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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아스팔트 농사꾼- 박옥순

지난해에 나는 일명 ‘아스팔트 농사꾼’이었다. 올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365일 중에 적어도 50여일 넘게 아스팔트 위에 있었던 것 같다.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구호에 맞춰 팔뚝질을 하고, 연사들의 소중한 발언을 듣고 공감하고, 민중가수들의 공연을 함께 즐기며, 이름 없는 집회 대중으로, 전투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심지어는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으로, TV에 잠깐 비쳐져 가족들의 걱정도 들어야 했다.

농부가 하늘의 뜻을 아우르고, 땅 심을 토대로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농사를 짓는다. 그렇듯이 대중 집회는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뜻을 받아, 땅 심, 즉 대중의 마음을 토대로 원하는 목표를 향한 하나의 노동을 한다는 일명 ‘아스팔트 농사’라 한다.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하기 까지, 농사짓기에는 그에 맞는 도구와 여러 기술이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스팔트 농사에도 사회자, 발언자, 보도자료, 음향, 현수막 등 필요한 도구와 사람이 있어야 하고, 각기 전문적인 역량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농사짓기 자체도 중요하지만 농사는 실제로 양질의 것을 많이 수확하는 것을 목표로 하듯이, 아스팔트 농사도 각기 동등한 삶의 주체로 서는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생산 활동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참여는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나는 소수자든,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여성이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는, 인권의 주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들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생산 활동, 즉 아스팔트 농사에 참여하는 것을 내 삶의 소중한 것으로 선택했다. 가급적이면 그 생산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애를 쓰는 편이다.

그런데 요즘 경험이 많다는 이유인지, ‘사무국장’이라는 이유인지, 집회에 가면 연단에 서서 발언을 하라는 제안을 해 와,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그럴 때는 잠시라도 멀리 도망치거나, 크게 손사래를 치며 거부의 몸짓을 보낸다. 그러나 거부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작년에 있었던 수많은 집회 중에 서너 번의 투쟁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다. 더운 여름이건 추운 겨울이건, 투쟁발언을 한 후 대중석으로 내려온 나는 온몸에 돋아난 땀을 닦아내고 말리느라 고생을 해야 한다. 그만큼 에너지를 쓴 것이라.

연단에 오르면 수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생각했던 말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다. 하고픈 말들이 입술 안에서만 맴돌아 아주 죽을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생각이 들고, 무지 어색하다. 이 어색함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내게는 집회 연단은 ‘지옥’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중석은 ‘천국’이다. 어떤 사람은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자꾸 해봐야 한다고 위로해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으니, 앞에 나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투쟁해야 하는가를 알려야 할 책무가 있다며 위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여전히 집회 연단에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어설픈’ 아스팔트 농사꾼이다. 그럼에도 집회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여하려 한다. 장애인 인권은 싸우지 않으면 결코 쟁취할 수 없음을 그동안의 활동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껴왔다. 몇 차례에 걸친 공문, 공개질의서, 면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장애인 인권 운동은 정책 결정자를 비롯한 소위 권력을 가진 자들의 시선조차 잡지 못한 채, 예산 문제 또는 다른 사안에 묻혀 버리기 일쑤였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기본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일백 개를 가지고도 단 한 개를 내놓지 않으려는 권력의 속성은 항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경총이 “기업부담 또는 경영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찬성하는 것은 경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겠는가? 솔직하다 못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렇기에 내가 활동하는 장애계는 나보다도 두세 배가 넘게 일 년 내내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집회에 오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중증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뜨거운 햇살이나 매서운 추위를 결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하철 철로를 점거하고, 버스 앞에서 몸을 뉘이고, 큰 도로를 점거하고,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화형식을 하는 등 목숨을 담보로 싸우고 있다. 불법 폭력 시위라며 한사코 집회 신고를 거부하고,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경찰의 무소불위의 힘은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연행해라. 그리고 구속해라.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싸움은 다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리는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함이니, 차라리 처절하기까지 한 것이다.

당분간 장애계의 이런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최소한 기본권을 모두 쟁취하는 그 날까지는 말이다. 나는 어설프지만, 아스팔트 농사꾼으로서 이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하고 싶다. 농부가 하늘의 뜻을 아우르며 땅 심을 헤아리듯, 나와 내 동지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가라는 하늘의 뜻을 아우르고, 땅 심, 장애인의 기본적인 마음을 토대로 하는 장애인 인권 투쟁을 향한 그 길에 멀고도 험하지만 끝까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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