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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페미니즘의 도전』

[책 권하는 손-서평]

“세상을 바라보는 이물감은 당연한 것”- 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 서문에서 앎은 아픈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물감은 당연한 것이며, 이제까지 삶의 어떤 폭력에 전혀 무지해 왔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등 때문에 삶의 새로운 기술 방식에 눈뜨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아픔이 야기되는 원인에는 기존의 방식에 익숙해 왔고 따라서 사회 전체를 총괄하는 부당한 논리에 은연중 편승해온 자로서의 자기방어심리와 발끈함도 포함될 것이다.

새로운 삶의 기술 방식이 요구되어야 하는 이유는 차별이 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사소하게,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표현들이 그 사회 지배 논리에 차별 당해 주변으로 밀려난 집단들을 배제 및 서열화하는 중심 집단의 언어 양식에 의해 구성된 것들이라는 데 있다고 그는 말한다.

덧붙여, 정희진은 여성주의의 목적이 사회 내의 여성의 지위를 높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지배적 중심에 꾸준히 군림해 오면서 그 반대의 가치들을 주변화해 온 주체/타자, 남성/여성, 장애/비장애, 이성애/비이성애, 신체/정신 등의 이분법적 사고, 곧 근대주의 등을 상대화, 객관화시킴으로써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지워 나가는 데 있다고 말한다.

어느 것이든 판단하는 시선에 따라 주변이거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여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특히 5000년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부장제를 상대로 한 싸움은 여전히 거기 뿌리부터 오염되어 있는 오늘날 사회에서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주의(페미니즘)는 가부장제 원칙에 길들여진 남녀 불문 모두의 적 혹은 ‘왠지 불편한’ 상대가 되어버리고 또 중산층 지식인 여성들의 ‘종종 도를 지나친’ 요구라는 호도 및 남성도 측은하게 여겨 달라는 피해자 의식 등에 의해 좌절에 부딪치기 십상이다.

자신을 앞선 의식을 지닌 여성이라고 여기면서 말머리에 자꾸 “제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하는 여성들에 대한 저자의 언급에 괜히 뜨끔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을 것 같다. 몇 백 년 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자신을 ‘진보주의자’로 부르면서 차별 이데올로기로서 몇 천 년 역사를 가진 가부장제도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을 과도한 노이로제 환자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집단 내에 가부장제적 위계주의를 자주 고도화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본격적으로 일반적인 한국 가정의 가부장적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진정 인권의식을 개인화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니 정치는 개인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의견은 정희진의 책에서 자주 강조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여성주의는 여성이 소수라고 주장하면서 남성을 적으로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구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여성이 소수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정희진은 지적한다. 소수는 없으며 상대적 주변만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사회적 관념들과 풍습의 가치들은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색된 것이라는 것이며, 새로운 시각의 가능성에 의해 그것들이 다시 보이게 함으로써 기존의 중심도 상대화시켜 서로 상대적인 가치들이 존재하는 새 안경 너머의 세계에서 모든 주변에 배제돼 있던 가치들을 끌어안자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여성주의는 동성애나 제3세계 문제와 같이 모든 주변화 된 집단의 인권에도 관심 가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남성이 언제나 여성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 있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장애인 남성과 비장애인 여성, 혹은 서구 여성과 제3세계(이 말도 잘 사는 나라들이 ‘주요 세계’라는 중심의 입장에서 나머지 세계를 주변화 시키는 차별이 이미 담겨 있는 언어 사용의 예라고 그녀는 말한다) 남성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잘 드러난다고 그녀는 증명한다.

모든 상황에 하나의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구/비서구, 장애인/비장애인,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그 외의 성, 젊은 몸/나이 든 몸 등의 기준에 의해 ‘정상인’ 것, ‘더 나은 것’에 비교당해 언제나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차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자기배반일 수밖에 없다는 동기 또한 우리로부터 이끌어내야 옳다.

이 책은 사소한 언술에 담긴 편견을 통해 드러나지만 그럼으로써 일상 전반에 포진하여 우리 삶 주요한 구석들을 장악하는 이런 폭력의 습관을 제거해 나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오늘 말하는 단 몇 마디와 무지함으로 인해 자발성 없이도 발생시키고 방관하게 되어버리는 모든 폭력의 요소들을 없애 나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글_문연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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