 통곡하게 하는 복무 중 질병으로 인한 사망사건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법무부는 2005년 12월 ‘2006년 법무부인권비전’이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인권과를 인권국으로 승격시키고 인권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두달 후 서울구치소에서 12명의 여성수용자가 남성교도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그중 한 명이 자살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아무런 감시나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때로는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 때로는 조직의 실적을 위해, 공권력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던 기관들이 인권이란 말을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조직의 수장과 몇몇 간부진들이 바뀌었다고, 자신들 스스로 ‘인권기관’이 되었다고 선언하며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을 보는 일은 참으로 기막히다. 위에 나열한 사건들은 그 단편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권을 지키는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먼저 선행돼야 할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 그저 선언하고 그것을 홍보하는 일에만 열을 올리는 것으로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각인해야한다.

인권활동을 하면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들을 조사할 때 가장 화나는 일은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 그 일을 처리하는 기관들의 자세이다. 자신들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책임을 지려는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일단 일이 생기면, 그 일을 감추고 축소하기에 급급하다. 그 다음 그 원인을 밖으로 돌리고, 자신들은 책임을 다했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러다가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진상이 알려지고, 여론의 비난을 받기 시작하면,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발표한다. 조사 결과는 항상 일선의 직원들에게만 중징계가 내려지고, 정작 가장 큰 책임을 물어야할 간부들은 잠시 직위해제가 되었다가 복귀되는 식으로 처리된다. 발표되는 대책들 속에 정작 인권옹호를 위해 필요한 꾸준하고 체계적인 인권교육이나 공권력에 대한 투명한 감시나 평가제도 같은 것들은 늘 빠져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모르거나, 해결 의지가 없거나 하지 않고서는 모든 국가기관들이 이렇게 시행착오를 오랫동안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늘 사람들끼리 부딪혀야 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군인과 경찰, 교도관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귄위’는 스스로 세우고 싶다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부여해 줄 때 생겨나는 것이다. 예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공권력이 땅에 떨어졌다”는 하소연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 한번이라도 진정 변화하려고 노력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흔히 말하는 “공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담장을 허물고, 대문을 활짝 열라고 말해주고 싶다. 국가기관의 담장이 높아질수록 국민들의 의혹과 불신만 쌓여가고, 빗장을 단단히 채울수록 내부는 더 썩어가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은 없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 자꾸 포장하려고, 거짓말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하지말고, 지금의 수준과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국민들에게 손을 내밀어야한다. 실추된 명예와 권위를 찾기 위해 국민과 함께 노력하겠으니 도와달라고 호소해야한다. 정말 그 길밖에 없음을 이젠 알아야한다.

“요즘 군대 좋아졌다.”나 “요즘 감옥은 살만하다더라.”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난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리 좋아져도 군대고, 살만해도 감옥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하지만, 자기 땅에서 50년간 농사지어온 평택의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도로나 학교도 아닌 미군기지를 세운다고 하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겨나서 공권력의 인권침해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면서 오히려 공무원의 인권이 없어졌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경찰의 방패에 시위대가 맞아죽고, 여성 수용자가 교도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끊는 일이, 수십년 전의 일이 아니라, 바로 엊그제의 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인권’이란 고귀하고 아름다운 말이 공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왜곡되고 더렵혀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여전히 공권력은 국민 앞에 군림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무섭고 불편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에 맞서 싸우는 인권운동은, 그들이 진실로 반성하고, 고백하며 변화하는 모습이 확인될 때까지 머뭇거릴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인권운동의 소명과 책임은 여전히 무겁다. 국민의 인권을 진정으로 보호하려는 공권력은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을 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발걸음은 늘 무겁다.

※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인간이 존엄성과 보편적 진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입니다. 매주 월요일, 인권법률상담을 실시하여 법률적 어려움에 대한 상담과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인권침해 사안에 대한 조사, 대책활동을 전개합니다. 인권위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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