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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속이 꽉 찬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작은 보탬- 서범욱 기부자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에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는데,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제가 ‘기부자의 편지’를 쓸 자격이 되는지 의문이 듭니다. 2년여의 기간 동안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기금에 기부를 해 왔다고는 하나, 액수로 치자면 얼마 되지 않는, 정말 마음만을 나누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큼은 다른 기부자분들 못지않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부끄러운 글을 써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공감과 연을 맺다

제가 공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5년 초 우연히 신문에 난 기사를 읽으면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진로에 대한 수많은 고민 끝에 소외된 계층에 대한 법률지원 및 무료변론활동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때까지만 해도 공익법 활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이 전무하여서, 구체적인 꿈을 그리는 데 있어 마치 스케치된 그림에 어떤 색을 칠해야 될지 몰라 망설이는 어린아이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에게 한 줄기 빛을 보여준 것이 바로 공감이었습니다. 기사로 접한 공감의 변호사님들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법조인상에 가장 가까운 활동을 하고 계셨고, 그 날 이후 공감은 저의 준거가 되었습니다.

공감과의 우연한 첫 만남 이후, 저는 공감의 행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3월 공감의 제1기 인턴모집 공고를 보고 기회가 왔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러모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 결과,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다달이 기부하면 공감의 활동에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날 수박 한 덩이 사 먹을 정도도 되지 않는 액수였지만, 공감은 저를 무척이나 반겨주셨습니다. 직접 전화까지 하셔서 감사의 말씀을 전하신 김민경 전(前) 간사님, 바쁘신 와중에도 연말마다 친필로 카드를 써서 보내주신 황필규, 정정훈 변호사님의 따뜻한 마음을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공감의 가족이 되다

공감의 가족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주제넘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2007년 공감의 제5기 인턴 선발 전형에 합격하면서 공감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1기 때부터 2년간을 기다려온 터라 합격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만, 1000번이 넘는 인턴 모집 공고문의 조회수를 보고는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면접 때도 그다지 말을 잘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날아든 합격 통보. 드디어 공감의 발걸음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인턴으로 활동하면서 공감의 활동에 도움이 된 것보다는 오히려 제가 배운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동학대예방 법률매뉴얼 작성 작업을 도와드리면서는 그 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동복지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노숙인에 대한 공권력적 폭행에 대한 조사를 나가서는 노숙인분들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를 통해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노숙인분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깨뜨릴 수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촌 실태조사를 나가서는 말로만 듣던 비닐하우스촌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으며, 그 곳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감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의 인턴 활동을 통해서 제가 보고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의 열정입니다. 회의실조차 따로 없는 비좁은 사무실에서 더위와 싸워가며 공익소송을 준비하시고, 산더미같이 쌓인 소송서류들을 검토하시느라 밤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시며, 소외된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직접 현장에 나가 발로 뛰시는 모습들은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열정이 세상의 어두운 곳을 하나하나 비추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공감의 공이 공(空)이 아닌 공(共)임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감의 활동이 그야말로 속이 꽉 찬 ‘세상에 이바지 하는 일’이라는 것만큼 저의 얼마 안 되는 기부를 의미 있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요? 공감의 이러한 열정과 활동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열정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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