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감

[쉼표하나] 우리도 지켜야 할 조선학교, 우리학교_황의중

 

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보이질 않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60년이 지나서야 짙게 드리운 구름들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 땅, 일본 안에 있는 조선학교가.

조선학교는 60여 년 동안 계속 존재해 온 실체이다. 재일조선인들에게 가장 뚜렷한 업적이자 자랑이다. 과장하면 그들은 조선학교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살아왔다. 내 자식들만큼은, 우리 후손들만큼은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살아가라고. 이름과 말을 버리고, 민족을 부정하고 자신을 부정하라는, 비굴과 굴종과 동화를 요구하는 일본 땅에서, 먼저 우리말을 배우고, 민족문화를 몸에 익혀 조국과 민족을 가슴에 안고 ‘나’를 부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들(재일조선인)의 뿌리와 역사를 바로 알고, 나아가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들은 혼신을 기울였다.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은,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냈다. 전국에 그런 학교를 150여개(지금은 80개 정도)나 만들어 운영하였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그것도 60년간. 1세,2세,3세를 거쳐. 맨손에서 출발하여 교과서를 만들고, 교원을 양성하고, 커리큐럼을 만들었다. 60만의 재일조선인사회에 10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조선학교가 없었다면 재일조선인은 지금 모두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우리학교’는 ‘생명선’이자 ‘금자탑’이다.

따라서 조선학교는 세상의 흔한 학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혼과 생명이 들어 있는 학교이다. 조선학교는 늘 ‘역사’의 무게를 안고 있다. 일본 중심으로 전개된 근현대사의 모든 질곡들(식민지배, 조선멸시)이 학교를 누르고 있고, 그 위에 다시 조국분단의 질곡이 얹혀 있다. 그 무게를 온전히 안고 감당해 나왔기에 조선학교는 살아있다. 따라서 그 가치는 단순한 ‘학교’를 훨씬 뛰어 넘는다. ‘조선학교는 가치의 보고’이다. 재일조선인들 스스로 ‘기적’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동안의 지독한 무관심과 무지에서 벗어나 이제 한국사회가 조선학교와 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특히 아직도 살아 계신 몇 안 되는 1세분들은 그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 왔다.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 학교>는 다큐멘타리 관객 동원기록(3만 9천, 비상)을 일찌감치 깨고 지금 10만을 향하고 있다. SBS 스페셜의 박기홍PD가 제작 방영한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그린 2부작에 2천여 댓글이 폭주했고, 많은 이 땅의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조선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는가?”를 문의하고 있는 중이다.

 

보는 내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를 사랑하는 순진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
학생을 진심으로 아끼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서…
진정한 학교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학교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 동참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한국 국민들도 잊은 지 오래인 민족성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노력에 감사해서…

– SBS스페셜 <나는 가요 -제2조선초급학교의 여름> 감상문 중에서

솔직히 우리는 통일하면 우리나라가 가난해지고 힘들어져서 통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 아이들에 비해 나의 생각은 어리석었다.

– 2005년 청량고 2학년생 감상문 중에서

내 마음을 그토록 쳐댄 것은 ‘조선인학교를 몰랐다’도 ‘북한은 그동안 교육 원조를 해왔는데 우리는?’이라는 질문이 아닌 ‘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던 겁니다.

– <우리학교> 홈페이지 중에서

 

조선학교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가치로 다가온다. 재일조선인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우리학교’는 한국사회에 거울로 다가온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어느 것보다 부드럽고 강력하게.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역사를, 방향을 잃은 현 한국의 교육과 한국사회를, 그리고 정체성을 잃은 나의 모습을.
그러고 나서 조선학교는 우리에게 어떤 뿌듯함과 희망 그리고 가능성을 던져 주고 있다. 민족의 자존심을, 그리고 통일, 통합에 대한 희망과 힘을. 그리고 어떤 새로운 가능성까지도.
이 모든 것이 조선학교가 지닌 무한한 가치에서 비롯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그 조선학교가 위기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가 막 알기 시작했는데.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나, 역시나 일본(일본정부와 언론과 일반적 일본인)은 때를 놓치지 않고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2002년 9월의 납치인정 이후, 일본사회는 광기를 띠기 시작한다. 배타적 국수적 일본주의의 부활 과정에 총련과 조선학교는 벌거벗긴 채 희생양으로 던져진다. 2003년 12월, 일본의 대표 우익 이시하라가 지사인 도쿄도는 갑자기 태도를 일변,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소송을 걸어온다. 땅을 내놓고 나가라고. 2007년 3월, 오오사카현 경찰은 100여명의 수사요원을 동원, 시가조선초급학교를 압수 수색한다. 어느 누군가의 ‘차고지 허위 증명’을 입증하기 위해. 열거가 힘들다. 말 그대로 ‘만행’이 부활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60년간의 조선학교를,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하는데, 이를 공부하기 전에 조선학교를 지키는 일에 나서야 될지 모른다. 정리하자.

조선학교를 지키는 일, 이는 결국 우리의 아이들인 동포 자녀들을 ‘한 인간’으로 지켜 주는 기본인권 수호운동이다. 또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재일조선인들의 정의에 화답하는 일이다. 일본과의 역사나 민족문제를 떠나서도. 그리고 조선학교를 지키는 일은 이 답답한 한국사회를 시원하게 뚫고 넉넉하게 넓히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700만 재외동포문제에 진지하게 다가서는 관문이기도 하며, 통일로 나가는 걸음이기도 하다. 그러고도 조선학교를 지키는 일은 ‘조선학교가 살아 있는 일본’을 살리는 일이다. 어쩌면 일본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모금운동은 그 일에 다가서는 우리사회의 첫걸음이자 첫 시도이다.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못 미치는 14억원(에다가와 조선학교의 토지매입자금), 한국사회가 어떻게 대할지?
뜻있는 분들의 손길 하나, 발 한 걸음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 잊을 뻔했다. 남북정부가 의견교환이라도 하자.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

2003년 12월, 도쿄도 제소. 도쿄도 소유인 운동장과 건물 일부를 양도하고, 그 동안의 체불된 사용료를 내라고. 형식상 단순한 소유권 다툼이나 내용은 역사적 경위를 무시하고 민족교육권을 부정, 조선학교를 없애려는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일본양심세력과 공동투쟁을 벌임. 한국사회도 <에다가와 조선학교문제 대책회의>를 결성 지원함.

2007년 3월, 토지를 시가의 10분의 1 수준인 1억7천엔(14억원)에 학교가 매입하는 것으로 합의함. 형식상 양자간의 합의이나 실질적으로 도쿄도의 패소.

5월, 박원순 변호사, 김용택 시인, 수경 스님, 이선종 원불교서울교구장, 오충일 목사, 정희성 시인, 정종훈 신부를 대표단으로 하여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을 결성, 모금운동을 전개 중임.
6월 15일 현재 8천3백만원 모금.

모금계좌 신한은행 330-03-004075 (사)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www.edagawa.net

 
※ 이 글은 아름다운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콩반쪽』7월호에 먼저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_편집자 주

공감지기

연관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