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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봄을 향한 열차에 마을을 실어 보낸 분들께 – 함영선 기부자

[기부자편지]

봄을 향한 열차에 마음을 실어 보낸 분들께

함영선 기부자

   절을 새로 짓거나 기와를 보수할 때 신도들이 기와에 소원을 적어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기와불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 형편이 되는 만큼의 액수로 기와 한 장을 받고, 거기에 자신의 일생일대 가장 큰 소원과 가족 이름, 주소까지 다 적어내는 정성을 보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절이 다 완성되는 날, 그 절을 가리키며 ‘저 절 짓는 데 내가 좀 보탰다’고 뿌듯해 하는 불심깊은(?) 저같은 신도가 있습니다. ^^; ‘공감(共感)’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딱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공익변호사기금’을 토대로 2004년 설립된 ‘공감’이었기에 제가 그 전 몇 달 동안 보탰던 작은 정성이 이 공감의 설립에 한 몫을 했다는 대책없는 자부심.. 저는 그야말로 ‘대의를 향한 열차에의 무임승차자’. 아니, 좀 너그럽게 봐 주더라도 ‘과소(過少)임승차자(지나치게 적은 운임료를 주고 탄…)’인 것입니다. 그러나 절에서 제가 그렇게 뿌듯해 할 때 옆에 계신 스님은 그저 넉넉한 미소로 받아주시듯, 공감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이런 저같은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아주 고맙고 귀히 여겨 주십니다.
 
  저와 공감과의 인연은 4년 전 대학 4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 가을, 아름다운 재단에 관한 기사를 학보에서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기부’가 아닌 ‘나눔’이란 단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려는 단체의 의지와, ‘1프로 기금’이란 참신한 발상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제 얕은 배움으로라도 사회에 환원할 때가 오길 바라면서, 일단 이렇게라도 사회 참여를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용돈의 1프로로 나눔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기금 중에서 법대생으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불러일으킨 ‘공익변호사’란 단어에 가슴 설레며 공익변호사기금을 선택했고, 이 기금을 토대로 몇 달 뒤에 ‘국내 최초의 비영리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이 설립되어 자연스레 저는 이 곳의 기부자가 되었습니다.(개인적으로는 ‘기부자’보다 ‘나누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습니다만…) 그 뒤로 저는 아름다운 재단과 공감과의 인연을 이어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생길을 사람들과 함께 제대로 걸어가는데 필요하다 생각하는 최소한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조차도 꾸준히 지켜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조금씩 기부금액을 올려 보자는 저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있고요. 그러니, 소수자 인권보호를 업으로 삼고 계신 이 곳 분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 이 한 세상을 큰 마음 내어 살아내는 분들의 고충을 저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의 자유로운 대학생활 이후로 줄곧 저의 시선은 지독하게도 제 안으로만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마음을 화두삼아 성찰의 시간들을 참 많이도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떠나 내면으로 향하던 그 어느 지점에선가 저는 다시 사람을 보게 되었어요. 제 주변을 비롯해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분들 말이지요. 거창하게 인권으로까지 확대해석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사람은 제 소리 이상도 이하도 낼 수 없고 그저 자기만큼의 소리만 내면서 산다는 함석헌 옹의 말씀처럼, 저는 이제야, 그것도 아직 딱 이만큼의 소리밖에 내지 못하며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는 저만의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그 시작은 이렇게 참 소박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는, 인권보호 분야에서 전혀 특별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까지도 마음을 내어놓게 만드는 힘에 대해 역설(逆說)하려 합니다. 그런 소박한 마음을 내도록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이 ‘공감’의 힘이 아닐까요.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대의(大義)를 향한 열정을 깨워주는 힘 말이지요. 이주노동자, 장애인, 아동, 여성, 난민 등 사회 곳곳의 그늘진 곳에서 그 분들의 상처에 연고를 찾아 발라다 주고는 내 상처가 치유되었다 여기고 기뻐하는 곳. 그 상처를 준 것은 결국 우리라며 미안해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곳. 우리같은 사람들은 그저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같이 가고 있는 것이라는 용기를 주는 곳. 그래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 옆에 있다 보면 저같은 사람도 왠지 좋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봄을 향한 열차를 이끌어 가는 바로 이 분들의 힘 말이지요…

(여기서 인권보호를 저는 ‘대의’로 표현했습니다. 당연해야 하는 것이 대의라니요. 그러나 사람이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당연하지 못한 현실이기에 이렇게 표현하는 이 혼란스러움, 이제 걸음마 단계인 저와는 달리 이미 달려가고 계신 분들이 저에겐 참으로 커 보이는 자책감에, 대의라고 표현함을..읽어주시는 분들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요즘 가을하늘은 다행히도 가을을 닮았습니다. 가을이 가을다운 건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한 것인데도 기후의 변화로 이젠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하늘이 참 반갑습니다. 이렇게 제 모습을 갖춘 계절이 반갑듯, 저리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들을 알게 될 때마다 저는 반가운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마음이 아려옵니다. 이리도 ‘좋은 사람’은 우리 사회의 공공재(公共財?)이므로 공유(共有?)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습니다.(혹 기분 나쁘지 않으시겠지요..) 이 분들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이 너무 많으니 혹 저의 지분(?)이 있다면 기꺼이 포기하겠습니다.^^ 그저 이런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좀 더 많이 알려져서 필요한 분들께 위안과 실질적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공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또 함께 하고 계신 분들이 제겐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세상의 겨울이 온다고 해도 마음에 품은 봄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분들께 이 편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무언가를 드러낸 것 같아 저는 열차를 탈 자격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선로 옆에서 휘파람이라도 한 번 불어드려 힘을 보태드리는 건 어떨는지요. 아님, 선로를 만드는 데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다 드릴 수는 있는데…^^

  과소(過少)임승차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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