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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하나] 있는 그대로의 귀한 생명, 지금 이 순간 사랑하세요 – 김지영

 
  나는 프리랜서 작가다. 기업체 사외내보에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한다. 매체의 성격상 주변에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을 주로 만나는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헌혈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청춘과 돈을 별보기에 몽땅 바친 별청년, 한평생 이발봉사에 바친 사랑의 가위손, 우리 회사 명물 등 밋밋한 일상에 특별한 빛깔과 무늬를 새긴 사람들이다. 마치 거리의 청바지처럼 같은 듯 제각각 다른 삶, 또 저마다 한 줌 철학과 진실로서 일상을 일궈가는 삶의 주인공들을 보노라면 행복은 재산순도 나이순도 외모순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전국에 보석처럼 숨어서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분들을 만날 때면 그러한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최근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매해 11월이면 아산재단에서 아산상을 시상한다. 나는 그 수상자들을 만나 그들이 얼마의 기간 동안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는지 한평생 삶의 궤적을 좇는 작업을 삼년 째 진행하고 있다. 한 분 한 분의 감동실화에 입이 딱 벌어지고 눈물이 맺히고 고개가 절로 숙여지곤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몸이 불편한 아이를 키워낸 분들의 얘기는 두고두고 큰 울림을 남긴다.

올해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희아 씨의 어머니 우갑선 씨가 ‘효행가족상’을 받게 되어 만났다. 재작년에 ‘훌륭한 간호사’로서 어머니를 뵌 적이 있었으니, 공교롭게도 나는 희아 씨의 어머니만 두 번째 인터뷰를 하게 된 셈이다. 희아 씨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반면 그녀는 ‘그저 위대한 어머니’정도로만 짐작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위대함의 실체는 진정 산만큼 크고 바다만큼 깊다.

 
   
 
그녀는 전직 간호사 출신이다. 원래부터 간호사로서 돌보는 삶을 소망했고, 간호사가 된 뒤로도 몸이 더 온전치 못한 환자에게 손이 갔다는 천생 간호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불편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아 씨의 아빠도 군복무 중 불의의 사고로 척추장애가 생겨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난을 이겨내려는 환자의 의지에 감복해 그에게 먼저 청혼을 하고 가족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단행했다. 그리고 7년 만에 어렵사리 ‘희아’를 낳게 된 것이다. 무릎 아래가 없고 손가락이 네 개뿐인 1급 사지기형이었으나, 그녀에게는 ‘너무 예쁜 아기’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희아 씨의 아빠가 그녀에게 ‘너무 멋진 남자’였듯이 말이다.

한 사람을 대함에 있어, 즉 인권에 대해 이론과 실제의 넓디넓은 간극을 인정해야하는 못난 나로서는 너무 놀랍고 신기한 일이었다. 희아의 어머님께 바보 같은 질문을 여쭈고 말았다. 정말로 신체의 장애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말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제 경우 원래부터 사람의 겉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렇다. 모든 정신의 위대함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했나. 뭇사람들에게 제2의 피부처럼 달라붙어 있는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그녀는 자유로웠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외양에서 내면으로 향하라고 일러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서 저마다의 사람은 충분히 완전하고 아름다운 거라고. 내면의 깊이를 가늠해서 대상을 통찰하는 또 다른 길, 더 안전한 길을 제시해주었다. 그리고 순간을 사랑하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면 됩니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들이 불행한 것은 앞날을 미리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불행할 거라고 생각을 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거라고 여기기 때문에 지금부터 불행한 거죠. 지금 이 순간 사랑하세요.”
그녀는 늘 어려서부터 희아 씨를 꽃처럼 예쁘다고, 두 개의 손가락은 튤립 같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진심이다. 모든 엄마들이 자식에 대한 무한대의 애정이 샘솟듯이 말이다. 또한 효행가족상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희아 씨의 어머니가 무심결에 건넨 말은 그녀의 지극한 인권감수성의 한 경지를 말해준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자식사랑에 헌신한 것뿐인데 아무래도 우리 희아가 생김새가 조금 다르니 내가 더 특별해 보이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그녀는 언제나처럼 충만하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이금순 씨는 17년 간 금지옥엽 키워오던 아들을 잃고 상심에 빠져 지내다가 딸의 입양을 결정했다. 딸 부잣집에서 6째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핏덩이였다. 그런데 키우다보니 안타깝게도 정신지체와 자폐의 장애가 있음을 알게 됐다. 파양을 주장하는 남편과 생각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급기야는 별거와 이혼을 했고, 허드렛일을 해가며 이금순 씨는 딸 호복 씨를 잘 키워냈다. 그녀는 “딸이라고 버림받은 생명을 장애가 있다고 다시 버릴 수 없었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 때문에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요새는 같이 저녁 먹고 산책도 간다며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홀트아동복지에서 입양되기 전 까지 아이를 맡아 기르는 대리모인데, 모두가 기피하는 심한 중증장애아들만 맡아 키우던 어느 위대한 대리모도 기억에 남는다. 매일 아이를 업고 응급실을 달려갔고, 가래가 끓어 잠을 못자는 날이 부지기수고 아기의 등을 쓸며 밤을 지새우느라 손목 관절이 어긋나버렸지만 그녀는 십 수 년 그 길을 갔고 숱한 생명을 당신의 더운 가슴으로 품어왔다.

장애를 돌보는 엄마는 겉보기에 고난의 여정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물론 몸이 더 힘들고 외부의 시선을 등지고 살아야하며 생활 속 요소요소 불편함도 따른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감내한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두 달이나 일이년은 가능할지 모르나 한평생 헌신의 삶을 견인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생명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귀하다.” 또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고. 결국은 인간에 대한 진심어린 존엄성이다. 사람을 ‘정상인’의 잣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생명체로 바라보기다. 대부분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얻어도 이르기 어려운 것을 그녀들은 단숨에 그 정신의 높이에 이른 것이다. 또 마음이 하는 일을 낯빛이 닮아간다고 그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평안하다.

 
 
 
낙엽비가 곱게 내리는 창가에 앉아 생각한다. 사람을 지키는 힘은 무엇인가. 결국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흘리는 따뜻한 눈물과 생명을 품어 아는 더운 가슴이다. 여기저기 난파당한 생명이 기댈 한 치의 땅, 작은 무릎을 그녀들은 기꺼이 내어준 것이다.
 
※ 사진 참고
– 이희아 홈페이지 (http://www.heeah.com)
– 아산사회복지재단 홈페이지 (http://www.asanfoundation.or.kr)
 
  글쓴이 – 김지영 
  정   리 – 이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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