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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의 하루: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황필규 변호사

이곳 영국 University of Oxford의 COMPAS(the Centre on Migration, Policy and Society)에 Visiting Academic으로 적을 둔 지도 벌써 네 달이 다되어간다. 7개월 남짓한 ‘파견근무’기간의 반 이상이 벌써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그 동안 이곳 생활에서 나는 이중, 삼중의 고충에 시달렸다. 우선 이곳은 인권을 논하는 곳이 아니다.

이 연구소는 정부지원의 사회과학연구 지원기관인 the 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의 기금으로 설립, 운영되고 있고 비록 독립적인 연구를 수행한다고는 하지만 영국정부의 이주정책을 연구하는 것을 그 기본 임무로 하고 있고 이는 이곳 학풍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본 연구소는 대학 내 조직상으로는 인류학과 소속으로 되어 있고, 실제 연구원들도 대부분이 인류학자들이다. 사회학자는 소수이며 경제학자는 한명 뿐이다. 법적 접근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비록 내가 대학원에서 계속 학업을 이어오기는 했지만 나는 학자라기보다는 실무가인데 이론적인 접근과 구체적인 이주집단에 대한 현장연구를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토론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

각종 세미나나 연구의 주제가 주로 유럽과 아프리카, 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아시아의 문제는 지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연구소의 장래 계획을 논의하는 전체 연구원 집단토론의 자리에서 나는 본 연구소에 대해 “유럽적이다”라는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분란이 일기도 했다.

미등록 이주자나 합법화에 대한 본 연구소의 일부 연구결과를 보고 섣불리 이 연구소를 택했으니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고 이러한 상황이 나의 원래 계획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5월 7일, 이곳 영국에서는 노동절 공휴일이다. 한 달 전쯤부터 이날 런던에서 대규모 이주자 집회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벼르고 있었다. 마침 같은 연구소에 Research Officer로 있는 Lourdes Gordolan이 이 집회에 간다고 하길래 함께 버스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미국과 필리핀 이중국적자인 Lourdes는 미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필리핀에서 나오고 NGO에서 활동을 하다가 Oxford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치고 이곳에 눌러앉은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솔직히 사무실에서는 다른 연구원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편인데 모처럼만에 런던을 오가면서 거의 세 시간 동안 온갖 수다를 다 떠니 느낌이 새로웠다.


런던 Westminster에 도착해보니 적어도 수천명의 이주자와 이주자지원단체 관계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대규모 집회였다. 한참 옆에서 행진을 지켜보다가 Lourdes가 관여하고 있는 가사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KALAYAAN이라는 단체의 대형깃발 뒤에서 행진에 참여했다. 두 달 전쯤에 이 단체의 캠페인에 참여하여 참가자 접수와 이주자들의 편지쓰기를 도우며 자원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집회는 London Citizens라는 대규모 NGO연합체가 “Strangers into Citizens”라는 주제 하에 미등록 이주자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내용으로 조직하였는데 4년 이상의 거주요건 등 개별적인 조건이 명시된 구체적인 합법화 방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하원의원 40명의 서명도 받았다고 했다. 곳곳에서 선별적인 합법화가 아닌 전면합법화를 주장하는 “No Borders”, “Campaign to Close Campsfield” 등의 단체의 유인물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한국의 상황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행진을 한 후 이슬람교, 기독교 등의 종교지도자, NGO대표, 이주자와 난민, 하원의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는 영국 수도 런던의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그것도 대로의 한 쪽 방향을 완전히 장악하며 수 천명이 3시간이 넘도록 행진까지 했던 대규모집회였음에도 눈에 띠는 경찰은 아무리 많게 보아도 수 십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적어도 수천명의 경찰이 행진과 집회장소를 이중삼중으로 에워 쌓았을 것이다. 도심한복판에서 “교통대란”이 있었다는 언론의 보도와 함께 했을 것이다.

집회를 가능하면 막아 통제하고, 인의 장벽으로 집회공간과 일반시민을 철저하게 분리시키고, “잠재적 폭동”을 완전히 진압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장비를 총동원하는 한국경찰과 집회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건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경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영국경찰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또 무엇을 의미하는가(“선진국에서 배우자”식의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오늘 있었던 구체적인 상황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운 영국정부의 인종주의적, 무차별적 인권탄압의 수위는 미국과 쌍벽을 이룬다.).

일에 쫓기지 않고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이곳 영국생활에서 가장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일 수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계속 고민해 온 생각이기는 하지만 과연 나에게, 그리고 한국의 대다수 법률가들에게 “법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주어진 법, 혹은 주장되는 법에 대한 논리는 있으되 과연 법이 법이게끔 하는 이치나 철학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판례의 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형식논리로서의 법리나 사회적으로 왜곡되게 구성되고 구조화된 “상식”은 법의 이치가 될 수 없지 않을까.


최근 한국의 미등록이주자 관련 소송들에서 일관되게 부정적인 판결을 내린 한 법관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는 아마도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에 입각해 “불법”체류자의 “불법”에 법이 조력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고, “국민전체의 봉사자로서의 공무원” 정신에 입각해 이들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인권”이 무엇인지, “국익”이 무엇인지 다 잘 알고 있다고 과연 이야기할 수 있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주가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었고 도대체 언제까지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수 있겠는가. 헌법에는 분명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소위 권위 있는 헌법학자들은 이를 “상호주의”라고 간명(?)하게 설명하고, 외국인의 인권이 문제된 소송에서 헌법 규정에 근거하여 적용하여야 할 국제법이나 조약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법관이 거의 없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법을 접근하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철학적 토대는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그 철학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평등권의 근거는 무엇인가, 주권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상당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등등 법대 학부 시험 단문 주제 같은 이러한 질문들이 최근의 나의 화두다. 아니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할 나의 화두다. 본업에 복귀할 즈음 그 동안의 훈고학적 혹은 주석학적 접근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래보면서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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