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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유난히 예민한 사회적 유전자를 가진 제자에게- 정경애 기부자님

라미야.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어 그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널 이렇게 불러도 되는 건지… 근데 ‘소라미 변호사님’ 하고 부르면 왠지 멀게 느껴져, 내 마음에 더 편하게 느껴지는 대로 이렇게 부른다.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에 기부하게 된 사연을 말해달라는 메일을 받고, 첨엔 좀 당황했어.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일들이나 취지에 대해 대강만 알고 있었지 자세하게 아는 건 아니어서, ‘내가 뭘 쓸 수 있는 자격이나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거든. 그러다가 뭘 알고 쓰려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내 얘기 하자 생각했지.

2004년인가 2005년 무렵 봄에 한겨레신문을 뒤적거리다 「공감」 변호사님들의 기사를 보게 되었어. 근데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에 낯익은 얼굴이 있는 거야. 자세히 보니 라미 너였지. 처음엔 너무 놀라서 심장에 화살 맞은 거 같았어. 아프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이 어쩌려고 이 길에 들어섰나 하는 등등의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거야.

라미 네 고등학교 시절, 내가 담임을 안 해서 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어.

그렇지만 영어수업 배당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내 학생들을 느끼고 겪어보고 마음에 담아 볼 수 있을 만큼은 되었지.

그 중에서도 라미 네가 스치듯 했던 한 마디는 내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어. 아마 넌 잊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네 고3 시절의 하루하루는 절대 쉽지 않았었지. 날마다 받아야 하는 수업 10시간을 포함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교실에서 공부하고, 그리고도 기숙사에 돌아가 또 새벽까지 공부, 공부에 시달리던 시절이었지. (물론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어.) 그런데도 넌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한결같이 변함없는 모습이었어. 그래서 어느 날 지치지 않느냐 물었던가 뭐 그랬는데, 네가 “선생님, 그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때가 가장 편해요.”라고 하더구나.

그 말은 공부가 재미있다는 뜻도,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가 더 쉽거나 잘 된다는 뜻도 아니었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을 피하면 잠시 좋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회피할수록 마음의 고통과 부담이 더 크다는 말로 들렸어.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교과과정을 밟는 모든 학생들의 고뇌와 고통을 요약하는 말이기도 했지. 그래서 라미야, 내게는 그 말이 상당히 가슴 아프게 들렸었어. 그런데 「공감」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보는 순간 고등학교 시절의 네 그 말이 왜 맨 먼저 떠올랐을까?

한비야는 “사회적 유전자”라는 말을 하더구나. 지금껏 힘들여 닦고 쌓아온 전문 지식과 경험을, 혼자서 혹은 가족끼리만 행복하고 아늑한 삶을 구하는 방편으로 삼지 않고, 「공감」을 택하도록 너를 이끈 것은 네 속에 발달된 유난히 예민한 사회적 유전자 때문이지 않았을까? 흔히 그렇듯이 너도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그걸로 끝날 수도 있었을 거야. 피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넌 굳이 그 아픔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고 말았지.

「공감」에 관한 기사를 읽고 ‘충격’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그래도 이 속에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해요.”라고 말하는 나직하고 촉촉한 네 음성이 들리는 것만 같더라.

네가 가는 이 길, 어쩌면 고3 때의 입시 공부나 사법고시 준비, 또는 연수원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힘이 드는 건 아닌지 하는 추측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길을 택한 네가 한없이 자랑스럽고 마음이 가득 차면서도, 한켠으로는 아릿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어.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길’을 택한 너에게, 또는 너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내가 힘을 보탤 길은 약간의 후원금을 나누는 길 밖에 없었지. 사실 금전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품이 덜 드는 방식이 아니겠니? 그래서 부끄럽기도 했지.

그렇더라도 네 뜻을 맞들고 응원하는 사람 중에 나도 있다는 걸 네가 안다면 어떤 순간 조금이라도 힘이 나지 않을라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네가 「공감」에서 일하게 된 연유를 잘은 모르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필이 꽂히는 일’ 앞에서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정면 돌파를 선택한 너에게 조금이나마 덜 부끄럽고 싶기도 했고.

라미야, ‘선생’이란 게 얼마나 무책임하고 부도덕하게 비추어지고 있는 시절이니. 사실 나 역시 교사라고 밝히기 민망할 때가 많아. 그래서 내가 맡았던 학생들 중 누군가가 세상의 그늘진 곳만을 뛰어다니며 그곳을 따뜻이 밝히는 일에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높은 데 올라가서 막 외치고 싶을 만큼 벅찬 일이란다.

내 마음속의 자랑 라미야, 네가 이 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책상을 떠나 있는 고3처럼 네 마음이 더 무겁고 힘들었을까? 아무쪼록 네가 택한 삶이 널 행복하고 만족하고 기쁘게 해 주면 좋겠다. 무진장 지치다가도 벌떡 일어나 다시 가게 하는 힘을 주는 달고 깊은 샘물이 그 길 어딘가에서 항상 퐁퐁 솟아나면 좋겠다.

돌아보지 않는 삶, 못 박아 놓은 삶은 죽은 거라며? 그러니 끝으로 하고픈 말은, 나의 어떤 말에도, 또는 다른 누구의 말이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말고 언제든지 너를 기쁘고 충만케 하는 또 다른 길이 열린다면 주저 없이 그 길을 가면 좋겠다! 참, 내가 딴 사람들한테 “뭘 하라”고 권하지 못하는 편이라 지금까진 나만 후원했는데, 금년엔 최소한 두 사람한테는 막 열 내면서 ‘전도’해야겠구나.

감기 조심하고 항상 건강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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